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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아 Mar 13. 2017

소비에 실패할 여유

어느새 내 취향은 질식당했고 시야는 납작해졌다.


아이들을 동네 슈퍼에 데리고 간다. 풀어놓고 '너 사고 싶은 거 다 사라'고 하면 아이는 정말 눈에 띄는 걸 다 집는다. 먹어본 과자, 안 먹어본 사탕, 포장만 예쁜 젤리, 내용물보다 장난감이 더 많이 들어 있는 초콜릿, 전부터 사 보고 싶었지만 차마 집지 못했던 비싼 쿠키... 끝까지 먹는 것도 있겠고 한 입 먹어보고 다시는 안 살 것들도 있겠으나, 어쨌든 제가 궁금했던 것들은 다 사고 다 뜯어 보고 먹어 본다.



하지만 슈퍼 앞에서 아이에게 '너 사고 싶은 것 딱 하나만 사준다'고 하면, 일단 고르는 시간이 한 세 배쯤 늘어난다. 들여다보고, 집었다 놓고, 흔들어보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그러다 대부분의 경우 가장 좋아하는 과자를 고른다. 많이 먹어봤고, 맛을 잘 알고, 그래서 절대 실패하지 않을 '안전한' 선택. 대신 지난번에 못 산 과자는 이번에도 못 산다.


최근 한 10여년 간, 늘 '딱 하나만'을 강요당하는 아이의 심정으로 살았다. 해 보고 싶은 것도 써 보고 싶은 것도 가 보고 싶은 곳도 많았는데, 항상 돈이 없거나 시간이 없거나 둘 다 없었다. 아르바이트로 번 돈은 교재비며 교통비에 쓰고 나면 딱 가장 저렴한 학식이나 편의점 김밥을 사 먹을 정도만 남았다. 졸업 후 구한 계약직 일자리 월급 130만원도 별다르지 않았다. 집에 생활비 조금 주고, 학자금 대출 갚고, 이런저런 요금 내고 눈꼽만한 적금 넣고 나면 한 달에 친구들 한두 번 볼 정도의 돈만 남았다(심지어 점심은 도시락을 싸 다녔다). 굶어죽지는 않았지만 딱 굶어죽지만 않을 만큼이었다.


그러니 내 모든 소비의 최대 목표는 '실패하지 않기'가 됐다. 약속이 생기면 늘 저렴하고 양 많은, '2인분같은 1인분' 맛집을 검색했다. 편의점에서는 참치마요 삼각김밥과 전주비빔 삼각김밥을 들고 심각하게 고민했다. 옷을 살 때면 눈에 띄는 색이나 디자인의 상품을 찾기보다 지금 가진 옷과 최대한 비슷한, 돌려입기 용이한 옷을 찾았다.



물론 만족스럽진 않았다. 저렴하고 양 많은 맛집은 대개 왜 저렴하고 왜 양이 많은지를 납득할 수 있을 정도의 맛이었고, 편의점 음식은 때마다의 허기를 때우기 좋았을 뿐 딱히 돌아선 뒤 생각나는 음식은 아니었으며, 싸고 평범한 옷은 편안하고 막 입기 좋았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런 옷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도리가 없었다. 쓰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 물건들을 사는 건 너무 위험부담이 컸다. 돈 한푼 잃어버리면 사흘 밤낮 가슴이 두근대는 마당에, 실패는 치명적이었다.


그래서 한동안 내 소비 패턴은 늘 비슷했다. 화장품, 옷, 생필품, 외식...주기적으로, 늘 가던 곳에서, 똑같거나 비슷한 상품을 샀다. 그게 안전했으니까. 영화를 봐도 제일 재미있(다고들 하)는 걸 골라 그것만 봤고, 뭔가 하나 사려면 인터넷 페이지를 수십 개씩 뒤지고 모든 쿠폰을 총동원했다. 알뜰한 걸 좋아해서가 아니었다. 지르고 나서, 나중에 조금이라도 더 싸게 살 수 있었다는 걸 알면 그만큼의 돈을 잃어버린 것처럼 속상했기 때문이었다.


힘들었다. 진지하게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만큼. 큰 일이 터진 건 아니었지만, 만약 내 인생의 남은 몫이 이렇게 동전 몇 푼을 세며 벌벌 떠는 무미건조함 뿐이라면 굳이 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게 나쁜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TV는 월세 단칸방에서 시작해 행복하게 사는 중년들의 모습을 끊임없이 내보냈고, '젊을 땐 그렇게 아끼는 것도 재미다', '나중에는 다 추억이야'같은 말을 못이 배기게 들었으니까. 그래서 하나도 재미있지 않았지만 발랄한 척 했고, 더 적은 돈으로 남들 하는 것 다 흉내(만) 내는 걸 자랑으로 알았다. 그러면 어른들은 건전하고 성실하다며 날 칭찬했다. 그걸 다시 일종의 동력으로 삼았다. 그 사이 내 취향은 질식당했고 시야는 납작해졌다.



이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건 직장을 몇 번 옮기고, 월급이 좀 올라 아주 조금 숨통이 트이면서부터였다. 큰 돈은 아니었지만 처음으로 '여유 자금'이라는 게 생기고, 취향에 맞는 물건들을 사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뭔가를 사면서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기껏해야 오래 쓸 수 있는 것과 내 마음에 더 드는 것 사이에서 후자를 고를 수 있는 정도의, 화장품을 고를 때 '한 번 써 보고 안 맞으면 맞는 친구 찾아서 주지 뭐' 정도의 생각을 하며 안 써 본 것들을 살 수 있는 정도의 여유를 얻었을 뿐인데. 소비의 선택지에 '실패'라는 항목이 추가되면서, 비로소 내 일상에는 하나둘씩 색깔이 입혀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덧 세상이 내 시야만큼 납작해져 있었다. '가성비'라는 말은 종류를 막론하고 모든 물건의 앞에 접두어처럼 따라붙었고 편의점 음식을 '고급 요리'처럼 만들어내는 TV 프로그램이 나와 있었다. 두메산골 첩첩산중에 들어가서도 사람들은 '이미 아는 맛'이 나오는 대기업 프랜차이즈 식당을 찾았고, 찾으면 또 어디에나 그게 있었다. 서점에서는 수상작이나 이미 베스트셀러가 된 책들만 팔려나갔고 관광지도 명소도 사람이 몰리는 곳만 몰렸다. 유명한 것과 이미 검증된 것만 소비하는 건 지독한 냄새처럼 빈틈없이 퍼져 있었다. 실패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상품은 외면당했고, 그 외면은 다시 우리의 선택지를 좁히고 주머니를 얇게 만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악순환이 끝없이 이어졌다.


사회의 취향이 질식당하는 걸 바라보는 건 내 일상이 메마르는 것보다 더 서글펐다. 그게 사람을 서서히 죽인다는 걸 아니까. 천천히, 고통스럽게, 무기력하게 만들다 어느 순간 사람을 잡아먹고 만다는 걸 아니까.


그래서 말하는 거지만, 지금 필요한 건 허리띠를 졸라매는 게 아니라 소비에 실패할 수 있는 여유다. 하나만 고르라고 다그치는 사람보다 천천히 둘러보고 마음에 드는 걸 더 골라보라고 말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가격 대비 성능을 따지고 취향을 사치의 영역으로 넘겨버리기보다, 가격과 성능과 취향을 함께 고려할 수 있는 정도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 언제까지 굶어죽지 않는 것만을 목표로 살 수는 없다. 우리가 간신히 먹고살 수만 있는 돈을 받아 온 50년 동안, 그 나머지 돈을 가진 몇몇이 이 나라를 얼마나 '취향껏' 바꿔놨는지를 돌아보면 더욱 그렇다.



한참 여유가 없을 때, 어쩌다 몇 천원 정도의 가욋돈이 생기면 나는 늘 2천원짜리 매니큐어를 샀다. 매니큐어는 활용도나 실용성을 따지지 않고 오롯이 내 취향만을 기준삼아 고를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이었다. 빨간색이든 노란색이든 펄이 잔뜩 박힌 흰색이든 상관없었다. 늘 이제껏 안 사본 색, 그날 유독 눈에 끌리는 색을 사곤 했는데, 그건 당시 무채색에 가까웠던 일상에서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어떤 색깔이었다. 내가 그 때를 버틸 수 있었던 건 그런 작은 색깔들 때문이라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선택과 취향이란 그런 거다.


'가성비', '저렴이'에 대한 강박이 사회를 완전히 질식시키기 전에, 더 많은 여유를 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그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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