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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교육

교육에 대한 의견

by 김준식

교육에 대한 의견


내가 평생을 몸 담았던 교육현장에 대해 이런저런 평가를 내리는 분들의 의견을 듣다 보면 나의 지나온 날들이 돌연 무가치해지거나 혹은 너무 가벼워져서 자괴감에 시달릴 때가 간혹 있다. 요즘은 SNS에서 그런 글들을 자주 본다.


그런 글들 중에 대표적인 것 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고교시절 학업성적이 뛰어나지 못했는데 나이 들어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 이를테면 특정 부분 석학이 된다거나 심지어 국제적 명성이 있는 상(노벨상, 필즈상 등등)을 수상하는 이야기인데……


거의 해외의 사례다. 그런데 사실 핵심은 '해외 사례' 그 자체다. 우리나라에서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일이기도 하거니와 설령 우리나라 사람이라 하더라도 우리 공교육 체제 내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인데 해외 유학을 통해 그런 상황이 된 경우가 가끔 있기는 하다.


나의 문제의식은 바로 여기에 있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상황이 일어나지 않는가? 교육현장에 38년을 몸 담았다가 이제는 퇴직까지 한 나는 이 문제의 원인에 대한 정확한 답을 선뜻 내놓지 못한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서 그렇다는 스스로의 위로가 사실은 더 한심하다.


우리나라 교육이 혼란스러운 것은 여러 이유가 있다. 그중 내가 알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대학과 취업, 나아가 살 떨리는 경쟁과 속도가 교육을 집어삼켰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를 이야기해 보자. 나도 고교 시절 지금과 다른 꿈이 있었다. 고고학자가 되는 것이었다. 어릴 적부터 옛 문헌을 많이 접했고 특히 하인리히 슐리만의 이야기, 그리고 선친으로부터 들은 옛이야기가 많은 영향을 주었다. 나의 생각은 선친에 의해 박살이 났는데 그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될 것이다. 당연히 대학은 매우 실용적인 전공으로 진학했으니 나에게 새로운 상황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은 이때 완전히 사라졌다. 조금 어이없는 것은 나에게 그 길을 막은 선친께서도 고고학이라는 학문은 매우 숭앙해 마지않았다. 물론 나에게 그 길을 가지 못하게 한 것을 나는 지금도 여전히 이해한다.


집안의 경제적 상황과 불확실한 미래를 감수하고 고고학과에 갈 만큼 대한민국은 호락호락한 사회가 아니었다. 그나마 내가 대학을 입학하던 80년 즈음은 그래도 숨 쉴 만큼의 경쟁이었는데 그 후 이 땅의 경쟁과 속도는 전 세계가 혀를 내두를 정도였으니 그 상황에서 교육은 그저 먹고 사는 도구로 전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상황을 겪고 있는 나라에서 학문을 진지하게 탐구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추구하며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 단적인 예가 우리나라 대학 입시의 ‘의, 치, 한, 수’가 방증한다. 명석한 아이들이 의대, 치대, 한의대, 수의대로 가는 것이 뭐가 문제인가? 하지만 문제는 이 상황을 한 겹만 벗겨내면 금방 알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대입성적(‘입결-입시결과’로 불리는)을 보면 위 4개 전공의 입결을 언제나 최 상위에 두고 그다음부터 각 대학별, 그리고 과별로 순위가 결정되는 구조다. 심지어 이 4개의 전공은 그렇게 차별이 심한 지방대학조차도 예외다. 예를 들어 지방대학의 의대라 하더라도 입결은 의대를 제외한 서울대 다른 전공 최 상위의 입결보다 높은 것이 기본이다. 여기에 유일무이한 이유가 바로 대학을 졸업하고 안정적으로 돈을 얼마나 많이 그리고 오래 벌 수 있는가이다.


이런 기괴한 구조를 창조해 낸 것은 다름 아닌 이 땅의 천민자본주의다. 기성세대 자신들이 돈으로 모든 것이 평가되는 사회구조를 만들어 놓고는 결과로 나타난 이 구조를 비난하는 아이러니를 교직 생활 내내 보았고 여전히 볼 것이다. 이런 대입의 구조를 만든 것은 고교 교사도 고등학생도 나아가 교수도 대학도 교육부도 아니다. 돈과 권력이 협잡하고 그 협잡의 사생아로 태어난 현재 이 땅의 부패한 천민자본주의에 기초한 경제 구조가 이 상황의 핵심 원인이다. 어쩌면 오래 유지될 것이다.


이렇게 왜곡되고 기괴한 구조에서 출발하는 것이 유, 초, 중 교육이니 그 교육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없다. 곳곳에 비정상적이고 비인간적인 구조들이 잠재되어 있다가 기회만 되면 문제를 일으킨다. 급하게 해결하려 하니 법이 필요하다. 법을 만들어 그 문제를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학교 곳곳에 법망을 촘촘하게 둘렀으나 학교 구성원들, 특히 교사들은 그 법에 눌리는데 정작 해결해야 할 심각한 문제들은 그 법망 사이로 교묘하게 왕래하고 있다. 기준을 정하면 될까 싶어도 이제는 기준을 정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뜻있는 사람들에 의해 교육을 혁신해 보자는 운동이 이제 10년이 넘었다. 현재도 그 에너지는 유지되고 있지만 솔직하자면 교육 혁신의 미래는 어두워 보인다. 모든 세력들이 그러하지만 일정 기간을 경과하면 시작점에 있었던 그들 역시도 교조화되었다. 그 증거들을 우리는 보고 있고 아마 앞으로도 보게 될 것이다. 교조화된 혁신은 이미 혁신일 수 없고 과거로의 회귀이며 기왕의 모든 것을 위협하기도 한다.


처음으로 돌아와서…… 고교시절 학업성적이 뛰어나지 못했는데 나이 들어 성공한 사례를 소개하며 우리의 교육을, 우리의 체제를 은근히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이런 경향을 아주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확증편향이고 부드럽게 이야기하면 논리적 비약이다. 우리는 결코, 아니 아직 깊이 학문을 연구할 사회적 분위기를 갖추지 못했다. 오직 결과에 관심이 있으면서도 늘 과정도 중요하다고 너스레를 떨 뿐이다. 그런 나라에 살고 있다. 그러니 제발 이런 사례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언제가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면(세월이 얼마나 흘러야 될지 상상조차 어렵지만) 그때 이야기해도 늦지 않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사이 대통령 교육비서관에 임명된 인사의 출신을 듣는다. 이 정부도 교육에 있어서는 이전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결론적으로 새로 임명된 교육부장관은 장식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꽤 불편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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