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근권에서 참여 역량으로, 프랑스 문화정책의 교훈

문화민주화와 문화민주주의를 넘어서

by 손동혁

문화정책에서 ‘접근권 확대’는 오랫동안 설득력 있는 목표로 받아들여져 왔다. 문화시설을 더 많이 조성하고, 입장료를 낮추며, 무료 관람일과 할인 제도를 확대하면 문화는 자연스럽게 모두의 것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그 바탕에 놓여 있었다. 이러한 인식은 프랑스의 문화 민주화 정책에서 가장 체계적이고 장기간에 걸쳐 실험되었다. 프랑스는 국가가 문화의 공급을 주도함으로써 ‘모두를 위한 문화’를 실현할 수 있다고 믿었던 대표적인 나라였다.


이 정책은 1959년 앙드레 말로가 초대 장관으로 취임하며 문화부가 창설된 때부터 시작되었다. 말로가 구상한 문화 민주화의 핵심은 이미 ‘위대한 예술’로 인정받은 고급예술을 더 많은 사람에게 보급하는 것이었다. 그는 문화의 의미나 범주를 새롭게 정의하기보다 기존의 정전(canon)을 정책의 중심에 두었다. 여기서 정전이란 한 사회에서 역사적·미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반드시 보존하고 전승해야 할 문화’로 합의된 작품과 장르의 집합을 뜻한다. 국립극장의 연극, 클래식 음악과 오페라, 미술관에 소장된 회화와 조각, 문학사에서 반복적으로 교육되고 전시되어 온 작품들이 대표적인 예다. 이러한 예술은 이미 보편적 가치와 질을 갖춘 것으로 전제되었다. 따라서 정책의 핵심 과제는 그 정당성을 재검토하는 데 있지 않았고, 접근의 범위를 어떻게 확대할 것인가에 놓여 있었다. 다시 말해 문제는 문화의 내용이 아니라 그 문화에 누가 얼마나 접근할 수 있는가였다. 이 관점에서 국가는 정전으로 확립된 예술을 제도적으로 보존하고, 이를 가능한 한 많은 시민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주체로 자리매김했다.


프랑스에서 문화 민주화는 새로운 문화나 다양한 표현을 포괄하는 ‘문화의 다양화’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기존 정전을 지역과 계층의 경계를 넘어 사회 전반으로 확산시키는 보편화의 과정에 가까웠다. 문화 민주화는 이미 정해진 문화에 더 많은 사람을 초대하는 정책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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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인식은 메종 드 라 퀼튀르(Maison de la Culture) 정책을 통해 구체화되었다. 메종 드 라 퀼튀르는 연극, 음악, 전시, 강연 등을 한 공간에 결합한 종합문화시설로 파리에 집중된 고급예술을 지역으로 확산시키기 위한 핵심 정책 수단이었다. 국가는 국공립 예술단체의 공연과 주요 전시를 조직적으로 지역에 순회시키는 한편, 새로운 문화시설을 전국 각지에 설립함으로써 문화 향유의 지리적 불균형을 완화하고자 했다. 이는 지역 간 문화격차를 해소하고 문화 접근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려는 강력한 국가 개입이었다. 그 결과로 문화 인프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빠르게 확충되었고, 통계상으로는 이전보다 더 많은 시민이 공연장과 미술관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양적 성과는 곧 한계에 부딪혔다. 문화시설의 수는 늘어났지만, 이를 지속적으로 이용하는 관객층의 구성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관람객은 여전히 중산층과 고학력 계층에 집중되었고, 노동계층과 저학력층의 참여는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이러한 결과는 정책 집행 과정에서 비롯된 문제라기보다 접근권 확대를 문화 민주화의 핵심 수단으로 설정한 정책 구상 자체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 것이었다. 문화에 대한 물리적·경제적 접근성이 개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 참여의 사회적 불평등은 그대로 유지되었고, 문화 민주화의 목표와 실제 성과 사이의 간극이 점차 분명해졌다.


이러한 현상은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실증 연구를 통해 이론적으로 뒷받침되었다. 부르디외는 박물관과 예술 관람에 대한 조사에서 문화 참여가 개인의 자유로운 취향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는 점을 입증했다. 문화 참여의 여부와 방식은 개인의 선호라기보다 교육 수준과 가정 환경, 즉 사회적으로 축적·분배된 문화자본의 차이에 의해 규정된다는 것이다. 문화시설의 문은 제도적으로 열려 있었지만, 그 문턱을 자연스럽게 넘어 작품을 이해하고 지속적인 경험으로 이어갈 수 있는 역량은 사회적으로 불평등하게 분포되어 있었다.


이러한 비판은 1960년대 후반, 특히 1968년 5월의 이른바 ‘68혁명’을 전후해 더욱 분명해졌다. 프랑스 사회 내부에서는 문화 민주화 정책이 작품을 ‘많이 보여주는 것’에는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시민이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함께 만들어 가는 문화’를 형성하는 데에는 실패했다는 성찰이 확산되었다. 이에 따라 문화정책을 둘러싼 관점도 점차 변화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보급’과 ‘접근’ 중심 정책에서 벗어나, 문화 참여와 표현, 창작의 권리를 강조하는 문화민주주의 담론이 등장한 것이다. 이는 국가가 미리 정한 문화에 시민을 초대하는 방식이 아니라, 시민 각자의 문화적 실천과 다양성을 정책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의미했다.


프랑스의 사례는 문화정책 논의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문화에 대한 접근권은 문화정책의 필요조건이지만, 그 자체로 충분조건은 아니다. 문화정책이 보장해야 할 것은 단지 문화시설에 ‘들어갈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문화 활동을 이해하고 반복하며 장기적으로 지속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일이다. 이 지점에서 핵심적으로 등장하는 개념이 참여 역량(capability)이다. 프랑스의 경험은 이 참여 역량이 개인의 의지나 취향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교육 경험과 사회적 환경, 관계망과 같은 구조적 조건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맥락에서 단발성 관람 지원이나 가격 인하 정책은 일정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한계가 명확하다. 프랑스에서도 무료 관람일이나 할인 제도는 단기적으로 관람객 수를 늘리는 데에는 효과적이었지만, 새로운 참여층이 문화 활동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도록 만드는 데에는 제한적이었다. 이 경험을 계기로 문화정책의 초점은 관람 기회의 ‘확대’를 넘어서 문화적 경험을 이해하고 반복할 수 있는 참여 역량을 어떻게 축적할 것인가로 이동했다. 그 과정에서 문화교육·예술교육, 지역 기반의 장기 프로그램, 그리고 경험을 해석하고 관계를 매개하는 전문 인력의 역할이 중요하게 부각되었다.


변화의 핵심에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자리한다. 학교와 지역, 일상 공간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문화적 경험이 단절되지 않고 축적되도록 하며, 한 번의 실패나 낯섦이 곧 참여의 중단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다시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문화 참여의 일상화를 위해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이에 따라 문화정책의 과제는 접근권 보장에 머무르지 않고, 참여가 지속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설계하는 단계로 확장된다.


이 점에서 프랑스의 문화 민주화 정책은 접근권 확대가 문화정책의 중요한 출발점임에도 불구하고, 그것만으로는 문화 격차를 해소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문화정책의 성패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문화시설로 초대했는가가 아니라, 사람들이 문화 활동을 스스로 선택하고 이해하며 반복적인 참여를 통해 경험과 의미를 축적할 수 있도록 하는 조건을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했는가에 달려 있다. 이러한 이유로 프랑스의 사례는 문화정책이 지닌 가능성과 구조적 한계를 동시에 드러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 이 글은 문화오늘 (Culture Now)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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