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ropolitan Museum of Art 그림 여행(1)
Metropolitan Museum of Art 그림 여행(1)
세월이 참 잘 흐른다. 지극히 상대적이기는 하지만 세월의 흐름을 몸으로 느낄 수 있을 만큼 빠르다. 코로나로 자신의 영역을 벗어나, 직접 가 볼 수 있는 곳도 한정되어 있다. 사람들은 은근히 짜증이 많아졌다. 잘 못 감정을 건드렸다가는 불의의 공격을 받기 쉽다. 이렇게 세상살이가 피곤하고 험한 지금, 한 때 보았던 그림으로 먼 나라여행을 해보고자 한다. 2020년 대선으로 민주주의가 거의 만신창이가 된 나라 미국, 그 미국의 뉴욕에 있는 “The Met”의 그림을 내 마음대로 골라 이야기해 볼까 한다.
Jean-Baptiste Greuze(1725~1805)作, Broken Eggs, 1756
세간살이가 있는 것으로 보아 사람이 살고 있는 공간이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창고 같은 공간에 세명의 사람과 한 명의 아이가 있고, 바닥에는 계란 바구니가 넘어져 계란이 몇 개 깨져 있다. 젊은 여자가 바닥에 체념한 듯 풀썩 주저앉아 있다. 남자의 옷차림으로 보아 상인으로(계란을 수집하는 상인) 보이는데 모자를 벗어 들고 계란이 몇 개 깨졌으니 거래를 못하겠다고 하자, 늙은 여자가 한쪽 팔을 잡고 남은 계란을 가리키며 저 것이라도 가져가라고 애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풍속화로 불리는 이런 류의 그림은 18세기 유럽 회화에서 큰 무리를 이루어, 많은 화가들이 이런 풍의 그림을 그렸는데 거시적으로 역사화의 범주 속에 풍속화라고 갈래를 지우지만 어쩌면 민중들 사이에서는 이런 그림이 정통 역사화, 이를테면 성서 이야기나 계몽적 이야기보다는 훨씬 더 많은 인기를 누렸을 것이다.
이 그림을 그린 그뢰즈 또한 역사화 및 풍속화가로 분류되는 프랑스의 화가이다. 프랑스 중부 트루뉘(Tournus) 출신인 그뢰즈는 스승을 따라 파리에 정착하여 작품 활동을 하였으나 초창기에는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탈리아 유학 후 평단의 관심을 끄는 몇 개의 작품을 전시하게 된다. 루브르 전시와 관련된 그뢰즈와 주최 측의 논쟁으로 미루어 볼 때 그뢰즈는 풍속화가(상대적으로 낮게 간주되는)로 평가되는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기 싫어했던 모양이다.
그뢰즈가 살았던 시대는 프랑스혁명의 기운이 싹트고 있던 시기였다. 왕족과 귀족, 지주들의 퇴폐와 무능 탓에 민중들의 삶은 피폐해졌고 곳곳에 내분과 균열의 조짐이 있었다. 하기야 이 시기나 2020년 지금이나 민중들이 살아내는 삶은 항상 곤고하다. 그림의 분위기는 이 모든 상황을 알레고리(allegory - 어떤 추상적 관념을 드러내기 위하여 구체적인 사물에 비유하여 표현하는 방법)적 방법으로 이야기하는데 화가인 그뢰즈 본인이 변혁의 생각이 강력하여 이중적 이미지를 통해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키려고 했는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알레고리는 사실 동양 고전에 매우 많다. 그중에서도 『장자』를 쓴 ‘장주’는 알레고리적 표현의 대가이다. 아예 노골적으로 『장자』 제27 편은 알레고리(寓言우언 - 한자로 표현한 알레고리)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장주’는 『장자』에 있는 말의 90%가 우언이라고 이야기했다.
이 그림에 핵심 주제인 깨진 달걀에 대한 해석은 매우 다양하다. 대표적인 것이 여성의 처녀성에 대한 비유인데 참으로 오래되고 문제 있는 해석이다. 아마도 이 그림을 그릴 당시, 그뢰즈 본인도 그런 의도로 그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21세기를 사는 나는, 깨진 달걀은 극단적인 사태의 변화로 보고 싶다. 어쩌면 다가올 혁명에 대한 조짐을 그뢰즈는 당시 사회의 분위기로 느끼면서 이 그림을 그렸는지 모른다. 아니면 막연하게 그렇게 깨져야 뭔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림을 그렸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랬기를 바란다.
풀썩 주저앉은 젊은 여자의 표정은 체념에서 기인한 담담함 조차 읽힌다. 그나저나 늙은 여자와 남자가 실랑이를 하며 내뱉는 큰 소리와 어쩌면 엄마일 가능성이 짙은 젊은 여자의 낙망 탓에 겁에 질린 표정으로 슬금슬금 자리에서 일어나는 저 아이는 어찌해야 좋을까? 어쩌면 잘 담겨 있는 계란 바구니를 아이가 넘어뜨려서 계란이 깨졌을까? 그래서 저런 표정이 나오게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