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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 다시 시민회관이 필요한 이유

by 손동혁

1974년 4월 개관한 인천시민회관은 당시 인천에서 시민이 모이고 토론하고 활동할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공공집회 공간으로 각종 강연과 회의, 집회와 모임이 열리며, 지역 공동체를 떠받치는 핵심 공간으로 기능했다. 어린 시절을 인천에서 보낸 이들에게 이 공간은 영화를 보러 가는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공간은 2000년 9월 노후화를 이유로 너무 빠른 속도로 철거되었다. 문제는 그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시민회관과 같은 기능을 하는 공공복합 공간을 다시 마련하려는 시도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도시의 외형은 크게 달라졌지만 시민이 스스로 모여 의견을 나누고 도시의 문제를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시민 기반형 공론장은 되려 공백으로 남았다.


555_774_359.jpg 인천시민회관 모습


시민회관 철거의 배경에는 1987년 8월 수립된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건립 기본계획이 있었다. 이후 1994년 구월동에 대형 전문시설이 들어서면서 인천의 시설정책은 대형화·전문화 중심으로 이동했다. 이는 공공시설 정책의 우선순위가 변화했음을 보여준다. 도시가 필요로 하는 공론장과 시민활동 기반보다 기능이 명확한 대규모 전문시설 구축이 더 중시된 것이다. 그러나 시민회관과 새로 지어진 시설은 애초부터 담당해야 할 기능이 전혀 달랐다. 시민회관은 시민활동의 기반시설이었고, 후속 시설은 전문문화예술 목적의 시설이었다. 그럼에도 정책은 이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시민회관을 대체 가능한 시설로 간주했고 그 결과 시민활동을 위한 공적 공간이 도시에서 사라졌다.


2025년 현재 인천의 공공시설 정책은 이러한 문제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낸다. 대형 시설과 랜드마크 사업은 꾸준히 추진되고 있지만, 시민이 일상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중규모 회의장, 다목적 집회공간, 커뮤니티 기반 공공 공간은 여전히 부족하다. 동마다 주민센터가 존재하지만, 공간의 규모나 운영 방식은 실제 시민 수요를 충족시키기 어렵다. 시민이 적정한 비용으로 모이고 토론하며 지역 의제를 논의할 수 있는 장소가 도시 규모에 비해 현저히 부족한 것이다. 이러한 불균형은 도시의 외형적 성장과 시민의 실제 생활 기반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한다.


이 부족은 인천의 도시 특성과 맞물려 더 큰 구조적 문제로 이어진다. 인천은 지리적으로 분절되어 있고 인구 이동률이 높은 도시다. 이런 환경에서 시민이 모이고 의견을 나누며 상호 신뢰를 쌓을 수 있는 공공 공간은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 기반이다. 공론장이 부족한 도시는 시민사회의 네트워크가 약화되고 사회적 의제가 조정되지 못한 채 누적된다. 행정과 시민 사이의 신뢰 또한 떨어질 수밖에 없으며, 정책의 정당성과 지속성도 확보하기 어렵다. 결국 이러한 상황은 지역사회가 스스로 의제를 형성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순환 구조를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인천이 빠르게 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다는 사실도 시민회관 논의를 미룰 수 없는 이유다. 노년층이 접근하기 쉬운 도심형 공공공간은 복지시설이 아니라 사회 참여를 유지하고 고립을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기반이다. 다양한 세대가 함께 만나고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면 도시의 사회적 연대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시민회관은 이러한 세대 간 통합과 지역 사회 연결을 가능하게 하는 대표적 기반시설이었다.


도시가 건강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시민이 스스로 모이고 논의하며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공간이 필수적이다. 도시의 민주주의는 시민이 서로 만나 이해하고 때로는 충돌하며 합의에 이르는 과정 속에서만 비로소 기능하며, 바로 그 지점에서 시민회관의 의미가 다시 부각된다. 시민회관의 재건은 인천이 시민 중심 도시로 나아갈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행위이며, 시민이 모이고 토론하며 지역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공적 기반을 복원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공론장의 회복은 도시의 미래를 위한 선택이며, 시민회관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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