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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적 감흥

일출과 일몰에 대한 생각

by 김준식
일출
일몰

일 년 중 아침 일출과 저녁 일몰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가 요즈음이다. 공기가 건조하여 빛의 산란을 돕고 산란된 빛은 구름과 하늘이 어울려 인간의 언어로 형용하기 어려운 공간과 느낌을 매일 창조해낸다.


그 화려한 빛 무리는 안타깝게도 무음이다. 하지만 그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위대한 음악을 듣고 있는 것과 같은 감흥을 느끼기도 한다.


인간의 오감으로 전해지는 자극은 결국 우리의 머릿속에 잠재된 기억들을 떠올리게 하고 그것들은 새로운 자극과 어울려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아름다운 소리는 아름다운 광경과 어우러지고, 향기로운 냄새는 맛있는 음식과 조화를 이룬다. 좀 더 나아가 아름다운 광경과 맛있는 음식이 조화를 이루는 공감각으로 발전하는 예도 있는데, 여행에서 맛있는 음식은 여행의 기억을 더욱 행복하게 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일 것이다.


아름다운 광경에서 음악적 감흥을 느낀다는 것은, 인간 내부에 잠재해있는 질서와 조화의 모나드가 발현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모나드(Monad)’란 모든 존재의 기본 실체가 표상(表象)되는 것이다. 즉, 우리 인간의 음악적 감성은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기본적 감흥으로서 특정한 계기가 주어지면 언제나 밖으로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방법이나 기능의 문제일 뿐, 누구에게나 위대한 감흥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음악이란 것은 자연의 내부에 필연코 존재하는 ‘로고스’ 일 것이다. 또 음악은 이러한 자연의 로고스에 의해(즉, 외부의 자극에 의해) 인간 내부에서 발현되는 ‘파토스’의 성질도 함께 가지고 있는 양면적 실체이다. 그리하여 시각적 감흥이 다시 음악으로 연결되는 이 절묘한 시, 공간인 아침 이 순간은, 로고스와 파토스가 여러 개의 사물과 관념을 파기하고 공존하는 순간인 것이다.


소리를 전제로 하는 음악은 쉽게 파악하거나 감지할 수 없는 무정형의 진동이 일정한 방식을 통해 조화로운 것이 되었을 때, 비로소 인간의 감흥을 발현시킬 수 있다. 이 일정한 방식은 인간 내부에 이미 존재하는 맥박, 호흡의 일정 성에 근거하여 빠르기와 끊김을 수용하고 거기에 여러 종류의 음색을 조화시키고 그것들의 높낮이와 길이를 조절하여 마침내 음악이 되는 것이다.


다시 일출과 일몰로 돌아가서 그것들의 음악적 감흥을 되새겨 보자. 시간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그 모습이 변화하는데 이것은 리듬일 것이다. 그리고 태양과 구름, 혹은 지평선, 수평선의 경계로 생겨나는 높낮이가 있는데 이것은 멜로디임에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일출과 일몰 모두 색의 변화가 환상적이다. 그것을 음악적으로 이해하자면 바로 화음이 만들어지는 순간이다.

그런데 우리의 고막을 때리는 파동이 없으니 누구나 이 모든 것을 느끼지는 못한다. 하여 아침 이 순간은 지극히 개별적인 음악이 되어 누구에게는 엘레지가 되고, 누구에게는 교향곡이 되며, 누구에게는 트로트가 되기도 한다. 오늘 아침 일출은 나에게 정태춘의 노래를 생각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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