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못 하나를 팠다./ 임덕연/ 교육공동체벗/2026
1.
임덕연 선생은 페북 친구다. 페북에 각자의 사진이 있기는 하지만 허상일 뿐, 우리는 피차 만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런 임덕연 선생이 문득 그의 시집을 보내왔다. 온라인에서의 관계가 오프라인으로 확장되는 순간이다. 또 하나의 거대한 우주가 그의 책과 함께 내게로 왔다. 선거판에 있으니 시간이 나는 대로, 차에서도 읽고 집에서도 읽고 또 읽었다.
2.
그의 시집은 간명하다. 시란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치 '장자'에 등장하는 '포정'이 살과 뼈를 절묘하게 분리해 내듯 시인은 시인의 생각과 말에서 시어를 절묘하게 분리하여 또박또박 옮겨 놓았다.
“농사는 때란다
이르게 움직일 때는 서둘러야 하고
때로는 진득하니 늦춰야 할 때도 있다.
<중략>
사랑도 다 때가 있다.
애쓰지 마라”
(연못 하나를 팠다/ 때/ 부분)
머릿속을 휘휘 돌아다니는 생각을, 이렇게 저렇게 오고 가는 말을 시인은 (마치 포정의 19년 된 칼처럼) 명쾌하게 가르며 말한다. “애쓰지 마라” 우리의 삶 속에 오고 갔던 그 많은 때, 그리고 시기에 대한 생각이 이 다섯 글자 속에 들어있다.
3.
그의 시 속에서 나는 사실 아무것도 찾지 않았다. 그저 두리번거리기는 했는데 두리번거리다가 가끔씩 던져지는 시인의 중의적 말투에 잠깐 넋을 놓을 때도 있었음을 고백한다.
“내가 눈 온다고
눈길을 걸어 오솔길 따라 산 밑까지
걸어갔다 올까 보냐
눈길 걷는 내내
그대를 생각할까 보냐
내가 눈 온다고
자꾸 문밖을 내다 볼까 보냐
<중략>
내가 눈 온다고
눈물인지
눈 물인지 구분 못할까 보냐
(연못 하나를 팠다/ 첫눈 온다고/ 부분)
‘눈 물’은 차갑지만 ‘눈물’은 뜨겁다. ‘눈’과 ‘물’의 두 글자 사이의 공간이 ‘눈 물’과 ‘눈물’의 온도차이임을 시인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아름다운 重義다.
4.
사계절 그리고 다시 봄. 그 시간 속을 잠시 시인과 함께 걸었다. 나는 이만큼 떨어져 걷고 시인은 저만큼 떨어져 걸었다. 집이 보이지 않는 골목길을 돌아 마을 앞까지 나왔다. 집에서 멀리 나가지 않았지만 시인은 문득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돌아왔다.
선생님 시집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