방학을 앞두고 드는 참 불편한 나의 생각
여름 방학이 다가오면 학교에는 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수많은 연수 공문이 쇄도한다. 선생님들이 방학을 이용하여 배워야 한다는 것에는 거의 동의하지만 연수 공문은 너무 많고 또 다양하다. 나 역시도 지난 세월 엄청난 연수를 방학 중에 들었지만 사실 기억에 남는 연수는 거의 없다. 뿐만 아니라 어쩌다 연수를 통해 배운 새로운 방향은 학교 현장에서 번번이 좌절을 겪었다. 당시는 그 이유를 잘 알지 못했으나 세월이 지나고 나니 어렴풋하게나마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특히 여러 해 전부터는 교육방법에 대한 연수가 많은데 이를 테면 최근 유행되는 다른 나라(특히 북유럽식 또는 이스라엘 식 그리고 일본 식)의 교육방법 연수가 많아졌다. 사실 나는 이 방면에 거의 문외한이지만 교사이기 때문에 교육방법에 대한 고민은 교직 생활 내내 이어진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완전히 문외한이라고 보기에도 어려운 점도 분명히 있다. 각 교육방법의 특징과 장점에 대해 이야기하기는 현재의 나의 식견으로 어렵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늘 하게 된다. 다양한 나라의 교육방법을 배우면서 이러한 교육방법이 생긴 그 나라의 문화적 역사적 전통과 관습, 그리고 그들의 제도와 정치적 상황 등을 아는 것이 우선일 것인데 프로그램 속에는 그러한 내용은 없거나 있어도 너무나 작다. 대부분 30시간으로 설계된 연수 동안 이런 것이 있으니 ‘한 번 적용해 보세요’ 식이다. 방학을 마치고 나면 그 연수를 들은 선생님들이 지도하는 아이들은 일종의 실험 도구가 되기도 한다.
해방 이후 우리 교육은 일본 교육방법의 틀 속에서 미국식 교육과정을 따라 했다. 그러다가 정권에 따라 양념처럼 혹은 유행처럼 유럽식의 교육방법을 끼워 넣기도 했고 가끔은 독창적이라는 미명아래 여기저기에서 가져온 기이한 교육방법이나 과정을 덕지덕지 붙여 놓았다. 이것이 우리의 교육방법 혹은 교육과정의 현주소다. 교육방법과 교육과정은 별개의 이야기이겠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현장 교사에게 이 두 단어들은 엄밀히 수업 활동과는 또 다른 영역이 되고 만다. 각 교육과정에서 원하는 용어들로 표현되는 문서상 행위로 여전히 유지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해방 이후 우리나라의 교육방법이나 교육과정이 딴 나라 것임에도 우리는 그러한 상황에 잘도 적응하여 살아왔다. 따지고 보면 우리 전통의 교육방법이나 교육과정에 대한 연구를 통한 현대적 응용은 거의 전무한 상태에서 우리는 서양의 교육학자들이나 그들의 이론은 너무나 잘 알고 있고, 그들이 한 말이나 그들의 교육방법에 대해 엄청난 경외심을 가지고 대하게 된다. 여기에는 서양 여러 나라의 교육을 배운 유학파 교육학자(대부분 대학 교수들)들 밑에서 배운 교사들의 역할과 그 교수들이 자행한 파벌 교육, 또는 오로지 자신들의 밥그릇 보존을 위한 편파적 교육 등이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정리하자면 수 천 년 동안 위대한 삶과 문화를 이루고 배우며 축적해 온 우리가, 해방 이후 우리의 교육방법은 거의 전무한 방식으로 교육받았고, 그 교육으로 아이들이 키워냈고 또 현재도 키우고 있는 것이다. 고백하자면 정년이 다 되어가는 나 역시도 교실 수업에서 우리 전통의 교육 방법이 적용되는지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그러면 미래 교육은 어떨 것인가? 다른 나라의 교육방법이나 교육과정으로 얼기설기 엮은 80년쯤 된 나무를 현재의 우리 교육이라고 비유한다면 일부는 썩고 일부는 잘린 기형적인 모습이 분명할 것인데, 여기에 여전히 유행에 따라 외부 입김이나 정치적 성향에 따라 다양한 교육 방법을 이어 붙이려는 지금의 상황은 참 납득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물론 지금에 와서 우리 옛 것을 오늘에 되살려 뭔가를 해 보자는 식의 어이없는 발상도 정상은 아니다. 다만 누군가 힘 있는 세력들이, 또는 정치권력을 배경으로 하는 세력들이 자신들의 이론이나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교육방법이나 교육과정에 손을 대는 것도 역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교육과정이야 시대에 따라 변화하지만, 교육과정 속에 끼워 넣은 현행 고교 학점제처럼 교실 현장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일은 제발 시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특정 나라에서 성공한 그들의 교육방법을 적극적으로 우리에게 강조하는 우리나라 사람을 보면 나는 묻고 싶어진다. 그 나라 사람이 겪어 온, 수 천 년의 지리적 문화적 삶의 과정을 이해하고 있느냐고? 단지 몇 년 정도 그 나라 대학에서 공부하고 그 지역 교육방법을 연구했다는 것으로 그들의 의식과 문화를, 그리고 그로부터 출발한 교육 전체를 이해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그리고 그것을 우리에게 이식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험요소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기나 하는지?
사실 그 모든 것은 이해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의 교육방법은 삶에서 우러나온 것이기 때문에 배울 수도 또 익힐 수도 없는 그들의 삶 자체일 가능성이 높다. 그로부터 출발한 교육방법을, 문화도 환경도 전혀 다른 우리나라에 소개하고 그것이 상당히 우수하고 매우 선진적인 방법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현장 교사로서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른 나라에서 유명한 교육학자 혹은 교육운동가들도 당시 그들의 나라에서, 그리고 그들의 상황에서 그렇게 방법을 선택했을 뿐, 우리에게 그들의 이론이, 그들의 생각이 완전히 부합할 지도 의문인데, 우리는 지난 세월 그들의 이야기를 금과옥조처럼 배우고 익혔다. 이런 부분으로만 본다면 우리는 교육을 통해 오히려 심각한 확증 편향에 사로잡혀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교육은 완전히 뒷전으로 밀려난 형국이다. 장관에 오른 인사 자체도 매우 생경하지만 그 인선의 취지나 방향도 너무나 뜬금없어 보인다. 교육에 대한 이 정부 5년의 계획이 이렇게 시작되니 안타깝지만 변방에서 이제 정년을 한 달 앞둔 교사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어 보인다. 5년은 의외로 짧다. 이렇게 시작한 교육 정책을 다시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 이미 권력화 되어 어떤 긍정적인 역할도 하지 못하는 국가교육위원회를 새로 꾸렸지만 위원장도 상임위원도 대부분 그대로다. 이전 정부에서 뽑은 사람들이다. 그 아랫사람들을 바꾸면 모든 것이 새로워지는가? 어쩌면 내란 사태는 현재도 진행 중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