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아무튼' 시리즈를 읽고 싶었다. 단어 하나로 책을 쓸 만큼,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했고, '그건 나도 할 말이 좀 있지' 싶은 주제라면 더 관심이 갔다. 그렇게 아무튼 비건 / 메모 / 떡볶이 등의 시리즈를 벼르던 중, 아무튼 예능을 먼저 읽게 되었다. 우연히 들린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아무튼 시리즈가 눈에 띄었는데 그게 '아무튼 예능' 이었다. '예능 하면 나도 할 말이 있지' 싶어서 산 것은 아니다. 나는 TV를 잘 보지 않고, 예능에도 큰 관심과 의미를 두지 않고 살았다.
저자 '복길'은 그런 나와 정반대에 선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TV에 푹 빠져 살았고, 온갖 예능을 섭렵하여 그 역사를 술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다. 역사가 기록이 아닌 해석이라고 봤을 때 그가 내놓은 '예능에 대한 해석'은 꽤 유용하다고 생각했다.
언제부턴가 나도 TV를 틀면 채널을 돌리거나 꺼버리는 장면을 자주 만난다. 비거니즘을 접하면서 툭하면 고기를 굽는 장면들이 그랬고(왜 인터뷰하다가 뜬금없이 한우를 구울까), 페미니즘을 접하면서는 남성으로만 구성된 예능이나, 중년 남성과 어린 여성 아이돌의 조합을 볼 때 그랬다.
그런 예능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고, 그런 변화를 보았기에 저자가 책을 썼다고 생각한다. "많이 웃었지만, 그만큼 울고 싶었다"는 저자처럼 예능을 챙겨 보진 않겠지만, 앞으로의 예능이 어떻게 변할지 조금 궁금하긴 하다.
발췌
(예능 해석에 대한 글은 책으로 보세요)
10
씨름을 하다가 코미디를 한다고? 왜지? 혹시 이름이 호동이라서 그런 건 아닐까? 강호동을 처음 본 순간부터 든 의문이었다. 본명이 '강호동'이라니 태어나자마자 직업이 천하장사 겸 코미디언으로 정해져 있는 사람 같았다. 그래서인지 재미있었다.
18
알고 있겠지만 이런 인테리어 예능은 집을 잘 구하는 팁을 알려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쳐버렸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 부동산 가격과 도무지 어떻게 살라는 건지 알 수 없는 기이한 집과 방에 대한 고발 르포다. 부동산 애플리케이션에 올라온 기상천외한 매물들을 보며 남 일처럼 웃다가 정말 그 집이 내 앞에 나타났을 때 그냥 길바닥에서 자고 싶다는 피로를 느끼는 것처럼.
24
나는 동부이촌동이 좋다. 이촌한강공원이 한강공원 중에 제일 멋지고 여의도에서 불꽃축제 할 때도 베란다에서 바로 불꽃놀이를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동네 이름이 다섯 글자인 것도 미치겠는데 방향이 앞에 붙어 있다니. 지명인데 약간 전설의 타짜 같다. 동부의 아귀, 서부의 짝귀 이런 느낌. 그래, 그래서 그 동네에 사는 것이 언제일까. 언제냐면.. 나도 모르지
26
아무것도 훈련되지 않고 할 계획도 없는 자신을 향해서 계속 믿는다는 말을 반복하는 것은 정말 무서운 일이었다. '나는 나를 믿는다.' 이 말 하나로 나는 내 모든 생각과 행동을 승인하고 스스로를 자주 속였다.
27
나는 '껍데기만 위대한 하루'를 내 일상으로 만들기 위해 애썼다. 좀 더 구체적인 것을 욕망하고 거기에 맞게 노력하는 방법을 배웠어야 했는데 잘 안 됐다. 이제 크게 바라는 건 없다. 진짜 성취감을 느껴보고 싶다. 거창한 말들에 속지 않고 매일 무언가가 쌓이고 걸러지는 '그저 그런 하루'가 필요하다.
33
<나 혼자 산다>, <미운 우리 새끼>를 필두로 한 연예인 관찰 예능들은 '1인 가구 탐방'을 기획의도로 내새우지만 그 관찰은 '서울'을 '살아가는' '연예인'의 '삶' 중에서도 유독 '서울'에 방점이 찍혀 있다.
한국 사회에서 지방 자체가 소외나 박탈감을 느끼기 쉬운 공간이지만, 미디어의 극단적인 서울 중심주의는 서울에 대한 지방의 식민성을 확대하고 불만을 부추기고 좀 과장되게 말하자면, 서울에 가야 저런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거라는 빠지기 쉬운 착각을 조장하기도 한다.
44
어떤 고민은 가십이 되기도 하고 어떤 고민은 큰 변화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지상파 방송의 '예능'이라는 장르는 한계가 되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접근이 쉬운 만큼 쟁점을 만들기도 쉽다. 시시콜콜한 잡담형 고민들로 웃기는 것이 가능하다면 문제적인 고민들을 다양한 관점으로 다루며 새로운 비전으로 제시할 수도 있다. 고민에 경중은 없지만, 그 고민을 풀어내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어야 한다.
55
한국 예능은 결혼을 종용하고 권하기만 하다가 이제는 결혼만이 인생의 선택지가 아니라는 것,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혼으로 살기 위한 결심, 그리고 비혼 가구가 겪는 문제점을 다룰 준비를 하고 있다. 나는 결혼 여부 자체가 그리 중요하지 않을 만큼 다양한 삶의 형태를 존중하고, 그것이 다시 사회의 흐름을 바꾸는 시대의 결혼 예능이 궁금하다.
61
그저 내 안의 현대인과 싸우는 데 온 신경을 집중했다. 한창 바빠야 할 때 전혀 바쁘지 않았고, 인정이 많아 좋아하는 연예인의 집안 사정에까지 관심을 가졌으며, 경쟁 사회에서 낙오하여 많은 사람의 앞길을 터주기까지 했다. 그 결과 나는 지금 자연인을 목전에 두고 있는 것이다.
64
멋있는 할머니. 내가 수없이 번민에 빠지게 되는 것도 결국 이게 되고 싶어서다. 모든 것에 초연해지는 때에 진짜 멋을 부릴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궁극적 목표인 것 같기도 하기 때문에. 그것을 이루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여자는 늙을수록 친구와 돈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는데 정말 그럴까. 나는 돈이 없고 친구들이랑도 전부 싸웠는데, 어디서 뭐부터 포기해야 하는 거지. 불안보다는 이미 글렀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69
불안은 자꾸만 여러 선택들을 빨리 결정하도록 보챈다. 그때마다 나는 템포를 늦춰볼 생각이다. 어떤 지혜나 현명함을 요구하는 분위기에서 벗어나 나에게 닿아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고 계획을 세워보자고. 결심과 선택이 필요한 순간에 용감해지고, 나만의 원칙을 만들어 지키자고. 그리고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를 키울 것. 결국 나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노후라는 건 전전긍긍하며 대비하는 것이 아니고 만들어가는 것이란 걸 많은 여자들의 삶을 통해서 배운다.
74
넘겨짚는 것이지만 그런 업계에서 긴 시간 버텨오면서 여전히 '여성'인 자신을 내세워 이야기할 때 누군가를 설득할 힘이 남아 있다는 것은 씁쓸하지만 대단한 일이다. 끝없이 생각과 말을 단련한 결과처럼 보였다. 배우고 싶었다.
167
지금까지는 중년 남성들의 섹스 토크 같은 것들이 '위트' 정도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겠지만 이제는 아니다. '무서워서 뭔 말을 못하겠다' 하면서도 결국 말을 해온 사람들은 정말 이제 닥쳐야 할 때가 왔다.
177
나영석의 방송은 점점 물질적인 가치에서 떨어진 것을 얘기하고 정적이고 조용한 것을 찾는 게 아니다. 말하지 않아도 되고 듣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가고 있다. 사실상 모든 프로그램이 '자연인'을 모토로 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 그렇게 도태되면 좋으련만 그의 뛰어난 재능이 그렇게 되도록 가만 있지 않는다.
180
남성 연예인들이 방송에 적응하고 자주 얼굴을 비쳐 획득한 인지도는 다시 그들의 자산이 된다. 딱히 공정한 실력으로 평가와 기회를 받는 것이 아니라 방송 관계자, 제작자, 프로듀서 들과의 친목으로 커리어를 쌓아야 하는 이 업계에서 남성 예능인들은 자신을 드러낼 기회를 꾸준히 얻어왔고, 그렇게 유창한 실력과 경험을 쌓아왔다. 그렇게 부여된 대중적 명예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 것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이용해 불법을 저지르고, 여성들을 착취하고, 뒤로는 온갖 더로운 행각을 저지르면서 방송에서는 대중들을 기만하고 있었음이 들통 났다.
182
제대로 수평을 잡으려면 기울어진 쪽에 더 무거운 추를 달아야 한다. 여성의 목소리가 방송의 여러 분야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많다. 그것이 당연해지는 세상이 될 때까지 남성들의 목소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감시를 당해야 한다. 그럼에도 변화가 없다면 압력 또한 높여가야 한다.
189
웃기고 말 잘하는 아줌마는 많다. 근데 아줌마는 목숨 걸고 웃기면 안 된다. 대외적으로 어떤 신분을 가졌건 그들의 본업은 주부고 주부는 가정을 온화하고 지혜롭게 지켜야 된다고들 하니까. 이상한 일이다. 주부를 직업으로 인정해주지도 않는데 늘 도리를 다해야 한다.
..
중간중간 게스트로 등장해 이죽거리기만 하는 남편들의 철없는 얼굴을 볼 때면 '으이구 이 웬수!'가 아니라 '죽어라 사탄아' 하고 싶었다.
193
박미선은 종종 남성 패널들에게 "니 딸이 너 같은 남자 만난다면 어쩔래?" 같은 말을 했다. 페미니즘 논쟁에서 이 말에는 허점도 많고 절대 유효한 공격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남성 패널의 입을 잠시 다물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논리가 정교한 기술은 아니었지만 절대 다수의 남성들과 몸으로 부딪혀야 하는 필드에서 오래도록 살아남은 박미선만이 구사할 수 있는 공격이었다.
201
자기 치부가 공개돼도 불합리한 일을 당해도 그저 죄인일 수밖에 없었던 시절을 거치며 오랜 시간 자기 자리를 유지한 여성 연예인들에게는 그 세월에서 획득한 자신을 지키는 단단한 태도가 있다. 최화정과 이영자가 후배 연예인, 게스트를 대하는 행동과 말에서 그런 것들이 충분히 읽히는 것 같다. 그저 자극적인 소재로 상대를 찍어 누르며 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위트 있는 관심과 그 관계에서 빚어지는 마찰을 웃음으로 풀어 내는 고상함이 좋다.
218
물론 송은이에게 이런 영웅 역할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송은이가 어렵게 바꿔놓은 세상의 룰은 그렇게 한 사람이 무게를 지탱하며 권력을 지키고자 서열을 만들고 서로 헐뜯으며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힘을 빼도 괜찮고, 불필요한 대결이나 견제를 하지 않아도, 명예를 좇지 않아도, 세력을 만들거나 다수가 선택한 삶의 방식대로 살지 않아도 괜찮은 곳. 나는 송은이의 세상에 살고 있다.
223
꽤 오랫동안 증오하고 집착해온 텔레비전 속에는 시간을 비웃기라도 하듯 여전히 유재석과 강호동과 이경규가 채널을 돌릴 때마다 등장한다. 그 익숙함에 이제는 그저 안심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역시 먼 길을 돌아온 송은이와 이영자가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싫으나 좋으나 내 시간은 텔레비전과 함께 흐르고 있다. 관 안 쪽에 텔레비전을 달 수 있는지, 달 수 있다면 사후 얼마나 유지되는지, 그걸 알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