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가 시작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문명의 생산과 유지 발전의 중심에는 民이 있다. 民은 (새 봄, 새싹을 본떠 만든 象形 자) 대 다수 사람들을 지칭한다. 즉, 왕조 시대의 성도 이름도 모르는 무지렁이로부터 최근 보통의 우리들까지 이 사회를 이루고 유지하는 핵심 구성원이다. 안타깝게도 이들은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과정에서 그에 걸맞은 대접이나 대우를 받은 적은 거의 없다. 오히려 어떤 상황에서도 묵묵하게 그 상황을 견뎌내고 있는 존재이거나 심지어 상황의 소모품으로 전락하고 만 존재들이다.
물론 그렇지 않고 권력자의 속임수에 빠져, 또는 권력자가 내민 달콤한 유혹에 빠져 자신과 같은 존재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괴물들도 역시 이 民들이었다. 역사에서 우리는 그 사례를 너무나 많이 보아왔고 현실에서도 여전히 그런 부류들을 여전히 보고 있다.
권력이란 어차피 소수만이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거기에 民이 끼어들 자리는 별로 없어 보인다. 하지만 무슨 꾐에 빠졌는지 어떤 유혹을 받았는지 그 권력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처럼 착각 속에 빠져있는 民들을 본다. 그들의 정신상태를 모두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까지 된 과정도 잘 모른다. 다만 그들을 저 지경으로 몰아간 권력자들! 그 권력자들이 더 문제라면 문제다.
그렇다. 세상에는 늘 정과 반이 있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변증법!
하지만 절대적인 것도 가끔 있다. 아직까지는 변하지 않는 태양처럼, 엄청나게 빨리 움직이는 지구처럼, 중력처럼, 확연히 알 수 있는 절대적인 것도 분명 있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한 단계만 내려오면 절대적인 것은 사라지고 만다. 가치가 개입되는 순간 세상은 양분되기 시작한다. 이 교차점에 권력이 작용하여 자신들이 필요한 인력 혹은 자산들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가공하게 된다. 이 대상이 되는 존재들은 정확하게 民들의 절반일 수 있다. 그들의 약점을 이용하기도 하고, 또는 강압을 통해 세뇌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약간의 권력의 맛을 조금 느끼게 해주는 방식으로 그들을 조련하여 절반의 民들을 제압하려는 것에 사용한다. 이렇게 나눠진 民들은 더러 서로 싸우다가 죽기도 하고, 피맺힌 원수가 되기도 하지만 권력자들은 그 상황을 더 좋아하고 그런 상황을 부추겨 서로 영영 돌이킬 수 없는 단계에 이르게도 한다. 어차피 어찌 되어도 아무 관계없는 존재들이니까!
보라! 한반도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오래된 권력이든 새로운 권력이든 모두 이렇게 외친다. “국민을 위해~”라고 하지만 이 국민은 저들에게 필요한 국민이다. 도대체 정의라는 것이 있기는 하는가? 늘 정반합이 작용한다. 그래서 권력자들은 오히려 행복하다. 어떻게 되든 권력자들에게는 손해 가는 일은 없다. 그저 民들만 괴로울 뿐!
1979년 죽은 독재자의 제삿날 그 권력의 하수인을 자처하는 어떤 인사가 내뱉는 쓰레기 같은 말을 뉴스에서 들으며 2019년 10월 28일 월요일 밤을 보내자니 기분 참 더럽다.
위 그림은 러시아 화가 Viktor Vasnetsov의The Flying Carpet (1880)이다. 정말 저리 날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