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당연한 진실을 깨닫는 데 너무 오래 걸렸다.
익숙한 동네 친구와 만나 으레 다니던 코스를 순례한 날이었다. 단골 밥집에서 점심을 때우고 자연스럽게 옆 카페로 향하던 중, 새삼 눈에 들어오는 게 있었다.
카페 앞의 경사로는 얼핏 보기에도 50도는 족히 되어 보였다. 걸어올라가기도 힘들 정도로 가파른데 이게 휠체어용 진입로라니. 여러 번 갔었던 카페였는데 그 날 그게 왜 새삼스레 눈에 들어왔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친구와 그 앞에 서서 이 말도 안되는 현실에 적당히 화를 냈고, 그 경사로를 사진으로 찍어 SNS에 올렸다. 어떻게 이럴 수 있냐는 투의 짧은 글과 함께. 곧 '좋아요' 여러 개가 찍혔다. 솔직히 조금 뿌듯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곳을 혼자 보았다는 생각에.
그로부터 얼마 후, 나는 한 언론사의 인턴직에 지원하면서 '취재하고 싶은 아이템' 항목에 그 때 찍었던 사진을 첨부해 휠체어용 경사로의 실태조사를 적어 냈다. 그 기획은 나름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그 해 여름 나는 한 달 반 짜리 인턴기자가 되었다. (인턴 생활 마지막 주에 실제로 휠체어용 경사로에 관한 기사를 쓰긴 했다.)
대부분의 인턴들이 그렇듯 첫 출근을 하던 날 나는 새파란 사명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것,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들을 파헤쳐 약자를 돕겠다는 생각. 일주일 간 기사 쓰기 교육을 받은 뒤, 첫 취재 아이템으로 시각장애인 복지관의 음성도서 녹음 봉사자 인터뷰를 택했다.
집 근처 시각장애인 복지관에 전화로 인터뷰 요청을 넣자 흔쾌히 허락이 떨어졌다. 명함 한 뭉치를 들고 집을 나섰다. 인턴이나마 '기자'라는 이름이 찍힌 명함을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건네는 날이었다. 복지관에 도착하자 담당 직원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장애인이었다. 조금 어색한 폼으로 인사를 하고, 이름 뒤 '~입니다'를 얼버무리며 명함을 건넸다. 그도 내게 명함을 주었다. 그의 명함에는 묵자(활자)와 점자가 함께 표기되어 있었다.
그 명함을 받는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반들반들한 내 명함에는 이름과 직책과 소속과 연락처가 한글과 영문으로 미끈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누군가에게 이것이 아무 정보도 없는 네모난 종이조각으로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은 그 전까지 전혀 하지 못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미리 알았다고 해도 새로운 명함을 준비해갈 수는 없었겠지만, 감히 '남들의 눈에 띄지 않는 세계'를 보여주겠다고 나섰던 내 알량한 자신감이 마냥 부끄러웠다. 많은 부분을 놓치고 있는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날 취재 도중 시각장애인인 복지관 직원과도 인사를 나누었지만, 나는 봉사자와 인터뷰 중이라는 핑계로 짐짓 정신없는 척을 하며 그에게 명함을 건네지 않았다. 아니 건네지 못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지금에 와서야 그것이 더 실례였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 날은 감히 그럴 수가 없었다.
이날의 일은 꽤 오랫동안 창피한 경험으로 기억되었다. 그 끄트머리쯤에 이르렀을 때 한 가지 생각이 남았다.
사람은 각자 다른 시야를 가지고 있어서, 내가 어떤 이를 아무리 큰 관심으로 바라본다 해도 그가 사는 세상을 완벽하게 실감할 수는 없다는 것.
그 날 내가 저지른 가장 큰 잘못은 점자 명함을 준비하지 못했던 점이 아니라 시각장애인에게 조금 관심을 가진 것만으로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그들을 더 잘 안다고 착각했던 부분이었다. 그 생각과 동시에 나는 누군가의 고충을 파헤쳐 그것으로 다른 이들을 깨우치겠다는 오만한 마음을 버렸다.
아무도 관심갖지 않는 어떤 약자가 있다고 치자.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그의 존재를 발견했다고 생각해보자. 그것에는 내가 우연히, 혹은 어떤 계기로 그 사람을 먼저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다. 그의 모든 삶을 이해한 양 굴며 다른 이들에게 그의 괴로움을 알려주겠다고 나설 자격은 내게 없다는 말이다. 내가 그 사람이 되지 않는 이상 놓치는 부분은 언제나 존재할 것이므로.
그 다음부터 누군가의 사연을 취재하게 될 때 내가 가장 많이 신경을 쓴 부분은 나를 비운 채 상대의 이야기를 최대한 많이 듣고 수집하는 일이었다. 취재를 마친 뒤에는 들은 이야기를 가능한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 공을 들였다. 나는 알아챘지만 너는 모르는 이야기를 가르쳐준다는 생각이 아니라, 나도 모르고 너도 몰랐던 이야기를 내가 대신 듣고 전달해준다는 마음으로.
이건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꽤 효과적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 다른 곳을 본다. 그래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고, 할 수 있는 건 많이 말하고 많이 듣는 길 뿐이다.
이 당연한 진실을 깨닫는 데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