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죽도

by 김준식
풍죽도 지본수묵 71.5 x 127.5 cm 간송미술관 소장 [화첩 스캔]

풍죽도


오만 원권 지폐 뒷면은 두 개의 그림이 겹쳐있다. 위쪽 그림은 어몽룡이 그린 매화도인데 어몽룡(1566∼?)은 조선 중기의 화가로서 자는 見甫(견보), 호는 雪谷(설곡) 혹은 雪川(설천)이다. 매화를 특히 잘 그려 黃執中(황집중)의 葡萄(포도), 李霆(이정)의 대(竹)와 함께 三絶(삼절)로 불린다. 오만 원권 뒷면 아래 희미한 그림이 바로 그 삼절 중의 한 사람인 이정의 風竹圖다. 이정(1554~1626)의 본관은 全州(전주). 자는 仲燮(중섭), 호는 灘隱(탄은)이다. 세종의 현손으로 익주군 李枝(이지)의 아들이다. 石陽正(석양정)에 봉해졌다. 뒤에 君으로 승격되었다.


懸解(현해) - 束縛(속박)으로부터 解放(해방)


懸(현) 자는 ‘매달다’는 뜻의 ‘県(현) 자’와 실을 뜻하는 ‘絲(사)자’가 위에 있고 이것이 마음(心)에 의해 결정되고 있음을 뜻하는 아주 복잡한 한자이다. 이것은 마음 한 곳에 언제나 도사리고 있는 사소한 근심 걱정으로부터 삶의 본질, 혹은 죽음에 이르는 문제까지 우리를 얽어매는 모든 매듭에 대한 상징으로 이해할 수 있다.


風竹圖는 바람에 날리는 댓잎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대나무 잎이 살아 움직이는 듯 정교하고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댓잎은 바람을 맞으며 한사코 대나무에 매 달려 있으려 한다. 그런가 하면 바람은 반드시 대나무로부터 댓잎을 떨구려고 노력한다. 이 상황을 그림은 절묘하게 묘사하고 있다. 댓잎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懸解(현해)다. 댓잎이 스스로 대나무를 놓아버리는 순간 댓잎은 모든 구속으로부터 그리고 그 구속에서 만들어진 모든 상황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하지만 지금 대나무는 그 경지를 절대 알 수 없다. 오로지 대나무부터 떨어지지 않으려 할 뿐이다. 그것만이 오로지 살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장자 양생주에서 현해는 삶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난 단계(매우 좁게 이야기하면 곧 죽음)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 문제는 장자나 부처, 서양의 실존철학자들의 공통된 문제이자 동시에 과제였고 또 우리에게도 언제나 함께 하는 삶의 문제이기도 하다.


百尺竿頭進一步(백척간두진일보)


이즈음 세상의 화두는 행복한 삶이다. 행복하다는 것은 불편함보다는 편안함이요, 참기보다는 저지르는 것이다. 미래보다는 현재에, 준비보다는 즉흥적인 것이 더 중요한 가치가 되고 말았다. 오죽하면 ‘소확행’이라는 말이 있을까? 이 얼마나 나약한 모습이란 말인가! 비록 백척간두진일보는 아니더라도, 우리는 댓잎이 마침내 바람에 떨어지는 그 순간을 상상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 순간, 즉 댓잎이 바람에 의해서든 아니면 댓잎의 자의에 의해서든(그럴 리야 절대로 없겠지만) 대나무로부터 떨어지는 순간 지금까지의 대나무에 종속된 삶으로부터 완벽히 자유로워지는 순간이다.


동시에 불확실성과 엄청난 위험에 내던져지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백척간두진일보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좀처럼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있다. 우리의 인식 앞에 ‘번뇌’가 막아 서기 때문이다. 번뇌를 어원인 산스크리트어 크레샤(klesa)는 ‘마음을 더럽히는 것’, ‘상처 주는 것’, ‘괴롭히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말로 한다면 우리의 순수 의지에 반하는 그 모든 불편한 마음이 모두 번뇌일 수 있다. 번뇌 중에 근본 번뇌로 일컫는 것으로 탐욕, 성냄, 어리석음, 오만, 의심, 그리고 아견, 즉 자신의 모습에 집착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백척간두 위에서 진일보를 막는 것은 오직 자신이라는 이야기다.


다시 바람 부는 댓잎으로 돌아가서, 벌써 몇 개의 댓잎은 허공을 자유롭게 떠돌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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