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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페르노' 후기

난삽함과 엉성함

by 김준식
이 영화에서도 톰은 열심히 뛰어다니며 퍼즐을 풀어나간다.

#1 지옥


지극히 개인적으로 나는, 댄 브라운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유는 별로 없지만 그의 책을 읽고 난 뒤 그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만든 영화는 거의 실망한 경험이 많아서일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의 소설을 읽지 않고 영화를 보기로 했다. 따라서 이 영화 후기는 순전히 영화에만 국한하며, 댄 브라운의 소설에 대한 후기는 아님을 미리 밝혀둔다.

보티첼리의 지옥도

인페르노(Inferno – 지옥)는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지옥의 이름이다. 기독교적 세계관의 가장 중요한 동기는 포상과 징벌이다. 물론 다른 종교들도 이러한 2분법으로 세상을 규정하는 것이 대부분 이기는 하다. 신(여호와) 이 정한 규칙을 지키면 보상으로 영원한 즐거움을 누리고(천국) 그렇지 않으면 징벌로서 영원한 고통을 받는다는(지옥) 지극히 간단하고 2분법적인 논리다. 신앙의 문제와는 별개로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지식과 논리, 그리고 심지어는 철학적 논의를 덧씌워 이 간단한 2분법을 장엄화하고 신성화했다. 이 영화는 그 주변부의 이야기로 이해할 수 있다.



#2 허약한 스토리


단테의 신곡 중 지옥(La Divina Comedy: Inferno)은 전체 아홉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화에서 보티첼리의 그림처럼 깔때기 모양의 지옥을 9단계로 나누는데 제1옥(獄) : Limbo, 제2옥(獄)∼제5옥(獄) : 상부 지옥, 제6옥(獄)∼제9옥(獄) : 하부 지옥으로 나눈다. 단테가 생각한 징벌은 철저한 동해보복이 원칙이다.(역으로 완전히 상반되는 벌칙도 있다.) 단테는 로마의 위대한 시인 베르길리우스(Publius VergiliusMaro)와 함께 지옥을 여행하며 지옥을 묘사한다. 그런데 영화는 지옥도만 보여주고 왜 지옥도를 보여주는지에 대한 극적인 당위성을 설명하지 않아 오히려 보티첼리의 지옥도는 매우 뜬금없이 느껴졌다.

인구문제와 환경문제는 지구라는 별이 당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 해법은 매우 다양하기만 하다. 낙관론과 비관론이 모두 타당한 근거를 내세우고 있지만 미래에 대한 예측은 조심스럽기만 한 것이 사실이다. 영화에서 억만장자 조브리스트(벤 포스트 분)가 가지는 태도는 매우 극단적이다. 서양의 과학은 합리성을 그 생명으로 하는데 과학자 조브리스트의 태도는 합리적이라기보다는 광적인 태도에 가깝다. 명분도 없고 실리도 없는 그의 태도에 대한 영화적 수사는 매우 미약하다. C.G로 창조한 지옥의 모습이 참으로 무섭고 끔찍하지만 영화가 가지는 허약한 논리구조 탓에 이러한 지옥의 공포는 다만 양념처럼 느껴졌고 조브리스트의 주장조차 공허하게 느껴졌다.



#3 반전


랭던(톰 행크스 분)의 논리적 추론으로 사건이 해결되는 이 영화 시리즈(다빈치 코드, 천사와 악마)에서 랭던의 추리는 매우 독보적이자 창의적이다. 이번 영화에서도 그의 논리적 추론과 창의적 아이디어는 빛을 발휘하여 사건을 해결하는 단초를 제공하는데 여 주인공 시에나(펠리시티 존스 분)가 여기에 약간의 보조자 역할을 하게 된다. 영화적으로 시에나는 천재로 설정되지만 그녀의 천재적 능력이 영화적으로 중요한 동기가 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반전의 인물로 묘사되는 그녀의 역할이 영화 내부에서 가치를 가지는 정도였다.

조브리스트에게 고용된 단체(영화에서 미 국방부를 위한 컨소시엄으로 소개되는)의 역할은 음모론에 입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댄 브라운의 다른 소설에서도 발견된다.) 영화 내부에서 역할, 그리고 이야기의 진행과정에 미치는 영향 등이 매우 엉성하고 동시에 타당성이 없어 보인다. 이것이 반전이라면 반전인데 연출의 기술 문제가 아니라 너무나 다양한 이야기를 단 몇 시간 만에 보여주어야 하는 영화적 한계라고 보는 것이 옳다.


피렌체 두오모
우피치 안에서 바라 본 바깥 풍경
아르노 강과 베끼오 다리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트 성당

#4 풍경


피렌체, 베니스, 이스탄불, 모두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럽에서 가장 가고 싶은 도시들이다. 어쩌면 전 세계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 기대를 그대로 반영하듯 하늘과 땅에서 이 멋진 도시들을 잘 보여준다. 특히 피렌체는 좀 더 상세하게 보여주는데 피렌체의 상징 두오모와 우피치 미술관, 베끼오 궁전, 베끼오 다리, 그리고 아르노 강을 보여준다. 베니스도 산 마르코 광장과 대성당의 이곳저곳을 보여주고 하늘에서 촬영한 베니스 전체의 모습도 보여 준다.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트 성당도 언뜻 보였다. 이스탄불은 사건의 핵심 장소인 지하 궁전에 집중하는 탓에 소피아 성당 외에는 이렇다 할 장소를 볼 수 없었다.



#5 사족


랭던의 젊은 시절 연인 신스키(시드 바벳 크누센 분)의 역할이 의외로 강렬했는데 랭던과의 미묘한 감정과 자신의 역할에 대한 스스로가 가지는 의지와의 심리적 교차를 무리 없이 표현하고 있다.

세계 보건기구의 중간 책임자인 부르더(오마 사이 분)의 역할은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한스 짐머의 음악은 천사와 악마에서 멈췄나 보다.


* 영화 장면은 네이버에서 가져왔으며 나머지 풍경 사진은 직접 촬영한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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