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수년 전 실업계 고등학교에 재직하면서 3학년 담임을 맡고 현장실습이라는 제도와 마주했던 적이 있다. 실업계 고등학교의 교육목표가 취업이기 때문에 당연한 과정으로 이해된다. 3학년 1학기 초부터 자신의 전공(기계, 전자, 자동차, 디자인, 등등)과 밀접한 회사들을 알아보고 학교에 의뢰가 들어온 회사를 중심으로(간혹 본인이 직접 실습 처를 구하는 경우도 있다.) 현장 실습 회사를 정하여 2학기가 되면 각자 자신이 선택한 회사로 현장실습을 떠나게 된다. 통상 졸업 이전에 돌아와서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있지만 어떤 아이들은 졸업 때까지 있기도 하고 더러는 졸업 이후에도 그 회사에 다니는 경우도 있다. 마지막 경우가 가장 이상적인 경우일 수 있겠지만 내가 실업계 고등학교에 재직할 당시에 이런 학생은 소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한 해 기계과 3학년 담임을 하면서 우리 반 아이들을 창원, 울산, 진해 등지에 현장실습을 보내고 10월쯤 추수 지도(이른바 현장 점검의 다른 이름이다. 아이가 잘 근무하고 있는지 혹은 근무 여건은 어떤지 등에 대해 담임교사로서 확인하는 절차이다.)를 나간 적이 있다. 기계과의 특성상 금속재료의 절단, 절곡, 프레스, 용접, 용해 등 위험한 작업이 대부분인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일을 하는 현장에서, 우리 반 아이들을 보는 것은 사전 지식이나 이론과는 별개의 문제로 다가왔다.
맨 처음 간 곳은 울산의 컨테이너 제조 공장이었는데 컨테이너를 제조하면서 철판과 철판 사이에 스티로폼을 분사하여 보온 보냉의 컨테이너를 만드는 작업 현장이었다. 우리 반 아이는 약 섭씨 100° 에 가까운 스티로폼 액체를 철판 사이에 주입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안전모에 방진 마스크, 방호복을 입은 아이는 내가 온지도 모르고 작업을 하다가 나를 보는 순간 아무 말도 없이 펑펑 울고 말았다. 처음 당해보는 엄청난 일에 담임을 보자 갑자기 감정이 격해졌던 모양이다. 다행히 그 회사는 안전에 매우 유의하여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지만 아이는 휴게실에서 스티로폼에 덴 화상 자국과 함께 철판에 다친 손도 내게 보여주었다. 물론 심한 상처는 아니어서 아물기는 했지만 마음이 참으로 아팠다. 당장 학교로 데려오고 싶었지만 그럴 수 있는 사정도 아니어서 조심을 당부하고 자리를 떴지만 회사 정문까지 따라 나와, 오래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을 자동차 백미러로 보았다.
두 번째 간 곳은 창원의 금속가공 공장이었는데 우리 반 아이는 플라스마 용접기로 쇠를 절단하는 작업의 보조 작업자로 일하고 있었다. 금속을 자르니 금속 분진이 온통 가득하여 방진 마스크를 쓰고 아이를 만나러 현장에 갔다. 금속을 자르니 당연히 엄청난 굉음과 분진이 날리는 곳에 안전모와 안전 안경을 쓰고 방진마스크를 한 우리 반 아이를 발견했지만 한 동안 부르지도 못했다. 소음도 소음이지만 작업의 일관성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그 자리에서 약 10분간 작업을 지켜보면서 그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깨달았다. 아이를 만나니 안경과 마스크를 쓴 곳을 제외하고는 금속 분진 탓에 얼굴이 새까맣다. 이번에는 내가 울먹이며 이야기하고 저도 따라 울었다.
내일은 2018년 12월 10일 밤 태안화력 9·10호기 석탄 이송 컨베이어 벨트 기계에 끼어 사망한 김용균 씨의 일주기다. 내가 실업계 교사로 있던 시절이 거의 20년이 다 되어 간다. 20년 전에 우리 반 아이들이 실습을 갔던 그 공장에 위험한 작업환경이 2018년에도 그대로였고 그 환경 탓에 소중한 우리 젊은이가 목숨을 잃었다. 얼마 전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고 이대로라면 아마 앞으로도 이런 일은 계속해서 생길 것이다. 회사 관계자, 회사 경영자, 정부, 국회의원, 아무도 관심이 없다. 자신들의 위험이 아니기 때문이다. 죽음을 매 순간 느끼며 일하는 노동자가 이 나라에서 얼마나 많은지 이 정부와 이 사회는 아무 관심이 없다. 죽은 자만 재수가 없어서 죽은 것이고 그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는다. 몇 푼의 보상금으로 무마하려는 자본가들의 논리가 치 떨리도록 무섭다. 노동 환경을 개선하고 위험을 방지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이며 그것을 하지 않는 정부와 국가는 민주주의 근본인 국민이 주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정부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단 한번 만이라도 그 위험천만한 곳에 자식과 제자를 둔 부모와 선생의 마음을 헤아린다면, 지금 당장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현장을 점검하고 감독하며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일 것이다. 행복한 출근과 행복하고 안전한 퇴근을 제발 보장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