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을 위한 생활 핀테크 플랫폼
“2030 세대를 위한 것이라고 하는데 로고가 구려요”
놀라지 마십시오. 기자들끼리 수군거리다가 나온 말이 아닌, 뒤에서 낄낄거리다 툭 던진 농담이 아닌, 정식 기자회견장의 질의응답 순서에서 나온 말입니다. 진지하게 무대에서 귀를 기울이던 관계자들의 안색은 딱딱하게 굳었고 기자들은 실소를 터트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넷플릭스 글로벌 진출 기자회견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갑자기 튀어나온 질의응답 시간의 기습. “로고가 구려요. 계속 이것 쓸 건가요?”
핀크가 나타났다
SK텔레콤과 하나금융그룹이 4일 새로운 핀테크 플랫폼, 핀크를 정식 런칭했습니다. 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에 미끌어진 SK텔레콤이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 대항마를 출시했다고 보면 맞겠네요. 인터파크 컨소시엄은 실패했으나 SK텔레콤은 자신의 우군인 하나금융그룹과 손 잡고 핀테크를 놓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습니다. 하나은행은 SK의 주 채권거래은행이고 2000년대 초 소버린 사태 당시 백기사로 활동하기도 했지요. SK텔레콤은 하나금융그룹에 15%의 지분을 투자한 상태입니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이 출시기념 축사를 했는데, 신입사원 시절 하나금융그룹 본사에 자주 왔다는 추억을 말하기도 했습니다.
끈끈한 인연으로 묶인 두 회사가 출시한 핀크는 어떤 서비스일까요. 상당히 훌륭하다는 평가를 하고 싶습니다. 정해진 기자회견 시간보다 일찍 현장에 도착해서 핀크 서비스를 자세히 시연하고 살펴볼 기회가 있었는데, 정말 말끔하게 작동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금융업무의 틀을 하나은행에 묶어두지 않고 전체 은행과의 연동으로 설정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하나금융그룹이 생각을 잘 한 것 인지. SK텔레콤이 제대로 파악한 것인지 몰라도 오픈 생태계의 특성을 확실하게 파악하는 것 같았습니다.
현장에서 직원에게 데일리금융그룹의 가계부 앱인 브로콜리와의 차이가 뭐냐고 묻자 “진일보한 기능이 상대도 되지 않는다”며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핀크는 재미있고 강력한 기능을 자랑합니다. 인공지능 기반의 금융 챗봇(Chatbot)인 핀고(Fingo)와 지출내역 및 현금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SEE ME 서비스, 여기에 제휴사와의 연계를 통해 차별화된 금융서비스를 맞춤 제공하는 FIT ME 등 인공지능 기반의 머니 트레이너 서비스로 구성했습니다.
SEE ME에 대해서는 헬스장 체지방 측정에 비유하더군요. 기본적인 금전상황을 점검하고 본격적인 핀크 구동에 앞선 ‘전열 가다듬기’로 보면 됩니다. 진짜는 FIT ME 서비스입니다. 은행, 통신사, 카드사가 개별적으로 제공했던 혜택을 한번에 모아 목돈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는 T핀크적금 등의 라인업이 꾸려져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라면적금이에요. 먹는 라면이 아니라 IF, 즉 ‘~라면’이라는 뜻입니다. 커피, 편의점, 패스트푸드 등에서 카드를 사용할 때마다 본인이 설정한 규칙에 따라 자동으로 저금이 되도록 하고, 이렇게 모은 금액은 기프티콘 등으로 최소 8% 할인된 혜택을 받으며 사용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먹는 음식이 아니라 영어의 뜻이라는 설명을 듣고난 후 간신히 이해했습니다.
맞습니다. 핀크는 인공지능 핀고가 옆에 찰싹 붙어서 2030 세대의 현명한 자산관리를 도와주는 서비스입니다. 기존 인터넷전문은행이 쉽고 간편한 사용자 경험으로 찬사를 받는가 싶었는데 별안간 ‘대출이 너무 쉽게 된다’는 공격을 받기도 했죠? 핀크는 이러한 지적에 무풍지대입니다. 간편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지만 일반적인 은행 여수신 업무를 가난하게 지원하는 개념이 아닌, ‘실제 자산을 불려주는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쉽고 간편하게 잔소리꾼을 옆에 둔다는 뜻이에요.
매우 훌륭합니다. 2030 세대의 자산을 불려주는 서비스라니. SK텔레콤의 인공지능 누구와의 연동이 가능해지면 KT가 기가지니로 구현하려는 소위 ‘카우치 뱅킹’도 꿈이 아닙니다. 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에 떨어진 SK 텔레콤이 재미있는 대항카드를 빼들었어요.
“어, 그런데 느낌이 약간 이상해”
가끔 기자회견에 가면 홍보영상을 틀어줍니다. 핀크는 한 발 더 나아갔는데요. 갑자기 무대에 비보이 한명이 나와 파격적인 춤사위로 핀크의 미래를 보여줬거든요. 만약 장소가 젊은이들의 성지인 홍대였다면 격렬한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나왔을겁니다. 그러나 국내 통신, 금융업계 대기업이 마련한 근엄한 자리에 비보이가 등장했으니 분위기가 어떻겠습니까. 애플의 WWDC와 구글의 I/O를 기대한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약간 묘했어요. 일단 핀크가 2030 세대를 위한 서비스니까 파격적인 비보이 무대연출을 보여줬겠지만, 공연 중 박수도 치지 않고 근엄하게 노려볼 생각이면 이런 행사는 제고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로고도 마찬가지입니다. 2030 세대를 노린 것으로 보기에는 너무 원색적인 색을 사용했고 ‘구리다’는 현장 평가가 나왔습니다. 이에 박원기 핀크 대표는 “보기에 따라 그렇게 보일 수 있겠지만 웹툰의 컬러에서 차용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판단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핀크를 설명하며 2030 세대의 무절제한 소비습관을 바로잡아 자산을 불려주겠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아주 여러번 나왔는데 이 부분은 약간 아쉽습니다. 카카오뱅크가 쉬운 대출을 가능하게 만들어 비판을 받는 것을 의식한 것으로 보이는데, 나아가 핀크가 자산을 불려주는 플랫폼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 보이지만 마케팅 차원에서 보면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비보이 무대 후 나온 홍보영상을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젊은 2030 직장인들이 핀크의 표현대로 ‘무절제하게’ 돈을 사용하려고 하자 근엄한 표정의 남자가 나타나 이를 제지합니다. 그리고는 이번달 결제내역을 줄줄줄 말해주며 소비를 중단하도록 만들어요. 글쎄요. 정말 좋은 서비스를 출시했는데 그 이면에 ‘꼰대스러움’이 넘실거리는 것은 저만의 착각일까요?
전반적으로 핀크는 아주 재미있는 서비스입니다. 2030을 넘어 주부들에게도 인기가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너무 꼰대스러운 느낌이 나요. 마치 ‘젊은이들아, 너희들을 도와주기 위해 내가 나타났다. 내 말을..아니, 이 형 말을 들어’라면서 어울리지 않는 힙합바지에 X세대 똥싼바지를 입고 나타는 느낌. 여기에 대한 고민은 기능적인 측면을 차치하고서도 핀크의 성공을 위해 필요한 고민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