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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맥의 사회학

쏘맥, 한국 사회를 담은 한 잔

by 손동혁

쏘맥은 한국 사회의 집단성, 음주 관행, 노동 문화, 그리고 관계 맺기의 방식을 응축해 보여주는 독특한 문화적 기호다. 세계 곳곳에 맥주와 다른 술을 섞어 마시는 문화는 존재하지만, 한국의 쏘맥만큼 풍부한 사회적 의미를 담은 혼합주는 드물다.


쏘맥의 기원을 단일한 사건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쏘맥은 누군가 의도적으로 만든 발명품이라기보다, 한국의 술 소비 구조와 회식 문화, 그리고 구하기 쉬운 재료라는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생활문화에 가깝다. 희석식 소주와 국산 라거는 한국인이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대중적인 술이었고, 두 술을 섞었을 때 부담 없이 넘어가면서도 취기가 빨리 오르는 특성은 당시 소비자의 기호와 잘 맞아떨어졌다.


이러한 선택은 시대적 조건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었다. 공장과 건설 현장, 사무실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에게는 빠른 회식과 신속한 업무 복귀가 요구되었고, 그만큼 ‘짧은 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취하는 방식’이 필요했다. 쏘맥은 바로 이 산업화·도시화·성과주의가 주도하던 사회적 환경 속에서 하나의 실용적 음주 방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여기에 직장 중심의 회식 문화가 맞물리면서 쏘맥은 200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전국적인 음주 관행으로 확산되었다. 자연스레 3:7 비율, 잔을 탁 치며 섞는 방식, 젓가락으로 거품을 일으키는 퍼포먼스 등 다양한 제조법이 형성되었고, 이는 ‘함께 만드는 행위’ 그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음주 문화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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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맥의 핵심은 맛이 아니다. 오히려 함께 만드는 그 행위 자체에 사회적 의미가 담겨 있다. 누군가 잔을 들고 “한 잔 말까?”라고 건네는 순간 분위기는 전환되고, 술자리를 지배하던 위계는 잠시 느슨해진다. 이때 쏘맥은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가 된다. 함께 섞고, 치고, 비율을 맞추는 과정은 한국적 술자리의 의례로 기능하며, 이 의례는 관계의 온도를 확인하고 집단적 감정의 흐름을 조율하며 공동의 흥을 빚어낸다. 한국 사회가 집단적 정서와 상호 배려, 그리고 때로는 강압적 규범을 어떻게 운용해왔는지를 쏘맥만큼 생생하게 드러내는 사례도 드물다.


쏘맥이 한국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이유도 이러한 의례적 기능에서 찾을 수 있다. 누가 잔을 따르고, 누가 비율을 맞추며, 누가 제조를 주도하는지 같은 사소한 행위들은 공동체의 위계를 드러내는 동시에 구성원 간 소속감과 감정적 유대를 확인하는 장치였다. 이는 에밀 뒤르켐이 『종교 생활의 원초적 형태』에서 말한 ‘집단적 열광(collective effervescence)’ 개념으로 해석할 수 있다. 뒤르켐에 따르면 집단 의례에서 발생하는 고양된 감정은 사회적 연대와 집단 정체성을 강화하는데, 쏘맥은 그 감정적 상승을 가장 간단하고 확실하게 불러일으키는 매개였다. 함께 쏘맥을 마신다는 행위는 같은 공동체의 일원임을 확인하는 것이었고, 이를 통해 형성되는 친밀감은 조직의 응집력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쏘맥은 한국적 ‘우리’의 감각을 재생산하는 상징이 된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친밀함은 언제나 위계와 함께 작동했다. 제조의 순서, 건배의 주도권, 원샷의 강요 같은 요소들은 모두 조직 내 권력 관계를 재확인하는 절차였다. 쏘맥 자리에서 형성되는 유대는 편안한 친밀함과 부담스러운 복종이 뒤섞인 독특한 감정 구조를 만들어냈다. 직장 상사가 제조한 쏘맥을 거절하기 어려운 분위기, 후배가 선배의 잔을 채우는 암묵적 관행 등은 한국 사회의 수직적 관계를 그대로 반영한다.


이렇듯 사회적 기능이 두드러지는 만큼, 쏘맥의 맛 또한 혼합주 이상의 맥락을 지닌다. 희석식 소주는 감미료 덕분에 알코올 향이 눌리고 달큰한 뒷맛을 남기며, 국산 드라이 라거는 탄산감은 강하지만 맥아 향은 약하다. 두 술이 만나면 서로의 약점은 가려지고 장점은 부각되면서 부드럽고 감칠맛 있는 조합이 완성된다. 하지만 쏘맥의 음용성은 미식적 실험의 결과라기보다, 한국 주류 산업 구조가 우연히 만들어낸 맛이다. 저알코올 라거 중심의 대량 생산 체계와 값싼 희석식 소주의 보급은 전국 어디서나 비슷한 맛의 쏘맥을 재현하게 만들었고, 이러한 재현 가능성은 쏘맥의 대중성을 공고히 하는 기반이 되었다.


쏘맥은 한국 사회의 경제 구조와 시간 감각도 포착한다. 소주는 싸고, 맥주는 마시기 쉽고, 둘을 섞으면 비용 대비 효과가 크다는 인식은 1980~2000년대 성과주의·속도 중심 조직문화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빨리 친해지고, 빨리 분위기를 띄우고, 빨리 끝내는’ 회식 방식은 한국 사회가 추구해온 효율성의 논리를 그대로 보여준다. 제한된 시간과 예산 안에서 최대의 효과를 내야 했던 직장인들에게 쏘맥은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었고, 한국 사회의 압축 성장과 함께 성장한 음주 문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쏘맥은 한국 음주 문화의 문제점도 함께 드러낸다. ‘잘 넘어간다’는 장점은 과음으로 이어지기 쉽고, 회식 자리의 오래된 ‘음주 권유’ 관행은 개인의 선택을 흐리게 만든다. 쏘맥은 한국 사회의 장시간 회식, 빠르게 취하는 음주 방식, 술로 조직 결속을 다지는 문화 등 여러 문제를 상징하는 기호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쏘맥은 맛있어서 마신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쏘맥이 수행해온 역할에는 즐거움뿐 아니라 관계의 압력과 조직 문화의 피로가 함께 얹혀 있다. 쏘맥은 한국인의 사회적 긴장과 해방이라는 양가적 감정을 동시에 품고 있다.


이러한 양가성에도 불구하고, 문화적 관점에서 보면 쏘맥은 한국형 혼종문화의 대표적 사례로 읽힌다. 전통적 칵테일의 규범에서 벗어나 있지만, 구하기 쉬운 재료와 즉흥적 제조 방식, 그리고 집단적 참여가 결합해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음료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향식 음주 문화의 형성 과정은 쏘맥을 한국적 사회성이 드러나는 하나의 표현 방식으로 만들었다.


이런 맥락에서 2020년대 들어 나타난 변화는 더욱 흥미롭다. 젊은 세대는 기존의 강압적 음주 문화를 점차 거부하며 ‘혼맥(혼자 마시는 쏘맥)’이나 ‘취향 쏘맥(다양한 비율·조합 실험)’처럼 개인화된 소비 방식을 창출하고 있다. 쏘맥 문화는 집단 의례 중심에서 개인적 선택과 취향 중심으로 이동하며 새로운 방향성을 띠고 있는 것이다.


사실 쏘맥 제조 방식의 다양성은 처음부터 존재했지만, 과거에는 주로 집단 내 암묵적 관행 속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예능 프로그램과 온라인 콘텐츠가 이러한 변주를 ‘놀이’와 ‘퍼포먼스’로 가시화하면서, 2030세대에게 쏘맥은 친구들 사이에서 선택적으로 즐기는 엔터테인먼트가 되었다. 이 변화는 쏘맥의 다양성을 창의성의 발현으로 재해석하게 만들었고, 새로운 세대는 취향과 자율성을 중심으로 한 음주 방식을 재구성하고 있다. 이렇듯 한때 강압의 도구였던 쏘맥이 자발적 놀이로 재전유되는 현상은 한국 사회의 세대 감수성이 크게 변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쏘맥은 지난 반세기 한국 사회를 압축해 보여주는 문화적 기호다. 산업화의 속도, 집단주의와 위계, 정서적 유대의 정치학, 효율성의 논리, 그리고 세대별 감수성의 변화까지 다양한 사회적 요소들이 쏘맥 한 잔 속에 서로 겹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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