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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나무 Mar 17. 2016

말조심

태교여행_부부싸움


숙소에 도착했다. 커튼을 여니 바로 앞에 부산 벡스코가 있다. 베이비페어가 열리고있다. 서울에서도 아직 안 가봤는데 부산에서 행사장을 보게 되었다. 타이밍에 웃음이 나왔다. 남편이 회사 일을 처리하는 동안 나는 침대에 누워 조금 쉬었다. 업무 관련 통화를 한참 한다.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미안하다는 눈짓을 보낸다. 남편은 전화를 들고 차분하게 확인해야 할 것들을 짚어 나간다. 멋져 보인다. 통화가 끝났다. 왜이렇게 멋있냐며 남편을 안는다. 나는 아직 콩깍지의 영향력 안에 살고 있다. 저녁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부산에 와서 회를 먹을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광안리 바다를 보며 식사를 할 수 있는 고깃집을 검색했다. 2층 창가 자리로 예약 해두었다. 남편은 여행에 와서 뭘 하고 뭘 먹을지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부산에서 해보고 싶은 것 있냐고 물으니 "해운대"라고 대답하는 수준이다. 남편이 짠 하고 데려가줬으면 하는 곳을 스스로 검색하고 예약했다. 예약시간이 다 되었는데 남편은 통화 내용을 정리해서 메일로 보내야 한다고 한다. 잠시 기다렸다. 식당에 가서 마무리 하기로 하고 출발했다.


식당에 도착했다. 예약한 자리가 마음에 들었다. 2층 전면이 창으로 열려 있다. 광안리해변 너머로 광안대교가 빛나고 있다. 나는 신이 났다. 하지만 남편은 일에 신경쓰느라 조금 굳어 있다. 상이 차려지고 남편은 계속 메일을 쓴다. 내가 괜히 미안해진다. 남편도 미안해한다. 테이블에서 불쇼를 하며 고기를 구워주는 곳이었다. 높이 솟아오르는불과 광안대교를 함께 사진에 담았다.

남편도 같이 보고 즐겼으면 했다. 남편이 빨리 마무리하고 오겠다며 옆 테이블로 간다. 한 가지 해야할 일이 있으면 그것만 생각하는사람이다. 서운함과 아쉬움 그리고 미안함이 뒤섞인다. 일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왔다. 서로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하고 식사를 시작했다. 이제야 식사와 풍경을 함께 즐긴다. 마침 바닷가에서 버스킹을 하는 밴드도 있다. 1박 2일의 짧은 여행이다. 한번 뿐인 저녁시간이 꽤 만족스럽다. 기분 좋게 먹고 바닷가로 나왔다. 시끌벅적한 광안리 해변을 함께 걸었다. 나도 남편도 신이 났다. 더 걷고 싶은데 춥다. 임신한 이후 계속 춥다. 출근할 때에도 5월까지 스웨터에 가까운 가디건을 입고 다녔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차로 왔다. 추위가 가시지 않아 차에 두었던 레깅스를 원피스 속에 입었다.


 우리 부부 여행의 운전은 추운 임신부 몫이다. 여행 스케쥴도 마찬가지다. 다음번 목적지를 네비게이션에 입력하고 출발한다. 남편은 어느새 더 신이 나 있다. 흥에 겨워 혼자 수다를 시작한다. 기분이 좋으면 수다를 랩으로 만들어 끝없이 중얼거리는 사람이다. 주차장을 빠져나와 해변이 보이지 않는 도로 쪽으로 들어섰다. 해변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차도 없고 컴컴했다. 조수석에 앉은 남편의 랩수다는 “부산 왜 이렇게 어두워. 이게 부산이야? 더 화려하고 신나는 곳 없어?”라는 대사로 이어진다. 운전을 하던 나는 갑자기 화가 치밀어 소리쳤다. “뭐라고?”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있던 남편이 정신을 차린다. 내가 왜 화가났는지는 잘 모르는 눈치다. 너무 화가 나서 말 없이 운전을 했다. 남편은 옆에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다. 그러다 입을 열었다. “아침부터 내가 지금까지 맛집도 다 검색하고 갈 곳도 다 정했잖아. 오빠는 아무 생각없이 따라만 다녀놓고 더 좋은데 없냐고? 여태 번쩍거리는 바닷가에 있다가 왔잖아!” 평소에는서로 존댓말을 쓴다. 나는 화가 나면 반말을 한다. 남편이 미안하다고 한다. 그래도 기분이 바뀌지 않는다. 남편 마음은 안다. 나를 화나게 했던 그 문장은 불평이 아니라 그만큼 들 떠 있다는 신호다. 멋진 곳을 데려가주지 않아도 내가 가고 싶어 하는 곳에 기꺼이 함께 가고 행복을 나눌 수 있는 배우자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면서도 남편이 찾아낸 보물같은 장소에서 감탄하고 싶은 기대가 있었나보다.  다음 장소에 거의 다 왔다. 사람도 차도 많았다. 진입하는데만 한참 걸렸다. 겨우 차를 세우고 내렸다. 인터넷에서 외국같은 부산의 야경으로 유명해진 곳이다. 이 곳을 검색할 때만해도 남편에게 안겨서 앉아 있는 것을 상상했었다. 지금 우리는 냉랭하다. 사람들은 요트가 있는 바다 앞에서 피쉬앤칩스를 먹으며 맥주를 마신다. 사람이 많은 만큼 앉을 자리가 없다. 이렇게 분위기 좋은 곳에서 맥주를 마실 수 없다는 것도 괜히 짜증이 난다. 남편과 어색하게 손을 잡고 자리를 찾으러 돌아다녔다. 그러다 바다 바로 앞에 좋은 자리가 났다. 남편은빙수를 사러 가고 나는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



분위기를 바꾸고 싶다. 이렇게 좋은 곳에서 계속 불편하게 있고 싶지 않다. 남편이 빙수를 들고 돌아왔다. 풀 죽은 표정이다. “속상했어요. 내가 갈 곳 먹을 곳 다 찾아보고 운전도 계속 하고. 그래도 내가 가자는 곳에서 오빠가 좋아하는 거 보면서 나도 행복했었는데. 광안리에 사람도 많고 밴드가 노래도 하고 실컷 잘 놀아놓고 차에서 갑자기 더 화려한데 없냐고 하니까 너무 화가 났어요.” 아까 반말로 퍼부었던 말과 결국 같은 얘기다. 존댓말로 다시 한번 말했다. “미안해요.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알아요. 그냥 신나서 나온 말이라는거. 아는데도 속상했어요.” “앞으로 더 조심해서 말할게요.” “안아줘요.” 남편이 옆자리로 옮겨 안아준다.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미안해요. 사랑해요.”


 별 거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나는 화가 났다. 별일 아닐 수록 더 싸울 말도 없다.  그대로 있기도 어색하고 화해하기도 어색해진다. 우리는 부부다. 풀지않고 대충 헤어졌다가 내일 다시 만날 때 새로운 기분으로 만날 수 없다. 내일까지 지체하기에는 밤이 생각보다 길다. 게다가 임신 초기를 얌전히 보내고 얼마만에 온 여행인데 화해를 미룰수록 내 손해다. 신나는 분위기로 급변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안겨있으니 편안하다. 나도 사랑한다고 말한다. 가져다 놓은 빙수를 먹으면서 조금씩 웃는다. 다 먹고 일어나 다시 한번 걷는다. 아까 와는 다른 기분이다. 남편 손을 잡은 채로 팔짱을 꼈다. 더 가까이 붙어 걸었다.



+ 작년 봄, 임신기간동안 나와 뱃속 아가가 혼자인 듯 둘이서 함께한 일상여행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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