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그림. 4

관동명승첩(關東名勝帖) 중, 월송정도(越松亭圖) 1738

by 김준식
겸재 정선 작, 관동명승첩(關東名勝帖) 중, 월송정도(越松亭圖)1738. 지본 담묵.
가쓰시카 호쿠사이가 제작한 목판화,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1831


겸재 정선 작, 옹천. 비단에 담채, 1711

파도가 넘실대는 동해 바다가 저 멀리 있지만 우리의 삶을 위협할 정도의 파도는 아니다. 호쿠사이의 그림처럼 파도가 위협적이지 않은 것은 우리나라가 섬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바다가 우리의 삶을 지배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겸재의 그림 곳곳에서 자연에 대한 겸재의 사상이 보인다. 그림 옹천(그림 참조)에서 파도는 멀리 저 밑에서 넘실대지만 산허리를 따라 도는 나그네를 위협하지는 않는다. 산과 바다, 그리고 사람은 언제나 비슷한 거리를 유지하며 조화롭게 유지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소나무 숲이 간결한 필묵으로 묘사되어있다. 점점 짙어지는 잎을 묘사하는 파묵(破墨)의 기법이 절묘하다. 그런가 하면 나무 둥치는 의외로 간결한 선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겸재가 그린 그림 들 중 사뭇 특이한 점이다. 겸재는 강한 준법(皴法 - 산수화를 그릴 때 산이나 바위, 언덕의 입체감과 명암, 질감 등을 나타내기 위해 표면을 처리하는 기법)으로 산과 암벽을 묘사하여 강렬한 느낌을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박연폭포와 청풍계, 금강전도에 나타난 준법은 겸재의 특기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이 그림에서는 그의 특기를 조금 줄인 대신 담묵(淡墨)으로 표현된 바다와 강과 야트막한 구릉이 비교적 아늑해 보인다. 물론 월송정 앞 쪽 바위 암벽은 이런 준법이 약간은 보이지만 점묘로 표시된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아 겸재의 또 다른 면을 느낄 수 있다. 정말 작게 표현된 두 사람(하나는 말을 끌고 또 하나는 타고 있으니 엄격하게 말 한 마리 사람 두 명이다.)의 모습은 자연이라는 압도적인 풍경에서 인간이란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가를 그저 조용하게 보여준다.


현재의 월송정은 지금 이 그림보다 훨씬 더 앞쪽으로 옮겨 지어졌지만 당시의 월송정은 민가와 가까이 붙어 있어 사람들이 한결 더 수월하게 이용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화면의 아래쪽으로 흐르는 강은 지금은 사라졌지만 당시는 제법 넓은 개천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이니 다양한 어족 자원들이 어부들에게 잡혔으리라 짐작된다.


진경산수화가 겸재로 인해 이 땅에 뿌리를 내리던 이 즈음, 조선의 곳곳이 겸재에 의해 있는 그대로 옮겨졌다. 하지만 너무나 자연의 위대함만이 강조된 나머지 그림 속 당시 사람들의 구체적 모습은 대체로 생략되거나 너무 작아 그들이 입고 있는 복색이며 그들의 표정은 읽을 수가 없다. 물론 이것은 사상과 이념의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17세기 서양 회화가 보여주는 그 시대의 정확한 모습이 지금을 사는 그들의 후손에게 얼마나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지를 생각해보면 겸재의 위대한 산수화 앞에 지금의 내가 가지는 이 어리석은 욕심에 대해 정작 그림을 그린 겸재는 어찌 생각할까? 밑에 있는 할스(Frans Hals the Elder 1582-1666)의 그림을 참조.


Frans Hals, De magere compagnie, 1637. Oil on canvas, 209 x 429 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