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문화공간재단이 드러낸 문체부 행정의 구조
국립문화공간재단의 설립과 예산 조정 과정을 둘러싼 일련의 흐름은 특정 기관의 문제라기보다는 문체부 행정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에 가깝다. 이 사례는 공공기관이 어떤 기준으로 만들어지고, 실패의 대가는 누구에게 전가되며, 책임은 어디에서 사라지는지를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낸다.
국립문화공간재단은 당인리문화창작발전소 등 향후 신설될 국립문화예술시설의 전문 운영법인으로 문체부가 2024년 12월 설립한 조직이다. 현재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운영 중인 문화역 서울284 역시 이 재단으로 이관될 예정이다. 즉, 이 재단은 향후 국립 문화시설 운영 체계를 재편하는 핵심 법인으로 설계되었다.
출처: 문화체육관광부 누리집
그러나 이 기관은 설립 단계에서부터 기존 국립 문화시설 운영 체계와의 기능 중복 여부, 별도 법인 설립의 정책적 필연성, 고용 안정성에 대한 중장기 검토 등 핵심 쟁점이 공개적으로 논의되지 않았다. 공론화와 단계적 시범 운영 절차가 생략된 채, 행정 내부의 판단이 곧바로 조직 신설로 이어지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설립 과정 자체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것은 그 이후에 벌어진 일이다. 최근 국회의 예산 심사 과정에서 재단의 인건비가 전액 삭감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는 형식적으로는 조직이 유지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정상적인 운영이 불가능한 상태를 의미한다. 더 큰 문제는 그 결정의 후과가 정책을 결정한 주체가 아니라 실무 직원에게 집중되는 구조적 모순이 다시 한 번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관 설립을 기획하고 승인한 정책 라인과 책임자들은 이 과정에서 고용과 경력에 어떠한 직접적인 위험도 부담하지 않는다. 반면 채용된 직원들은 인건비 삭감과 함께 불안정한 고용 상태, 불완전한 직무 체계, 향후 경력 손상의 위험까지 동시에 감내해야 한다. 정책은 위에서 결정되지만, 그 실패의 비용은 아래에서 치러진다. 기관이 만들어질 때는 ‘공공성을 위한 도전’이 강조되지만, 문제가 발생하는 순간 그 부담은 고스란히 직원들에게 전가된다. 결정과 책임이 분리된 행정 구조가 낳는 전형적인 아이러니다.
이 구조는 낙하산 인사 문제와 결합될 때 더욱 왜곡된다. 기관장의 임명 과정이 부처 내부 추천 중심으로 이뤄질 경우에 기관은 현장의 요구보다 퇴직 관료의 영향력 유지 구조에 종속될 위험이 커진다. 그 결과 기관은 정책 실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담을 떠안는 완충지대로 기능하게 되고 공공성과 독립성은 약화된다. 또한 실패는 조직 아래로 내려가고, 영향력은 조직 위로 올라가는 왜곡된 흐름이 고착된다.
출처: 국민일보
국립문화공간재단 문제의 핵심은 왜 문체부는 기관을 만들 때는 그렇게 신속하면서도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질 때는 더디며, 왜 정책 실험의 비용은 언제나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대신 치르도록 설계되는가를 묻는 데 있다. 이 문제는 특정 기관 하나의 존폐를 둘러싼 쟁점에 그치지 않는다.
기관 설립에 앞선 사전 영향 평가의 부재, 설립 책임자에 대한 실명 책임 구조의 부재, 인건비 보호 장치의 부재, 실패에 대한 책임을 되돌리는 환류 시스템의 부재가 중첩되면서 문체부 행정은 ‘결정은 위에서 이루어지고, 책임은 아래로 흘러내리는’ 구조를 반복적으로 재생산해 왔다. 이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국립문화공간재단의 사례는 언제든 다른 모습으로 되풀이될 수 있다.
일부에서는 직원 보호 장치가 강화될 경우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공공기관에서 반복된 실패의 상당수는 직원이 과도하게 보호되어서가 아니라, 기관장과 기획 책임자가 구조적으로 보호되어 왔기 때문에 발생했다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고용 안정과 성과 책임을 분리하지 못하고, 실패의 책임을 제도적으로 위로 환류시키지 않는 한, 도덕적 해이 논쟁은 언제나 실질적 권한을 갖지 못한 약한 고리만을 겨냥하는 방식으로 왜곡될 수밖에 없다.
국립문화공간재단 사례가 남기는 교훈은 기관을 설립할 권한이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실패의 책임을 되돌려받는 구조 역시 처음부터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공공기관은 공공성을 실현하는 장치가 아니라, 실패를 은폐하고 책임을 분산시키는 행정 장치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