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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아 Sep 28. 2016

다시, 슬프다.

7년 전 일이 떠올랐다.


휴학생 시절, 대형서점에서 매장 직원으로 일한 적이 있었다. 책을 정리하고 손님을 응대하는 정도의 일이었는데, 본점이다 보니 입고되는 책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주 6일 근무인데 식사시간 한시간을 빼고는 휴식시간도 없었고, 잠깐 쉬기는커녕 종일 화장실 가는 것도 까먹을만큼 바빴다. 다섯 달 동안 15킬로가 빠졌을 정도로.


그 날도 바빴다. 책을 꽂고 들고 나르고 찾으며 돌아다니고 있는데, 한 여자가 대여섯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의 손을 잡고 들어왔다. 내 담당 코너 맞은편에 아동 서적 코너가 있어서 종종 보이는 풍경이었다.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책을 보며 놀다 몇 권을 골라 사가곤 했다. 괜찮은 교육방법이었다. 그들도 그래서 온 듯 보였다. 아이와 눈이 마주쳤고, 나는 슬쩍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이는 수줍은 듯 엄마 뒤로 숨었다.

잠시 뒤, 쪼그려앉아 흩어진 책들을 모아 정리하고 있는데 등 뒤에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저 사람들은 뭐 하는 사람들이야? 왜 다 똑같은 옷을 입고 있어?"

그러게, 왜 다 똑같이 입었을까. 신기하겠지. 혼자 픽 웃는데 잔뜩 소리를 낮춘 아이 엄마의 답이 들렸다.

"응..저 사람들은 아아주 낮은 사람들이야.."

지어낸 얘기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나도 이게 지어낸 얘기였다면 좋겠다.

내게 안 들렸을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주변에 마침 사람이 없던 탓에 또렷이 들렸다. 너무 어이없는 말이라 화도 안 났다. 하지만 차마 그들을 돌아보지는 못했다. 아이의 눈빛을 받아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앞에 있는 책을 그러모아 다른 서가로 빠져나오다 문득 내 꼴을 봤다.

책먼지가 잔뜩 묻은 유니폼 셔츠와 앞치마, 땀에 젖고 헝클어진 머리, 손에 낀 닳아빠진 목장갑과 일할 때만 입는 낡은 바지.

아이는 납득했을 거다. 한껏 차려입고 놀러나온 자신과 부모 앞을 뛰어다니는, 모두 똑같은 옷을 입은 채 똑같이 피곤에 지쳐 있는 저 사람들은 한없이 낮은 사람들이라는 엄마의 말을.

많이 씁쓸했을 뿐 서럽지는 않았다. 동료들에게 말하자, 그들은 '그런 것들이 쫄딱 망해서 진짜 힘든 일 하면서 갖은 무시를 다 당해 봐야 된다'고 분개했다. 그리고 잊었다. 그럴 법도 했다. 입밖에 내어 말한 사람이 하나였을 뿐 직원들을 가축처럼 대하는 손님은 차고 넘쳤으니까.

그날 이후 많은 것들을 탓했다. 못돼처먹은 아이 엄마를 탓했고, 그런 말을 들어도 손님이라면 쩔쩔매야 하는 매뉴얼을 탓했다. 사람을 바보처럼 보이게 하는 유니폼을 탓했고, 틀려먹은 세상을 탓했다.

마지막엔 내 자신을 탓했다. 그 말을 들은 날 웬일인지 딱히 화가 나거나 우울하지는 않았었는데, 그 밑바닥에서 '나는 아르바이트생이고, 학교로 다시 돌아갈 대학생이지 진짜 여기 사람은 아니다'는 얄팍한 생각을 발견한 뒤부터였다. 내가 그 엄마와 뭐가 다른가. 그 부분의 모자람을 어느 정도 메우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얼마 전에 엄마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그건 아동학대라고 했다. 맞다. 그건 명백한 학대였다. 하는 부모도, 당하는 아이도 학대라는 걸 인지하진 못했겠지만. 착한 사람은 상을 받고 못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올바른 옛날 이야기'가 가득찬 서점에서, 아이 엄마는 사람의 층위를 나누는 못난 버릇을 세상의 진리처럼 가르쳤을 테고 아이는 그걸 동화책 속 교훈과 함께 여과 없이 받아들였을 거다. 그리고 난 그 아이 엄마도 같은 교육을 받고 자라왔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 아이가 어떻게 컸을지 딱히 궁금하지는 않다. 그렇게 배우며 컸을 법한 사람들이 너무 많이 보인 까닭이다. 아마 그 중 하나로 컸겠지. 유니폼 입은 사람을, 먼지 묻힌 사람을 경멸하는 사람으로. 심성이 착하다면 그들을 동정하는 사람으로 자랐을 테고. 


어제,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글을 하나 읽었다. 그 모자의 생각이 났다. 다들 화를 내는데, 나는 슬펐다. 


그 못된 생각은 혼자 만들어낸 게 아닐 텐데. 살아오는 과정에서 이사람 저사람이 끊임없이 한 숟갈씩을 보태 왔을 텐데. 그 과정이 소름끼친다기보다 그렇게 한 숟갈씩을 모은 게 저만큼 끔찍하게 크고 뚜렷하다는 게 참담했다. 이곳저곳에서 그런 것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을 생각을 하니, 그리고 나도 그런 것들에 무엇을 보태고 있지는 않았나 생각하니 무섭다. 그리고 다시 슬프다. 


이제 난 또 뭘 탓해야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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