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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나나타르트 Sep 15. 2023

이 순간을 절대 그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최근 이별을 겪어 우울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남편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떠난 베트남 여행이었다.    

 

직업상 베트남에 머물고 있는 남편 친구에게 모든 일정을 맡기기로 하고 우리는 짐과 돈 이외에는 그 어떤 준비도 하지 않았다.     


여행 전이면 항상 그 나라의 맛집이며 관광지, 쇼핑리스트까지 목록을 뽑아놔야 직성이 풀리는 나로서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여기엔 베트남에 현지가이드 맞먹는 지인이 머물고 있다는 사실 외에도, 동남아 여행이 크게 기대되지 않았던 나만의 이유가 더해진 탓도 있었다.     


10년 전쯤 방콕으로 동남아 여행을 마지막으로 다녀왔을 때, 나는 방콕여행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베트남도 다르지 않을거란 편견이 여행을 준비하고자하는 내 의지를 꺾어놓고 만 것이다.     


막상 베트남에 도착해 택시에 올라탄 순간부터 나는 신나서 입을 다물수가 없었다.     


무질서하게 뒤엉켜 쉴새없이 경적을 울리며, 난리도 이런 난리가 있을 수 없는 도로 한복판을 가득 메운 오토바이군단과 자동차들은, 그 안에서 나름의 질서를 지키며 아찔한 사고를 비껴간다.      


대체로 낡은 건물들 사이로 보이는 세련된 인테리어의 식당과 카페는 서울 속 어느동네의 핫플이 부럽지 않을정도였다.     


거의 현지인이 다 되어 능수능란하게 우리를 이끌어주던 지인이 데려가는 곳마다 먹었던 음식은 또 어쩜 그렇게 다 맛이있는지..     

베트남까지 와서 피자를 먹어야겠느냐고 욕을 욕을 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울만큼 인생 피자를 만나고 와서는, 다시 그 피자를 먹으러 베트남을 꼭 와야겠다며 지인에게 농담섞인 진담을 건넬 정도였다.     


한국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물가로 대가를 지불하면서도, 상상 이상의 서비스로 현지인들에게 받은 친절은 이번 여행을 정말 완벽하게 만들어주었다.          


베트남에 가기 전, 나는 왜 이토록 즐거운 여행을 기대하지 않았던 것인지 후회가 될 정도였다.   

    



여행이 끝나고 한참이 지난 어느 날 오후

사무실 근처에 있는 마트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잡무가 거의 없을뿐더러 업무강도가 쎄지 않아 늘 여유로운 나는 심심하면 회사 근처 마트에 다녀오는 일이 많았다.     


그날 나는 한적한 서울 부촌의 한 동네를 거닐며 생각했다.    

 

‘앞으로 살면서 이 순간을 절대 그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수백번을 넘게 이 길을 걸으며 처음 해본 생각이었다.     


언제나 이곳을 떠나면 이 길이, 이 여유가 그리워질 것 같아 떠나기도 전에 아쉬워 발걸음이 무거워지곤 했는데..          



내가 여길 떠나 살게 될 앞으로의 삶은 이번 베트남 여행 같기를 속으로 빌었다.    

 

이전보다 더 재미있고, 더 행복하길     


늘 뒤를 돌아보며 살던 내게 

이번 여행은 앞을 바라보며 기대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을 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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