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

정준일

by 짙은향

쓰임을 다한 빨대가 거칠게 가래끓는 소리를 낸다.
둘러싼 잔잔함을 서툴게 쫓아내듯, 어색함 대신 불편함을 가져온다.

흐르지는 않을 정도의 커피가 검은 관을 사이에 두고 내 입과 줄다리기 중이다.
아니 사실 내 입은 우리 시간과 내 마음과 네 눈과 모락 피어나는 네 잔 위의 김과 만지작대는 손과 팽팽하다.

날이 서지 않은 칼이 우리 관계의 단면을 필요이상으로 괴롭힌다. 더 차갑지도 못하고 따뜻하지도 않은 마음들이 들락날락해 어딘지 나른하기까지 하다.

달그락 거리는 각얼음이 다그친다.
이렇게 시작의 끝과 끝의 시작이 가까운줄 정말 몰랐냐고.

훈기 가득한 흰 컵이 유자향을 남겨놓고 이윽고 들린다.
기울어지는 배처럼 잠깐 흘렀다 제자리로 가라앉는다.

그리고는 빨대도 멈추고 얼음도 눈치를 살핀다.
시간과 공간이 의미를 잃어버린 결.

예의인지 미련인지 자리를 떠나는 것은 또 다른 헤어짐.
찰나의 진심으로 행복을 비는 바로 그때

얼음이 슬며시 녹아 자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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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일, 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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