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고 있는
기온이 뚝 떨어졌다. 마음까지 추워진다. 하여 따뜻하고 행복한 그림을 떠 올린다.
덤불 속에 소년이 웅크리고 있다. 모자에 꽃을 달고 손에도 꽃을 들고 있다. 그리고 또 한 송이는 바닥에도 있다. 다가오는 여자를 위해 완벽하게 준비하고 있다. 금발이 섞인 갈색 머리카락이 보이는 소년의 머리에는 꽃 장식이 있는 멋진 후트 쾨니히 스타일 모자가 씌워져 있다. 어쩌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물건일지도 모른다.
목에 걸려 있는 붉은색 타이로 보아 소년은 밝고 명랑한 성격이며 웅크리고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는 태도로 보아 장난기는 많지만 사랑스러운 성품의 소유자임이 분명해 보인다.
그림을 그린 Ferdinand Georg Waldmüller(페르디낭 게오르그 발더 뮐러 1793~1865)는 오스트리아의 화가로서 빈에서 출생했고 그곳에서 죽었다.
「Der armer Poet, 가난한 시인. 1839」을 그린 Carl Spitzweg(칼 스피츠베그, 1808~1885)와 함께 Biedermeier(비더마이어) 양식의 대표자 중 한 사람으로 정물화, 풍속화, 초상화, 풍경화의 여러 분야에서 보통 사람이 느끼는 일상의 기쁨을 밝고 환한 색조로 표현하였다.
비더마이어 양식이란 산업 혁명 이후 새롭게 형성된 중산층들이 향유한 문화의 한 갈래로 시작되었는데 지금까지 예술의 단순한 관람자였던 중산층들은 점차 그들의 의견을 예술에 반영하고자 하였고 이런 욕구는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하나의 예술적 흐름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즉, 나폴레옹 전쟁 이후 오스트리아의 수상이었던 메테르니히(반동 정치)는 정치적 계산에 따라 중산층 중심의 예술 운동을 장려하였고(상대적으로 귀족의 세력을 누르기 위해) 그 결과 프로이센, 덴마크, 오스트리아 등 당시 합스부르크의 지배 하에 있던 여러 나라에 다분히 의도적인 예술운동으로 파급되었다. 시간이 지나자 비더마이어는 문학, 건축, 음악 등으로 확산되었고 그중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부문은 지금도 그 영향력이 막강한 실내 장식과 생활가구부문이었다.
따라서 비더마이어양식이 추구하는 것은 안락한 일상의 소소한 행복과 그로부터 수긍되는 삶의 경건함 바로 그 자체이다. 발더 뮐러가 꿈꾸었던 미적 성취는 경건한 삶 속에서 편안함(Gemütlichkeit)과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가감 없이 느낄 수 있는 세계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젊은 시절 한 때, 발더 뮐러는 크로아티아에서 미술 교사 생활을 했는데 아름다운 크로아티아 자연환경에 매료되었다. 따라서 이 시기의 기억이 그의 자연에 대한 회화적 표현에 절대적 영향을 미쳤다. 이 그림에서도 뒷부분으로 보이는 야트막한 구릉과 노랗게 익어가는 밀밭, 녹색의 나무와 덤불, 울퉁불퉁한 시골 언덕길은 빌더 뮐러의 크로아티아 자연에 대한 오마주로 이해할 수 있다.
밀밭에 노랗게 밀이 익어가는 5월의 어는 날, 다가오는 여자를 위해 웅크리고 있는 소년의 마음은 꽃보다 더 화사하고 설렐 것이다. 어머니인지 아니면 연인인지 모를 여자가 스카프를 쓰고 다가오고 있다. 아무것도 눈치 채지 못하고 오직 자신의 손에 들린 책을 보고 있는 여자!
바람이 살랑 불어 여자의 치맛단을 춤추게 하지만 거센 바람은 분명 아니다. 가슴 중앙에 두 손으로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뭔가 중요한 책을 들고 있는데 굉장히 재미있거나 또는 귀한 것처럼 느껴진다. 얼굴에 띈 홍조 때문에 소년의 연인 쪽에 무게를 두고 싶지만 어머니든 연인이든 또 소년의 누나든 아무래도 좋다. 이 그림의 핵심은 다가오는 여자가 아니라 저 웅크리고 숨어있는 소년의 떨리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이 그림의 제목은‘Die Erwartete’이다. 영어로 풀이하면 ‘The Expected’ 쯤으로 풀이할 수 있다. 즉,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인데, 좀 더 정확하게 풀이하자면 소년의 입장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림 제목에 쓰인 독일어 ‘Erwartete’의 원형은 ‘Erwarten’으로서 타동사이다. 즉, 누구를 ‘기다리다’라는 뜻이고 활용형으로 ‘Ich Erwartete’가 된다. 즉 일인칭인 나의 입장으로 화가는 그림을 그렸다. 누가 보아도 기다리는 상황임을 알 수 있는데 화가는 소년의 느낌과 생각까지도 그림에 표현하였다는 것을 제목을 통해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그림의 제목은 단순하고 무심한 느낌이 드는 명사형 ‘Erwartung(기다림)’으로 하지 않았을까?
소년이 일어나 다가오는 여자를 놀라게 한 뒤, 그 여자에게 꽃을 받칠 때, 살짝 놀란 여자의 얼굴에서 번져오는 환하고 예쁜 웃음을, 우리는 이 그림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여인의 웃음이야말로 비더마이어가 추구하는 최상의 가지 즉, 일상의 행복과 그로부터의 경건함일 것이다. 삶의 모든 순간이 언제나 아름다울 수는 없다. 하지만 소년의 손에 들려 있는 저 예쁜 꽃 한 송이처럼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그 무언가가 우리에게 있을 때 우리의 삶은 환하게 빛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