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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나나타르트 Dec 26. 2023

여행에는 언제나 정답이 있지

남편은 겨울이 되자 또다시 눈을 보러 가겠다고 했다.

2년 전 처음 폭설 여행을 계획했을 때 만해도 고립이나 불확실성을 염려하여 주저했던 나는 이제는 그 계획에 적극 동참하고 있었다.

며칠동안 일기예보를 주시하던 남편은 올해는 전라도 정읍에서 눈을 보기로 결정했다.


어느덧 익숙해졌을 만한 세 번째 폭설 여행이었음에도 우리는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남편은 마치 목줄 풀린 개가 눈을 만난 듯 기대가 된다고 했고, 나는 여행 당일 출근을 해서도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애를 먹었다.



이런 우리의 마음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정읍에서 마주한 폭설 풍경은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


초록의 산과 눈이 덮여 하얗게 변해버린 산은 분명 같은 자리에 있었지만, 전혀 다른 세상 속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사방천지 나뭇가지 위에 꽃처럼 내려앉은 눈송이를 보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크리스마스트리가 떠올라 신기했다. 


그렇게 예쁜 풍경을 곁에 두고 우리는 무릎까지 높이 쌓인 눈길을 걷고 걸었다.

그러다 문득 어느 순간 남편은 높이 쌓인 그 눈 속으로 뛰어들고 싶다고 했다.

농담인 줄 알았던 남편의 눈빛이 진지하게 변해가자, 나는 곧바로 핸드폰을 켜서 동영상 슬로우모션 모드를 작동시켰다. 이 순간을 최대한 멋있게 남기고 싶다는 마음으로.


남편은 뒤로 한 번, 앞으로 한 번, 눈 속으로 뛰어들었다.

동영상은 생각보다 잘 나왔고, 우리는 그 자리에서 방금 남긴 멋진 추억을 반복 재생하며 한동안 깔깔대고 좋아했다.


눈 속에 파묻혀본 소감을 묻는 나에게, 남편은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 같다고 했다.

남편이 순간 느꼈을 상쾌함이 어떤 것일지 짐작만으로도 대리만족이 되는 듯했다.


남편이 눈 속으로 날려버린 스트레스처럼 

올 한해 유독 나를 멈추게 했던 그 모든 의심도 눈과 함께 녹아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새로 나온 열라면은 신라면보다 맛이 없을 거라는 의심도, 

내가 과연 내년에 원하는 글을 쓸 수 있을지에 대한 의심도,

성부가 되어 어려운 이웃을 돕겠다는 꿈을 꾸는 남편의 발목을 잡지 않는 아내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심도, 다 꺼내서 그 눈 속에 던져졌으면 했다.


남편처럼 몸을 날리지는 않았지만, 하루 종일 깨끗한 눈만 보고 다녀서인지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 내 마음도 다행히 어느 정도 깨끗해지는 것 같았다. 


우리는 산타의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 못지않은 행복한 기분으로 여행을 마쳤다.


집으로 돌아와 밥을 하기 귀찮은 저녁

나는 새로 나온 열라면 두 봉지를 뜯어서 끓여보기로 했다.


기분탓인지는 몰라도 그날 먹어본 열라면은 신라면보다 훨씬 맛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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