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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Jun 23. 2016

Tepidarium de Pompei. 1853  

변화의 의미 – ‘물화(物化)’

Tepidarium de Pompei, 1853. Oil on canvas, 171cmⅹ258cm

Théodore Chassériau(테오드르 샤세리우)의 고전과 낭만이 혼재하는

 Tepidarium de Pompei(폼페이의 대욕장) 1853


Théodore Chassériau(테오도르 샤세리우, 1819~1856)는 El Limón, Samaná(당시 스페인 지배령이었고 현재는 도미니카 공화국의 산토도밍고)에서 1819년 태어났다. 그는 앵그르와 들라크루와의 영향을 동시에 받았으나 전체적으로 앵그르보다는 들라크루아의 영향을 그의 작품에서 더 강하게 느끼게 되는데, 이런 이유로 그를 낭만파 화가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회화의 표현방식은 낭만파 화가의 범주에 포함되지만 회화의 내용은 역사적 이미지와 신화적 이미지를 즐겨 사용했기 때문에 그를 역사화파(고전)의 후계자로 보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샤세리우는 파리로 이주하면서 19세기의 자유로운 회화의 주제를 보고 느꼈으며 북아프리카의 알제리 여행을 통해 이전의 역사화파적인 요소에 더하여 낭만적 회화의 표현방식, 그리고 알레고리를 포함하는 회화로 발전하게 된다. 


폼페이는 AD 79 년 로마 티투스 황제 시절,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에 따라 갑자기 화산재로 뒤덮이는 바람에 의도하지 않게 그 당시의 상황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가 18세기부터(정확하게 1748년) 발굴이 시작되어 현재도 발굴이 계속되고 있는 곳이다. 폼페이는 항구도시로서 로마제국 번영이 시작되던 시절 무역의 중심 항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드나들던 국제도시였다. 


따라서 물자와 사람이 풍부했던 만큼 당연히 환락과 유흥의 도시이기도 했다. 현재 발굴된 유적에서는 이곳이 환락과 유흥의 도시라는 증거들이 곳곳에서 나오는데 폼페이의 중심 거리(델라 본단차거리 : 직선으로 약 2~3km 정도의 거리로서 도시 중심부를 관통하는 대로) 여기저기서 여러 개의 유곽(술집과 매매춘이 이루어졌던 곳)의 흔적이 발굴되고 있으며 특히 이 그림과 같은 대욕장의 흔적도 발굴되고 있기 때문이다.


로마는 목욕문화가 발달한 나라로 잘 알려져 있는데 로마 시내에는 동시에 수천 명이 목욕을 즐기던 대욕장도 있었다고 한다. 이 그림의 Tepidarium(테피다리움)은 당시 로마에서 유행하던 미온의 증기욕탕으로서 우리가 잘 아는 핀란드에서 유래한 Sauna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폼페이는 지중해성 기후로서 연중 따뜻하기 때문에 고열의 증기보다는 미온의 증기로 가볍게 피로를 푸는 장소가 바로 테피다리움이다. 


테피다리움에서 목욕이 끝나고 몸을 말리는 중간 장소의 풍경이 이 그림에서 묘사하고 있는 장면이다. 이곳에 모여 있는 많은 여인들은 아마도 당시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여인들이었거나 아니면 귀족의 부인들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인들이 음식을 나르는 것으로 보아 여기서 먹고 마시고 쉬면서 여자들끼리 친교를 나누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샤세리우는 1840년 이탈리아의 폼페이를 여행하고 난 뒤 오랜 시간 동안 폼페이의 풍경을 고민하다가 13년이 지난 뒤에야 이 그림을 그렸는데 그의 고민의 중점은 고전의 영향과 낭만의 분위기를 넘어서려는 것이었다.

여성을 묘사함에 있어 샤세리오는 앵그르의 전통과 들라크루아의 혁신을 골고루 수용했음을 알 수 있다. 정교한 매끈함을 가진 여성의 몸과 얼굴의 표현은 앵그르를 따르고 있지만 표정의 다양함과 사람들의 자세들은 매우 자유롭고 창의적이다. 뿐만 아니라 명암의 극단적 교차를 이용한 공간의 확대와 인물의 개별적 역동성은 들라크루아와 많이 닮아있다.


물론 이 그림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매우 고전적인 느낌이 강하다. 그림의 인물들은 전체적으로는 대단히 정렬된 상태이며, 구도 또한 정면을 중심으로 방사형 구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샤세리우의 예술적 성향이 고전과 낭만의 점이지대에서 갈등하고 있었음을 잘 설명하고 있다. 한편으로 샤세리우의 이러한 경향은 그의 회화 속에서 두 명의 극단적 거장, 즉 앵그르와 들라크루아가 화해하는 장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장자 이야기


변화의 의미 – ‘물화(物化)’


장자의 철학은 ‘변화(變化)의 철학’이다. 천지 만물은 변화의 가운데 있다는 것이 장자의 주장이다. 그래서 “장자” 전체에서 변화의 이야기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장자는 제물론에서 대단히 유명한 ‘나비’와 장자 자신의 ‘꿈’ 이야기를 통해 ‘물화(物化)’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장자가 ‘나비’와 ‘장자’ 자신이 반드시 구별이 있다고 하고, 이것이 ‘만물의 변화 즉 물화(物化)’라고 한 것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장자가 나비로 또는 나비가 장자로 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자와 나비는 결국 하나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보자면 자아(自我)와 외물(外物)이 결코 다른 것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꿈속의 나비가 장자인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꿈속에서 훨훨 날아다니던 나비가 장자라는 것을 알려면 반드시 꿈에서 깨어나야 알 수 있다. 장자가 꿈을 깨지 않았다면 꿈속의 나비가 ‘나는 장자인 나비다.’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장자는 자기가 나비의 꿈속에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지만 나비가 꿈을 깨지 않는다면 이 역시 알 수가 없다. 장자에서 나비로의 변화, 또는 나비에서 장자로의 변화는 이렇게 변화의 전(前)과 후(後)를 알 수 없다.  


물화(物化)에서 화(化)의 의미는 글자의 구조를 보면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화(化)는 인(人)과 비(匕)가 합쳐진 글자이다. 이는 바로선 사람(人)과 거꾸로 된 사람(匕)을 의미하는데, 사람이 바로 서있다가 거꾸로 되는 것을 화(化)로 본다. 무엇에서 무엇으로 모양이 바뀌는 즉, 사람이 바로 서 있다가 거꾸로 서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실제로 ‘장자’에서 화(化)가 죽음을 뜻하는 부분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무엇이 된다는 것, 변화한다는 것인데 이것을 또 다르게 해석하면 죽음과 같은 경계를 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어디까지나 영원한 장자도 없고, 영원한 나비도 없다. 그리고 우리는 죽음 너머의 세상을 알 수 없다. 마치 꿈을 꾸고 있을 때는 꿈속의 나비만, 꿈을 깨고 나면 장자만 있는 것처럼, 지금 살아있는 나만이 있을 뿐이다. 호접지몽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으로 생각을 확장해 볼 수 있다. 죽음 너머에서 보면 살아있는 나는, 또 하나의 죽음일 수도 있다. 만물은 이렇게 알 수 없는 세계로 끊임없이 화(化)하고 있을 뿐이다.


장자 제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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