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생적 보수

by 김준식


아침 출근길에 라디오를 듣다가 ‘태생적 보수’라는 말을 듣는다. 도대체 어떤 경우를 태생적 보수라고 이야기할까? 이 땅의 보수주의, 혹은 보수를 톺아보고 태생적 보수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보수주의(保守主義, Conservatism)의 사전적 의미는 “관습적인 전통 가치를 옹호하고, 기존 사회 체제의 유지와 안정적인 발전을 추구하는 정치이념”으로 되어 있다. 이를테면 보수는 현상의 유지를 바탕에 두고 점진적이고 안정적인 변화와 발전이 핵심이다. 이러한 이념의 반대편에 진보주의가 있다. 진보주의는 사회 변혁을 추구하는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변혁이라는 말이 진보의 핵심 개념이다. 혁신적인, 그러니까 기존의 가치를 부정(반성)하고 새로운 가치로의 빠르고 충격적인 변화가 보수에 반대에 있어야 하는 진보다. (진보라고 생각하는 내가 조금 뜨끔하다.)


보수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들이 추구된다. 즉 ‘보수’라는 핵심을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보수주의가 출현한다. (예: 자유보수, 보수 자유, 자유 지상적 보수, 재정적 보수, 녹색 보수, 사회 보수, 정치 보수) 하지만 보수가 아닌데 간혹 보수의 틀로 오해되는 것들도 있다. 과거로의 회귀를 추구하는 반동주의, 현상을 유지하려는 수구 주의는 명백히 보수가 아니다.


모든 이념적 사조가 그렇지만 보수나 진보 역시 매우 상대적이다.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에 반대하여 나타난 사회주의는 진보로 확연하게 분류되지만 그 후 나타나는 이념의 분화는 분명하게 보수와 진보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대한민국 보수주의(이것이 정말 보수주의인가 하는 의문은 늘 있다.)는 그 바탕이 1948년 이승만 정부다. 정치적 자유주의와 반공주의, 그리고 미국식 시장경제가 이 땅 보수의 시작점이다. 거기에 한미동맹, 박정희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면서 이 땅의 보수는 특이한 보수주의가 되었다. 그런가 하면 대한민국의 보수주의의 바닥에는 반공주의의 질긴 인연으로 유입된 친일(반민족적)의 정서도 자연스럽게 흐른다.


2020년 4월 15일에는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있다. 보수와 진보의 싸움처럼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특정의 정치 세력 그들만의 리그로 보이기도 한다. 우리 같은 민초들에게는 다가갈 수도 없는 선거지만 어찌 된 일인지 ‘국민의 심판’ ‘국민의 선택’ ‘민주주의의 꽃-선거’ 등의 구호가 차고 넘친다. 맞는 이야기인가? 하기야 유권자이기는 하다. 그런데 유권자로서의 권력을 맛본 경험은 거의 없다. ‘1표가 가진 소중함’ 등의 구호는 너무나 낭만적인 표현 아닌가!


어쨌거나, 그러면 태생적 보수란 무엇일까? 우리나라에서 보수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뭐 그렇고 그런 이념을 가진 것이다. 그럼 태생적이라는 말은 무엇일까? 태어나서 구체적인 정치이념을 가지는 과정에서 보수의 가치만을 습득했다는 뜻인가? 生而知之가 아니니 이렇게밖에 이해할 수 없다. 아니면 진보적인 가치를 같이 공부했는데 보수를 선택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말은 이 상황에 맞지 않다. 왜냐하면 태생적 보수라고 지칭된 사람의 나이가 올해 30대 초반이고 과학고를 나왔으며 현재 1년된 변호사라는 것을 통해 유추해 본다면 이직은 두 개의 거대 담론(보수와 진보)을 모두 습득하고 취사선택했다고 보기엔 나이가 너무 어리다. 천재라도 불가능하다.


좀 더 설명하자면 보수 진보를 선택할 수 있을 만큼 공부할 충분한 시간이 없었고 다만 주어진 환경에서 습득된 것이 보수였을 것이고, 또 그것이 그 사람의 상황에 잘 들어맞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진보는 근본적으로 회의와 갈등이 그 기초가 되어야 한다. 끊임없는 반성과 치열한 자기 투쟁의 과정이 진보의 핵심이다. 이 땅에서 한 때 진보의 기치를 내세우다 나이가 들어 보수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는데, 그들이 그렇게 되는 것은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에서 패배했거나 아니면 스스로의 피로감으로 인하여 살짝 물러난 결과일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지극히 주관적인 내 생각이지만 ‘진보’와 ‘보수’ 중 불편 없이 수용할 수 있는 것은 보수 쪽이 더 가능성이 많다. 그것이 태생적 보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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