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영화 "밀정(密偵)" 후기

송강호를 위한 송강호의 영화

by 김준식

영화의 줄거리 일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송강호의 등장

영화관에 불이 켜지고 앤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순간, 어떤 영화든지 두 시간 가까이 관람한 그 영화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는 거의 끝이 난다. 늘 그래 왔던 것처럼 나는 서두르듯이 영화관을 빠져나왔다. 지극히 개인적인 가족사에서 비롯된 약간의 비감함, 그리고 약간의 찝찝함이 마음에 남아 있어, 아내와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대체로 이런 부류의 영화가 주는 개운치 않은 뒷맛 때문이리라.

정탐꾼으로으로서의 삶에 회의하는 송강호의 암시

영화의 지배자는 단연 송강호(이정출 역)였다. 그가 출연하는 영화는 그의 느낌이 너무 강하여 모두 비슷하게 보이는 약점이 있기는 하지만, 역시 우리 시대의 몇 되지 않는 명배우임에 틀림없다. 영화에서 그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으로부터 그가 마지막 사라지는 장면까지 그는 화면 전체를 그의 느낌으로 채울 수 있는 배우다. 때론 희극적이기도 하고, 때론 비극적인 그의 모습은 이 영화가 보여주려는 주제의식과 무관하지 않다. 이를테면 밀정이라는 매우 특별한 역할은(비단 이 시기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을사늑약 이후 일제 강점기의 시대 공간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핵심 단어로서, 단어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 이미 강렬한 느낌을 준다. 거기에 송강호의 희극적 페이소스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밀정 이정출의 삶과 행동에 대한 관람자의 시선은, 어쩌면 감독의 의도이자 의견일 것이다. 특히 이정출의 재판 장면에서 기이하게 우는 장면은 이 영화가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 무엇이며, 동시에 송강호라는 배우가 어떤 배우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선택의 기로에 선 송강호

영화적 공간으로서 폐쇄공간(열차 안)은 극적인 긴장도를 높이는데 꽤 쓸만한 도구 임에 틀림없다. 영화 중간 이후 상당 부분을 감독은 폐쇄공간에 할애하는데 이것은 극적인 긴장도의 상승이 필요한 상황에서 적절하게 폐쇄공간 장치를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엄태구(하시모토 역) 와의 식당 칸의 짧은 총격전은 구성에 있어서나 액션의 밀도에 있어서나 매우 잘 짜인 장면으로 생각된다. 공유(김우진 역)의 신호에 따른 송강호의 하시모토에 대한 총격은 이 영화의 분위기를 급변시킨다. 의열단장 정채산(이병헌 분)과 김우진의 의도적인 접근과 공작에 따른 심리적 갈등을 겪고 있던 이정출이 마침내 스스로 삶의 노선을 결정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설득당하는 송강호(이정출)
너무나 작위적인 극중 염계순의 역할


염계순(한지민 분)과 김우진의 매우 불투명한 애정관계는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의문으로 남는다. 단지 사진 촬영이라는 장치만으로 둘의 애정 관계를 추측하기에는 영화가 보여주는 정보는 대단히 약하다. 결국 이 둘의 애정관계의 증거인 염계순의 사진이 영화적 사건의 열쇠가 된다는 것도 매우 작위적인 느낌이 있다. 따라서 염계순의 죽음에 대한 김우진의 슬픔은 관객에게 너무나 가볍게 느껴진다. 오히려 이정출의 오열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이 영화에서 가장 큰 감독의 실책은 형무소 장면이다. 김우진이 이정출의 거사 소식을 듣고 보이는 반응의 영화적 묘사는 공유라는 배우의 역량이 미치지 못한 면도 없지는 않겠지만 그때까지의 영화적 서사를 잠식하는 장면이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형무소 벽체의 벽돌에 새겨져 있는 글씨를 클로즈업하는 장면은 이 영화를 극영화에서 다큐멘터리 영화로 추락시키는 장면이다. 관객들의 수준을 생각한 감독의 배려로 보기에는 너무나 천박하다.

지나친 엄태구
의외의 악역

악역 하시모토(엄태구 분)의 이미지는 일본이라는 절대악의 이미지를 오히려 희극 화하는 느낌이어서 극적 몰입감을 상당 부분 방해했다. 이런 부류의 영화에서 극적인 긴장도나 무게는 악역에 의해 결정되는 면이 있는데 배우 엄태구의 과도한 표정연기는 오히려 희극적 이미지를 떠올리게 했다. 오히려 히가시 역의 일본인 즈루 미 신고가 의열단원들의 고문 장면에서 보여주는 무표정이 악역의 이미지를 더 강하게 느끼게 했다.


사족
1.
의열단이 등장한 최근의 영화(암살)를 통해서 의열단이 무장독립투쟁의 단체임이 널리 알려졌다. 물론 의열단의 존재를 몰랐던 것은 아니었지만 영화에서처럼 먼 타국에서 그리고이 땅 곳곳에서 피를 흘렸던 그들을 떠 올리며 오늘을 사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본다. 특히 여전히 득세하고 있는 친일의 세력들은 이제 본심을 드러내 놓고 우리의 현실에서 이죽거리는 것을 보며 우리는 자괴감에 빠지고 만다. 불과 80여 년 전 우리의 선조들은 일본이라는 절대 악을 타도하기 위해 타국에서 그리고 이 땅 안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는데 지금을 사는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하

2.

배우 이병헌이 의열단장 정채산 역으로 등장한 것은 감독의 뜻이겠지만 배우 이병헌에 대한 이미지를 생각해볼 때 약간의 실수임에 분명하다.


이미지는 네이버에서 가져왔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정태춘, 박은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