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코테크의 그림들(10)
Joseph Anton Koch(요셉 안톤 코흐, 1768~1839)는 1768년 오스트리아 Tirol(티롤) 지방의 Elbigenalp(엘비게날프)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그를 티롤의 화가라고 부른다. 코흐는 이름 없는 양치기로서의 삶을 살다가 마을 교회 주교의 추천으로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Karls schule(칼스 슐레 – 일종의 군사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하지만 칼스 슐레는 엄격한 규율의 학교였기 때문에 코흐는 그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학교에서 도망쳐 프랑스와 스위스를 여행하고는 마침내 1795년 로마에 도착한다.
이 시기에 코흐는 독일 신고전주의 작가인 카스텐스[i]를 만나게 되면서 영웅적 회화와 접하게 되었는데 이때의 영향은 코흐의 삶 전체와 그의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1800년이 되면서 코흐는 풍경 화가로 발전하게 되는데 특별히 그는 ‘영웅적 풍경화’에 집중하게 되었다. ‘영웅적 풍경화’란 기존의 프랑스의 위대한 화가인 푸생[ii]이나 로랭[iii]이 그렸던 목가적 풍경이나 성서적 모티브의 풍경화와는 달리, 경이로운 바위가 위용을 자랑하는 험준한 알프스 산악지형과 그곳의 거대한 폭포를 배경으로 하고 상대적으로 위약(危弱)한 인간을 그려 넣어 자연을 영웅처럼 추켜세우는 방식의 풍경화를 말한다.
이 그림, 슈마드리바흐(Schmadribach)폭포는 실제로 스위스 베른 주(州) 라우터브루넨 계곡에 있는 폭포로서 그 계곡에 있는 30여 개의 폭포 중 하나이다. 슈마드리천(川)에 의해 형성되는 말 꼬리 형(horsetail) 폭포로 총 높이는 300m, 막힘 없이 낙하하는 최대 높이는 250m이다. 슈마드리천이 큰 빙하에서 발원하므로 1년 내내 많은 물이 쏟아져 내린다. 코흐는 이 장엄한 폭포를 몇 장의 그림으로 남겼는데 이 그림은 그 그림들 중 하나이다.
‘영웅적 풍경화’로 불려지는 그림이 탄생한 배경은 다음과 같다. 1812년 코흐는 나폴레옹 치하의 프랑스군의 이탈리아 침공으로 인하여 로마를 떠나 1815년까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머물렀는데 이 시기에 코흐는 지금까지의 고전적 풍경화가 가지는 목가적이고 성서를 모티브로 하는 비현실적 풍경화로부터 살아 움직이며 실제로 존재하고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탈고전적 테마를 융합시키게 된다. 거기다가 독일 풍경화의 다소 정제되지 않은 자연 묘사를 부가하여 독자적인 코흐의 영웅적 풍경화가 태어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도 성서를 기본으로 하는 그림을 여러 편 남겼다.
거대한 빙하로부터 녹아 나오는 엄청난 양의 물이 하늘로부터 떨어지는 광경은 누구에게나 압도적인 풍경일 수밖에 없다. 동 서양을 막론하고 폭포의 엄청난 풍경과 거대한 소리는 많은 예술가들의 예술 혼을 자극하였다. 동양의 문학작품으로는 이태백이 지은 ‘망여산 폭포’[iv] 가 유명하고 회화로는 우리나라 겸재 정선의 박연 폭포[v]가 바로 자연경관, 특히 폭포에 대한 경배를 나타낸 그림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코흐의 폭포 그림은 좀 더 위압적이고 사실적이어서 그들이 생각하는 자연과 동양인이 생각하는 자연은 매우 다른 존재임을 우리는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코흐는 로마에서 일생의 대부분을 보냈는데 거기서 많은 로마의 젊은 예술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독일의 풍경 화가들 중 로마에 유학 온 이들에게 예술적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그를 독일 낭만파 풍경화의 시작점으로 삼게 되었다. 하지만 이 위대한 화가도 노년은 가난과 싸웠으며 객지인 로마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장자’께서 말씀하시길 “우물 안 개구리로구나”
가을이 되자 물이 불어나 모든 물이 황하로 흘러 들어 출렁이는 물결의 광대함이 양쪽 기슭에서 건너편 물가에 있는 소와 말이 구별되지 않을 정도였다. 이런 때에 황하의 神 河伯(하백)은 스스로 기뻐하여 천하의 아름다움이 모두 자기에게 집중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흐름을 따라 동쪽으로 흘러가서 北海(북해)에 이르러 동쪽을 바라보았더니 아무리 보아도 망망대해가 보일 뿐 물의 끝을 볼 수 없었다.
(중략)
北海 若(북해 약)[vi]이 말했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 바다에 관한 이야기를 해줄 수 없는 것은 우물 안 개구리가 자신이 머무는 곳에만 얽매여 있기 때문이며, 여름 버러지에게 얼음에 관한 이야기를 해줄 수 없는 것은 여름 버러지가 자신이 사는 때에만 얽매여 있기 때문이며, 曲士(곡사)[vii]에게 道에 관한 이야기를 해줄 수 없는 것은 곡사들이 자기가 알고 있는 敎理(교리)에 속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대는 황하의 양쪽 기슭 사이에서 벗어나 큰 바다를 보고 마침내 그대 자신의 보잘것없음을 알았으니, 그대와는 함께 커다란 道理에 관해 이야기할 만하다.”
<장자 추수>
해설
인간의 생각이 가지고 있는 가장 위험요소 중 하나는 생각의 ‘범위’가 아닐까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정된 범위 속에서, 한정된 이야기를 듣고 한정된 생각만 하면서 일평생을 보낸다. 위 『장자』 이야기에서 황하의 신이 그러했듯이 자신의 범위를 벗어나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범위를 가끔 벗어나게 해 주는 자극제도 없지 않은데, 그것은 바로 위대한 자연의 풍광이다. 300m 높이에서 떨어지는 거대한 슈마드리흐 폭포를 본 코흐는 압도적인 자연에 지배당했을 것이다. 그 강렬하고 위대한 체험을 그림으로 옮겨놓았으니 그것을 우리는 영웅적 풍경화라고 부른다. 하여 언제나 우물 안에서 천지를 논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 나와 우리 모두에게 이 그림은 우리의 범위를 단숨에 박살낼만한 통쾌하고 강렬한 자극이다.
[i] Asmus Jacob Carstens (1754 - 1798)
덴마크계 독일인 화가. 독일 신고전주의의 회화의 중요한 인물. 성격이 매우 특이하여 자신이 하던 작업을 중간에 그만두거나 아예 부숴버리기도 해서 현재 남아 있는 작품은 드로잉수준과 불분명한 채색의 그림이 남아있음. 다만 그림의 경향은 매우 심오하고 스케일이 컸음. 이 부분이 바로 코흐가 영향 받은 부분으로 추측할 수 있음.
[ii]Nicolas Poussin(1594– 1665)
프랑스 바로크 회화의 리더. 대부분의 작업을 이탈리아 로마에서 완성함. 그의 작품은 명료하고 논리적이며 대단히 질서 정연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채색과 선의 사용에 있어 선을 우위에 둠으로써 이러한 경향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의 이러한 경향은 그 뒤 Jacques-Louis David(다비드), Jean-Auguste-Dominique Ingres(앵그르), Paul Cézanne(세잔)의 회화에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된다.
[iii] Claude Lorrain(1600 – 1682)
프랑스 바로크 시대의 화가. 에칭화가로서 더욱 유명함. 역시 전 생애의 대부분을 이탈리아에서 보냄. 그가 살았던 당시의 주류였던 네덜란드 황금 시대의 회화 풍에서 약간은 다른 풍경화를 시도함. 그의 풍경화에는 역사화와 ‘Hierarchy of genres(계층화)’라고 불리는 풍속화의 경향을 발견할 수 있음.
[iv]이백이 지은 望廬山瀑布이다.
日照香爐生紫煙(일조향로생자연) 향로봉에 햇빛 비쳐 안개 어리고,
遙看瀑布掛前川(요간폭포괘전천) 멀리 보이는 폭포는 강을 매달았구나.
飛流直下三千尺(비류직하삼천척) 물줄기 내리 쏟아 삼천 척!
疑是銀河落九天(의시은하락구천) 마치 하늘에서 은하수 쏟아지는 듯.
[v]겸재 정선이 박연 폭포는 황해도 개성에 있는 폭포로서 송도 삼절 중의 하나이다. 특히 이 그림은 이시동도법으로 표현되어 폭포
[vi]북쪽바다를 다스리는 해신의 이름. 여기서 북해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강에 대비하여 넓고 광막한 바다를 통칭하는 말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vii]사실을 잘 못 이해하고 있거나 혹은 좁은 신념에 얽매여 있는 무리들을 전체적으로 표현한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