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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소나

일상의 회복

by 김준식

페르소나


바닥까지 내려앉아 버린 마음을 추스르는 일은 몇 개의 과정을 거쳐야만 된다. 마치 새로운 물건을 만들거나, 새로운 일을 시도했을 때처럼 실수를 줄이고 좀 더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하여 단계를 거쳐야 되는 것과 같다.


원인 없는 일은 없다. 하여 바닥으로 내려간 이유를 스스로 밝히는 일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의 경과에 따르는 내 마음의 최근 행로와 주위의 모든 일을 바둑이 끝나고 다시 바둑을 되짚어 보듯, 하나 둘 復碁해 보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 과하거나 부족한 부분을 발견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왜 과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부족하게 된 것인지 그 얇은 마음의 차이도 알게 된다. 시간이 필요한 이 과정은 아무래도 일상적인 일에서 조금은 자유로운 주말이 적합하다.


내부적인 원인, 이를테면 나의 의지 때문에 생긴 일이 밝혀졌다고 해서 모든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외부적인 것이다. 당연히 외부의 작용은 나의 의지와 매우 밀접한 함수관계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외부적인 것을 소홀히 볼 수는 없다. 오히려 나의 의지가 매우 작았음에도 상대적으로 큰 반작용이 있음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외부적인 변화와 작용점, 시간의 경과에 다른 추이, 그리고 그것에 대한 나의 반응까지를 살펴보고 나면 지금 내가 왜 이곳에 도달했는지가 어슴푸레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일이 끝났을 때 언제나 내가 가장 먼저 마주하는 문제는 ‘기대 가능성’이다. 이 기대 가능성은 나 자신으로부터 외부의 여러 부분에 이르기 까지 모두 적용될 수 있는 문제인데, 문제의 핵심은 스스로 기대가능성을 높이 설정하는 것이 문제다. 현실의 대부분은 기대보다는 거의 낮은 수준으로 일들이 이루어지는데, 미세하고 작은 격차가 나에게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또 하나의 문제는 기대 가능성을 아주 낮게 설정해두면 여러 가지 문제는 발생할 가능성은 확연하게 줄어들지만 삶의 의욕이나 에너지, 그리고 일상의 희망도 함께 줄어들기 때문에 가끔은 무력증으로 빠져 더 큰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기대 가능성은 양날의 칼이다.


오늘처럼 맑은 날, 내려앉은 나의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지난 몇 주, 아니면 다만 지난주 동안의 내 삶의 여러 가지 일들을 復碁해본다. 하여 문득 오늘 아침, 명료해졌다. 결국 문제는 내 속에서 자라거나 또는 쇠락해간다. 욕망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나의 마음자리를 다시 한번 절감하면서 내부에 존재하는 ‘나’와 외부에 드러나는 ‘나’는 서로에게 가면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짙어진다. (결국 두 개의 '나'가 가지는 기대가능성이 다르다는 이야기가 된다.)

가을은 이제 여러 면으로 아름다움을 뽐내겠지만 그 역시 계절이라는 것과 시간이라는 것이 서로에게 보여주는 가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 맑은 날, 실체를 보려하는 나의 눈은, 한 없이 어둡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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