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이는 축구를 좋아하는 열네 살 아이였다. 특히 토트넘의 손흥민 선수에게 열광했고, 언젠가는 영국에서 직접 경기를 관람하는 것이 그의 가장 큰 꿈이었다. 하지만 그 꿈은 현실에서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어느날 엄마 지인의 SNS에 올라온 한 장의 사진은 시온이의 마음을 흔들었다. 같은 손흥민의 팬이었던 엄마의 지인이 신혼여행 중 런던에서 토트넘 경기를 관람하며 찍은 사진이었던 것이다.
부러움 가득한 눈으로 그 사진을 바라보는 시온에게 엄마는 말했다.
“시온아, 너도 기도해! 너의 참 부모, 아버지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잖아!”
부러워하기 전에 늘 기도하라고 가르쳐준 엄마의 말씀을 따라 시온이는 이렇게 기도드렸다.
“하나님은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 분임을 압니다. 하나님 저 영국에 가서 토트넘 경기를 볼 수 있게 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시간이 흘러 손흥민이 소속팀인 토트넘과 함께 한국을 찾아 뮌헨과 친선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마침 그 경기에 반 친구 몇몇이 당첨되어 경기를 보고 온 사진이 반 톡에 올라온 것을 보며 시온이는 놀라워하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자신도 신청해볼 걸 하는 아쉬움이 시온이의 마음을 깊이 덮쳤다. 어쩌면 영국에서의 직관보다 현실적이고 손에 닿을만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엄마는 시온이가 전혀 안쓰럽지 않았다. 낙담하는 아들을 위로하는 대신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부러워하지마 시온아. 너는 영국 현지에 가서 축구를 보게 될거야!!”
“기도하고 있지?”
소망이 있다면 포기하지 말고 계속 구하라며 아들에게 기도하라고 했지만, 사실 그녀도 알 수는 없었다. 최근 시부모님들의 갑작스런 투병으로 인해 안그래도 거친 풍랑의 바다를 항해중인 그들에게, 과연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실 때가 지금일지, 1년, 혹은 5년 후일지, 아니면 시온이가 성인이 되어 스스로의 능력으로 가게될 때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들은 비록 지금은 형편이 되지 않더라도, 언젠가 하나님께서 꿈을 이루어주실 날을 믿으며 그렇게 하나님과 셋이서만 아는 기도를 이어나갔다.
같은 시기.
평범한 주일 예배를 마친 남편이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자기, 나 예배 중에 조금 황당한 생각이 들었는데, 들어볼래?”
평소 엉뚱한 상상으로 나를 자주 놀라게 하는 남편이 이번엔 또 무슨 이야기를 꺼낼지, 약간 긴장된 마음으로 그의 말을 기다렸다. 남편은 내년에 예정되어있는 우리 부부의 런던 여행에 시온이를 데리고 가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그 아이의 가정과 오랜 친분이 있었는데, 남편은 아이가 축구를 좋아하고 손흥민의 열혈 팬임을 잘 알고 있었다. 마침 우리가 런던에 가니, 이 기회에 아이를 데려가 함께 손흥민의 경기를 보고 오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미성년 자녀를 며칠씩이나 그것도 해외여행에 보낸다는 건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그쪽 사정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여행 경비 마련부터 아이를 돌본 경험조차 없는 우리가 감당해야 할 수많은 준비까지, 생각할수록 막막했다. 이성적으로는 안 될 이유들이 순식간에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 한편에서는 왠지 모르게 가슴 뛰는 기대가 밀려왔다. 정말 특별한 일이 될 것 같은 뜨거운 감정이었다. 결국 며칠 동안 망설임 끝에, 남편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모든 현실적인 고민들은 하나님께서 채워 주시리라는 믿음이 마음을 움직였다.
그 음성을 전하기 위해 우리는 아이의 집을 찾았다. 우리는 시온이의 부모님 앞에서 조심스럽게 남편에게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전했다. 우리의 계획을 전해 들은 아이의 부모님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놀라워하셨다. 특히 시온이의 엄마는 우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감격을 터뜨렸다. 그리고 우리에게 시온이의 꿈과 불과 몇 달 전 시작했다는 그들의 기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순간,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놀라운 기도 응답이, 우리 부부에게는 그 가정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서로에게 깊은 울림이 되었다. 나는 이번 일이 단순히 남편이 선의로 해낸 하나의 결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이뤄진 만남임을 깨닫고 가슴이 뭉클했다.
영국 여행 준비는 놀라울 만큼 순조로웠다. 가장 큰 과제였던 토트넘 경기 티켓도 좋은 자리로 일찍 확보할 수 있었다. 게다가 우리의 이야기에 감동한 한 지인이 예기치 않게 늘어난 예산의 절반을 지원해 준 덕분에, 오히려 둘이 떠날 때보다 적은 비용으로 셋이 함께하는 여행을 준비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6개월 뒤, 우리는 시온이와 함께 런던행 비행기에 올랐다.
토트넘 경기가 있었던 일요일 아침은 런던에 도착한지 4일째 되는 날이었다. 지난 3일동안도 정말 날씨가 좋았지만, 이날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아침부터 하늘이 맑고 청량했다.
드디어 떨리는 마음으로 구장에 입장했다. 라운지에서 밥을 간단히 먹고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 착석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 경기 시작 두 시간 전쯤 우리 좌석 반대편 입구에서 선수들이 출근하는 게 보였다. 선수들은 그라운드를 한바퀴 돌면서 팬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해주었다. 시온이와 남편은 선수들을 보자마자 환호하며 1층 난간으로 달려갔고 선수들 사이 손흥민을 발견하고 소리를 지르며 그에게 환호했다. 시온이가 그렇게 고대하던 손흥민을 만나는 첫 순간이었다.
손흥민을 직접 눈으로 보고나니 흥분된 마음이 더욱 고조되고 있었다. 남편은 경기 시작 한시간전을 손 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한시간 전에야 인스타그램으로 발표된다는 선발명단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 시간을 카운트다운하며 인스타그램을 계속 새로고침하던 남편은 드디어 오후 1시가되자 (이날 경기는 오후 2시였다)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선발 명단에 손흥민이 빠진것이었다. 선발명단에 손흥민이 빠지는 일은 거의 없는 일이라는데, 그 일을 하필 우리가 겪는 중이었다. 이 소식을 아이에게도 알렸고 우리 셋은 모두 그 자리에서 한동안 말을 잃고 그야말로 망연자실했다. 그래도 후보 명단에 손흥민이 포함되어 있으니 끝까지 희망을 놓지 말자는 말로 우리는 서로를 위로했고, 경기는 곧 시작되었다.
경기는 생각보다 답답하게 흘러갔고, 결국 전반전이 끝날 즈음 토트넘은 본머스에게 한 골을 먹으며 0대 1로 전반전을 마쳤다. 손흥민도 안나오는데 경기마저 지는걸 보고 갈 참인가 싶어 마음이 착잡해지려던 찰나. 후반전이 곧 시작되려는데, 저 멀리서 7번 유니폼을 입은 선수가 걸어나오는 것이 보인다!
손흥민이 예상을 깨고 후반전에 바로 교체되어 나온 것이었다. 우리 셋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손흥민이다!!"
남편은 사실 경기 시작 전, 이날 손흥민이 만약 출전을 하더라도, 감독의 특성 상, 후반 20분정도를 겨우 남겨 놓고서야 교체 출전시키기로 유명하기에 오래 보기는 힘들것이라는 말을 했다. 그런데 그 예상을 깨고 좀 더 일찍 손흥민이 뛰는 것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경기 후반, 본머스의 추가골로 2대 0으로 끌려가던 경기는, 토트넘 사르 선수의 한골로 추격을 시작, 손흥민 선수가 극적으로 패널티킥 골을 만들어 내면서 흐름이 달라졌다. 패널티킥 판정이 나왔을 때, 처음 솔랑케 선수가 내내 공을 쥐고 있어서 우리는 처음엔 손흥민선수의 골을 보지 못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골을 차려는 순간 손흥민 선수가 공을 이어 받았고, 그 순간 시온이는 심장이 터질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나도, 남편도 시온이도 그 자리에 있는 한국인들 뿐만 아니라 구장을 가득 메운 모든 토트넘 팬들이 열광하고 환호했다. 긴장되는 순간이 몇초간 이어지고 손흥민의 슛!
골!
경기장이 떠나가듯 모두가 환호하며 한동안 소리를 질렀다.
무려 9경기 만에 터진 골이었다.
그리고 그 골은 손흥민이 토트넘에서 기록한 마지막 골로 남게 되었다.
기다림 끝에 마주한 완벽한 순간이었다.
그날의 골은 마치, 시온이의 오랜 소망에 대한 하나님의 따뜻한 응답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골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순종의 여정에 하나님이 함께하고 계심을 보여주는 하나의 분명한 이정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