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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박, 그리고 유혹

Joachim Patinir 의 종교화

by 김준식


Crossing the River Styx,oil on panel, 64 × 103 cm (25.2 × 40.6 in), Prado Museum, Madrid

“Landscape with Charon Crossing the Styx”


요하임 파티니르는 플랑드르 출신의 화가이다. 히에로니무스 보스처럼 지평(수평) 선을 화면 위쪽에 배치시키고 그 속에 시선을 넌지시 두어 전체를 공상처럼 또는 환상처럼 느끼게 하는 그림을 그렸다. 그가 그린 대부분의 그림은 풍경화로서 녹색과 갈색을 주로 쓰고 푸른색과 검은색 그리고 붉은색을 사용하여 종교적 신성을 극대화한 장면을 주로 그렸다. 그는 출애굽기의 여러 인상적인 장면을 그렸으며 단테의 신곡 또한 그가 그린 그림의 중요한 주제였다.


스틱스(Styx)는 그리스 신화에서 지상과 저승의 경계를 이루는 강이다. 스틱스는 명계를 아홉 번(어떤 이는 일곱 번)을 휘감는데, 스틱스와 플레게톤, 아케론과 코키투스는 저승의 한가운데의 거대한 늪에서 합류한다. 다른 중요한 강으로 레테와 에리다누스가 있다. 뱃사공인 카론은 이 강을 지키면서 망자를 강의 저편으로 보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스의 신들은 맹세를 할 때 스틱스 강에 대고 맹세를 하고, 제우스라 하더라도 이 맹세를 거역해서는 안 된다. 스틱스 강은 그 강에 몸을 담그는 자에게 불멸을 선사하기도 했는데, 아킬레우스는 어렸을 때에 그 강에 몸을 담가 불멸의 힘을 얻게 되었다. 다만 그녀의 어머니(테티스)가 손으로 잡고 있던 발뒤꿈치만은 물에 젖지 않아 치명적인 급소가 되고 말았다.


그림의 중앙에 망자를 태운배를 저어 가는 카론이 보인다. 강을 중심으로 이쪽은 낙원이며 저쪽은 지옥이다. 그림의 앞부분에 물살이 거세지는데 그 이유는 4개의 강이 합류하여 지옥의 늪으로 떨어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뱃머리의 방향으로 보아 배에 타고 있는 저 영혼은 지옥으로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낙원의 강둑에는 천사들이 손짓을 하지만 지금 배를 타고 있는 저 영혼의 운명은 그가 살아온 바대로 결정될 것이다. 저 멀리 봄의 분수(하늘에서 흘러 온 레테 강이 만드는 분수)와 망각의 강 레테가 보인다. 그런가 하면 지옥의 입구에는 무서운 문지기인 머리가 셋 달린 케르베로스가 웅크리고 있고 더 멀리 지옥불의 화염이 보인다.


파티니르가 묘사한 지옥과 천국의 경계에 대한 묘사는 그리스 신화를 다시 기독교적으로 해석하고 그 상황에 맞는 색깔과 구도를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종교적 존엄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당시 플랑드르의 가톨릭은 1517년 루터의 95개 조의 반박문으로 시작된 종교개혁의 열풍으로 신교의 세력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상황이었고 파티니르는 이런 상황의 중간에서 공방(길드)에서 강요하는 종교적 위엄을 강조하는 그림을 제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 그림을 본다면 종교적 존엄(가톨릭의 존엄)을 위해 대중들에게 지옥의 무서움과 천국의 달콤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계몽적이면서 동시에 위협적 메시지를 담으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여기저기의 신화를 차용하고 기독교의 교의를 가미하여 이와 같은 독자적인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이다. 예술이 정치에 이용되는 현실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 없고, 예술가가 정치에 굴복하여 그의 예술적 의지를 굽히는 것 또한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참 ! 요즘은 정치보다는 자본이 더 힘이 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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