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진홍 May 12. 2022

<정.사.금-3>날카로운 바둑신동, 8번 이직하다

이민재 PR게이트 부장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세상을 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헷갈리는 질풍노도의 귀염둥이. 줄여서 질귀가 2022년을 맞아 새로운 콘텐츠를 만듭니다. 2022년을 맞아 새롭게 시작하는 그냥 술자리에서 만난 사람들의 미친 이야기. <정말 죄송한데 왜 사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궁금해서요> 시리즈입니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제 레이더에 걸린 모든 분들이 대상이며 좋은 단백질원입니다. 도망칠 길은 없습니다. 거기 엉덩이 들지 마세요. 살짝 열린 문 틈 너머로 애절한 눈빛 빛내도 나갈 수 없습니다. 진지하고 학술적이며 온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사이좋게 코인정보를 거래하는 훈훈함을 지향하면서도 굳건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로 묶인 연대감을 자랑하는 당신 손의 자랑스러운콘텐츠. <정말 죄송한데 왜 사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궁금해서요>. 줄여서 <정.사.금> 시작합니다.


<7대 필독사항>

<정.사.금>은 팩트를 소중하게 생각하지만 MSG도 사랑합니다. 엄마의 정성이 들어간 미원소머리국밥을 지향합니다.

<정.사.금>에 나왔다고 주변에 자랑하면 인간관계가 바스러지는 소리를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정.사.금>을 읽은 후 알찬 시간이었다 생각하면 병원에 가십시요.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직통번호 1899-0893. 늦었다 생각하지 말고 포기하지 마세요. 극복할 수 있습니다.

<정.사.금>은 방송심의규정을 준수하지는 않죠 당연히 그럴 이유가 있나 이건 방송이 아닌데 여튼 그렇습니다.

<정.사.금>은 당신의 브라보라이프와 성공적인 삶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필자의 주지육림만 응원합니다.

<정.사.금>은 지구 온난화 문제 해결과 세계평화를 기원합니다.

<정.사.금>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BTS와 블랙핑크 등 세계적인 셀럽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환해...이 형은 참 환해...


기자일의 특성상 홍보인들과의 만남도 잦은 편입니다. 하지만 각자 업의 특성상 아무리 마음이 잘 맞고 통해도 서로 완전히 밀착해 친해지기는 또 어렵습니다. 사람이 좋아 서로 형동생을 터도 언젠가는 또 싸우고 지지고 볶는 사이가 될 수 밖에 없으니까요. 그럼 얼마나 민망하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저는 홍보인 업계에 약 100여명의 형동생이 있습니다. 도대체 뭐하는 놈이길래 이렇게 대책없이 사냐 싶으시겠지만 저에게도 나름의 가이드 라인이 있습니다. 가장 큰 가이드 라인은 일은 일, 사람은 사람이라는 암묵적인 룰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제가 기자의 역할을 할 때는 형동생에서 홍보인으로 돌아와 함께 지지고 볶을 수 있는 분. 그런 분과는 미련없이 형동생을 틉니다. 


또 기자라는 일이 사실 누가 도와줘야 할 수 있는 겸손한 일자리에요. 간혹 몇몇 동료 기자들은 건방짐이 기자의 미덕인 줄 아는데..자신감을 갖고 일을 해야 할 때는 분명 필요하죠. 하지만 정보를 얻고 취재를 하는 등 내 일을 할 수만 있다면 때로는 비굴하고 비굴하고 비굴해져야 합니다. 기자의 자세는 거창한 것도 아니고 경직되지도 않으며, 걍 일을 할 수만 있다면 뭐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민재 PR게이트 부장은 그런 측면에서 제법 흥미로운(?) 인물입니다. 방금 이야기한 제 나름의 가이드 라인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한편, 기자화 홍보인을 넘나들며 무려 8번의 이직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바둑신동 출신이라 어렸을 때 TV에도 나왔다는 그의 이야기를 조금 들어보죠. 2022년 5월 10일. 이코노믹리뷰 산업부장에서 1인 소상공인 부서인 미래경제부 기자가 된 첫 날. 소프트뱅크벤처스 스타트업 밋업 행사를 마치고 신논현 인근 어딘가의 술집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진지한 이야기를 하며 회 한 점을 초고추장에 비비고 있다.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민재 PR게이트 부장입니다.


-김민재 아니었어요?

=이민재.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컨설팅사, 종합홍보대행사. PR 컨설팅, IMC, 캠페인, 언론 및 온라인 홍보, 인플루언서 마케팅, 디자인 및 영상 콘텐츠 기획을 하는 PR게이트 이민재입니다.


-반갑습니다. 지금은 홍보인으로 살아가시는데, 원래는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셨죠?

=네. 언론인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어요.


-처음에 왜 기자를 하려고 했어요?

=일간지 사회부 기자를 하고 싶어서요. 무조건 닥치고 사회부 기자를 하고 싶었습니다.


-이유가 뭔가요?

=기자라면 사회부 기자를 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다들 비슷한 생각 하지 않나요? 치열하게 현장을 뛰며 이 사회를 내 손으로 바꾸겠다. 혹은 바뀔 수 있는 발판이라도 만들고 싶다. 뜨거웠죠. 그래서 일간지에서 갑자기 캐나다 유학을 다녀왔다는 이유로 국제부 발령을 내길래(외향과 다르게 김민재 아니 이민재 부장은 유학파다) 사표를 써버렸어요. 매어있는 식구가 있나, 아쉬울 것 없는 젊은 시절이었고 사회부를 할 수 있는 곳이라면 무조건 지원했습니다.


-뭔가 엄청나게 정석적이시네요.

=그런데...솔직히 말하면 그 뜨거움은 좀 오래가지 않았던 것 같아요. 뜨거움 자체는 가시지 않았지만 뭔가 형태가 변했다고 할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명박 정부 당시 광우병 사태 당시에요. 현장을 뛰며 취재하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고, 아. 내가 약간 꿈에 지나치게 매몰되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게 시대도 변했고 저도 변했고, 디지털 조선일보에서 게임 담당 기자로 변신했습니다. 정말 즐겁게, 뜨겁게 일했습니다.(아이디어 뱅크라는 별명도 얻었다구요? 하하하하) 참고로 전 기자일을 할 때 타협이 없었습니다.


-8번 이직의 역사가 시작됐군요. 홍보인으로의 변신도 궁금해요. 어디서 처음 전직을 하셨죠?

=옐로모바일입니다.

-와우.

=그렇지. 와우.


-이후로 많은 이직을 해서 기어이 8번을 채우셨는데. 홍보인으로 전업한 후에는 계속 홍보인으로만 활동했죠? 

=그렇네요.


-기자로 살다가 홍보인으로 살면서 뭔가 느끼고 그런 것은 없었나요?

=많죠. 주먹이 운다 등등


-좀 의미있는 이야기를 해봐요.

=음...이 이야기를 하면 되겠네요. 사실 기자로 일하다가 홍보인으로 전업하는 경우가 요즘 들어서 부쩍 많아졌잖아요? 그 많은 분들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제가 대표할 수 없으니 순수하게 내 느낌만 말해본다면...처음에는 엄청 쉬운 일이라 생각했어요. 내가 기자로 살며 홍보인을 보던 시각을 역지사지로 바꾸기만 한다면? 홍보라는 업무를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요.


-뭔가 현실은 달랐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네. 앞서 말했지만 전 기자생활을 할 때 홍보인들과 타협을 전혀 하지 않는 타입이었습니다. 꽉 막혔죠. 이렇게 강성이었으니까...당시 절 보던 홍보인들의 시각으로 제가 간다면 홍보업무를 못할 것 없겠다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렇지 않더군요. 전혀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고. 사람 관계가 변하니 상처도 받고.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밥값이나 하자'는 생각이 들 지경이더군요.


-정말 많은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꼭 그게 그렇지 않아요


-네?

=생각을 또 엄청 많이 하면서 갇히는 스타일은 아닌지라


-그렇다는 것은?

=기자로 활동하다 홍보업계로 넘어오면서 지나치게 쉽게 생각했고, 또 상황이 예상보다 어렵다는 것도 알았지만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 전직할때나 이직할때 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잘 풀려왔다고 생각합니다. 운이 좋은 것도 있었겠지만...너무 많은 생각은 오히려 좋은 선택을 망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장고 끝에 악수 둔다?

=맞아요. 제가 사실 어릴 때 바둑신동이었습니다. TV에 막 나오기도 했어요. 그런데 바둑을 두면서 느낀 것은 생각이 너무 많다? 그러면 꼭 문제가 생깁니다. 가끔은 순리에 몸을 맡기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차분하게 나아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봐요. 전 그렇게 전직과 이직을 했고..앞으로도 그럴 생각입니다.


-순리대로 흘러가는 것도 생각보다 어려워요

=실력을 쌓아야죠. 그리고 자신만의 규칙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자들과 아무리 친해도 형동생을 쉽게 트지 않는다는 저만의 규칙이 대표적입니다. 몇 가지 이정표만 세워두면 됩니다. 그렇게 흘러가는 것. 일반화할 수 없겠지만 저에게는 전직과 이직을 할 때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뭔가 즉흥적인 것 같은데, 위험하지 않을까요?

=아. 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네요. 실력을 쌓고 이정표를 세운 후 순리대로 흘러가더라도...균형감각을 잡는 것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전 캐나다 유학 시절 현재의 일본인 아내를 만나 결혼을 약속했는데, 제가 한국에 먼저 들어온 후 제안을 했지요. 각자 한국과 일본 집에서 한달씩 살아보자고. 그리고 우리에게 더 잘 맞는 나라를 택하자고. 한국이 낙점됐는데...이런 균형감, 실제 체험하는 균형감도 중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오늘 뭔가 삶의 큰 가르침을 받는 느낌?

=설마요. 이건 다 저의 이야기입니다. <정사금>이 그런 기획 아닌가요? 각자의 이야기를 찬찬히 허심탄회하게 들어보고 절대 일반화하지 않는 것. 저의 이야기는 저의 이야기고 참고죠. 그리고 전 계속 배워가는 사람이고요. 배워야 할 것들도 많고요.


-오랜만에 훈훈한 인터뷰,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방금 형동생 트기로 했으니까. 오늘부터 우리는 1일~


-좀 다른 표현 없나요

-없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