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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Nov 28. 2017

성 토마스의 기적

st. Thomas oder Heilung eines Lahmen Villanueva, oil on canvas, 221x149cm 1670/80. Alte Pinakothek

떨어진 바지를 입고 거기에 목발까지 짚은 걸인이 사제로부터 축복을 받고 있다. 뒤 쪽으로 보이는 사제 둘은 약간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일부러 두 사람을 외면하지만 은근히 걸인과 사제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


짙은 검은색 사제복은 이 그림의 구조 상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축복을 해 주는 사제의 뒤로 보이는 배경과 그곳에 있는 사람은 거리가 매우 멀거나 아니면 시간적으로 다른 시간대에 있음을 강조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 볼 수 있다. 이를테면 현재의 상황은 사제의 옷처럼 매우 검고 어둡지만, 그 뒤편으로 보이는 장면에서 상황이 반전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뒤 편의 그림에 묘사된 사람들이 워낙 작고 희미해서 잘 보이지는 않으나, 자세히 보면 놀라운 장면이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목 발을 짚은 걸인이 벌떡 일어서서 계단을 걸어내려 오고 있고 그 뒤로 짙은 검은색 옷을 입은 사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제의 축복을 받은 앉은뱅이 걸인이 치료되어 일어서는 기적을, 이 그림은 하나의 화면에서 시차를 두고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검은 옷의 또 다른 효용 가치는, 뒤 편의 희미한 그림 속에서도 쉽게 구분할 수 있도록 한, 작가의 두 번째 ‘장치’이었던 셈이다.


이 그림은 Bartolome Esteban Murillo(바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1617~1682)의 작품으로서 그는 17세기 후반의 스페인 바로크 회화를 대표하는 화가이다. 그는 Juan del Castillo(후앙 델 카스티요, 1590~1657)로부터 미술교육을 받기 시작했으며 무리요의 초기 작품은 이전 시기의 위대한 스페인 화가였던 Francisco de Zurbarán(프란시스코 제 쥬르 바랑, 1598~1664), Jusepe de Ribera(후세페 데 리베라, 1591~1652) Alonzo Cano(알론조 카노, 1601~1667)의 영향이 컸다. 그는 당시 유럽 주류 예술의 하나였던 플랑드르 미술에도 많은 영향을 동시에 받았는데 여기에는 당시 로마 가톨릭 교회의 위기의식이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성장한 무리요는 그 후, 스페인 반 종교 개혁의 미적인 이상을 표현하는 작가를 대표한 사람으로서, 가장 스페인다운 화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그림은 가톨릭 교회의 이상을 위해 헌신하였는데 특히 성모 마리아와 사도를 묘사한 그림이 많았고 그의 전성기 시절의 그림들은 성모의 무염시태(conceptio immaculate)를 강조하는 그림들이 많다. 그런와중에도 무리요는 가톨릭의 교의를 조금은 벗어나 세상에 대한 따뜻한 관심을 보여주는데, 특히 부랑아나 서민의 생활을 따뜻한 눈길로 묘사한 그림들이 많다.(El joven mendigo; 젊은 걸인, 1645~1650 루브르 박물관 소장) 위 그림은 그의 나이 50대 후반에 그려진 그림으로서 가톨릭의 교의를 바탕으로 하지만 그림이 지향하는 바는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에 대한 무리요의 다정한 시선이 작용하는 것을 알 수 있다. 1660년 즉 그의 나이 40대 중반에 고향 세비야에 Academia de Bellas Artes(예술학교)를 Francisco Herrera the Younger(프란세스코 헤레라, 1622~1685)와 함께 창설하고 초대회장이 되어 후진 지도에도 노력한다.


이시동도법(異時同圖法)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화가였던 겸재 정선의 ‘박연폭포’에서도 활용되었는데, 겸재의 그림은 폭포의 떨어짐을 좀 더 사실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장치였다면, Murillo의 그림에서는 동일한 장소에서 시간 차를 두고 벌어지는 두 사건의 추이를 알게 하는 장치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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