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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페이가 말해줬다 손은, 눈보다 빠르다고

그들은 왜 파업 말고, 팝업을 하는가.

by 최진홍

264. 선명한 숫자의 공포가 가슴을 조여온다. 온 몸의 근육이 당겨지며 쿵쾅거리는 심장소리가 요란하다. 심연의 파편속에서 비릿한 피냄새가 화려한 장미처럼 피어오른다. 칫. 어쩌면 이 내가 '긴장'이라는 것을 했을 수 있겠어. 불현듯 오래전 심연으로 사라졌던, 전장의 포연이 가득했던 혼돈 마녀의 제단 아래에서 쓰러져간 동료들이 생각났다.


하늘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잖아. "시작해도 될까?" "얼마든지" 놈은 웃었다. 그리고 기회는 한번. 세계를 구할 기회는 말 그대로 단 한번이다.


숫자가 올라간다. 찰라의 순간. 89차 은하대전쟁에서 잃은 줄리아의 미소가 떠오른다. 줄리아, 그렇게 슬픈 얼굴 지어보이지 말아. 난 정말 괜찮아. 손 끝의 차가운 감각. 버튼이, 느껴진다.


팝업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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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페이가 서울 여의도 IFC에 놀이터를 열었습니다. 10일부터 23일까지 여의도 IFC몰 지하 3층 노스 아트리움에서 오래오래 함께가게 팝업 스토어를 올해 두번째로 펼쳐놨습니다. 그리고 이번 팝업스토어는 '우리만의 작은 브랜드 놀이터'라는 콘셉트 아래, 각 브랜드의 개성과 스토리를 소비자가 직관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됐다는 설명이지요.


처음 '오래오래 함께가게'라는 이름을 접했을 때, 저는 일종의 시대적 불협화음을 느꼈습니다. 지금이 어떤 시대입니까. 모든 것이 파편화되고 자극적인 언어로 뒤덮인 시대가 아닙니까. 그런데 이토록 푸근하고 정직한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다니.


어쩌면 이는, 쉽고 빠른 길을 알면서도 굳이 어렵고 고생스러운 길을 택하며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려는 카카오의 고집스러운 철학이 반영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두가 빌런이 되기를 자처하는 세상에서, 선함에 대한 강박은 그 자체로 소중한 가치일 테지요. 럭셔리 관찰 예능이 범람하는 지금, 시청자의 웃음을 위해 온몸을 던졌던 '무한도전'의 그 시절이 문득 그리워지는 것과 비슷한 감정이었습니다.


현장에 들어서니 '버튼 누르기 게임'이 있었습니다. 264곳의 협업 브랜드를 상징하는 숫자 '264'를 정확한 순간에 맞추는 것이었죠. 결과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였습니다. 줄리아는 결국, 웃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제 주위의 그 누구도 성공하는 이를 보지 못했습니다. 10분쯤 그곳을 배회하다 관계자에게 물었습니다. "하루에 성공하는 이가 몇이나 됩니까?" 돌아온 답은 "의외로 아주 많습니다"였지요. 그러나 그 '아주 많은' 구체적인 숫자는 끝내 들을 수 없었습니다.


옆에 있던 포토 부스는, 홀로 찾은 길이었기에 묵묵히 지나쳤습니다. 그러자 비로소 본질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소상공인들의 다채로운 제품들이 마치 잘 정돈된 은하수처럼 펼쳐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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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속에서 유독 제 눈길을 끈 것은 '화투'였습니다. 이런 현대적인 공간 속에 놓인 전통적인 오브제의 생경함, 그리고 그 그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기지에 감탄했습니다. 평소 즐기지도 않는 화투를 사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 이성적인 고민은 잠시였습니다. 때로는 미적 탐닉이 실용의 가치를 압도하기도 하는 법. 손은 어느새 그 작은 예술품을 장바구니에 담고 있었습니다. '아내에게는 논리적으로 잘 설명하면 될 일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했지요. 손은 눈보다 빠릅니다.


그 외에도 며칠 전부터 집안 공기가 답답하게 느껴졌던 터라 눈에 들어온 양배추 키우기 키트, 대한민국 경제의 최전선에서 분투하느라 메마른 입술을 적셔줄 손수건, 그리고 온난화로 고통받는 지구와 감정적으로 동기화된 제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해학적인 문구의 봉투까지. 손은 마치 별개의 자아를 가진 듯, 주인의 철학적 고뇌를 비웃으며 바구니를 채워나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만난 직원들의 모습 또한 인상적이었습니다. '이것의 본질은 무엇이며, 저것의 효용은 어디에 있습니까?' 와 같은 저의 집요한 질문에도, 그들은 시종일관 미소로 응대하며 상품의 가치를 막힘없이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들의 프로페셔널한 모습은 이 상생 캠페인의 진정성을 더하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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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노리나

자, 이제 이 팝업 스토어의 경제학적 함의에 대해 논해볼 시간입니다. 이제부터는 추론의 영역입니다.


먼저 이 행사의 핵심은 단순한 판매 지원을 넘어선 '브랜드 자산의 이식'에 있습니다. 소비자는 '카카오페이'라는 강력한 신뢰의 상징 아래 모인 가게들을 보며, 무의식적으로 그 신뢰를 입점한 소상공인 브랜드에 투영하게 됩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후광 효과'의 명민한 활용으로 볼 수 있겠네요.


이 지점에서 카카오페이는 '신뢰의 큐레이터'를 자처하며, 소상공인들이 오랜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얻을 수 있는 브랜드 신뢰도를 단기간에 확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시혜가 아닌, 자사의 가장 강력한 자산을 공유하는 고차원적인 '상생 브랜딩' 전략이라 볼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는 사용자의 소비 행태를 '가치 소비'로 재정의합니다. 나의 지출이 단순한 소비를 넘어, 한 소상공인의 꿈을 응원하는 행위가 된다는 만족감. 이 특별한 경험의 중심에 카카오페이를 위치시킴으로써 사용자와 플랫폼 간의 감성적 유대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이는 기술적 편리함만으로는 결코 쌓을 수 없는 견고한 '방어 해자(Defensive Moat)'가 되어, 장기적으로 카카오페이 생태계의 충성스러운 고객을 확보하는 기반이 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그날 제 지갑의 안위는 지키지 못했으나, 자본과 브랜드, 그리고 가치 소비가 어떻게 상생의 고리를 만들어내는지를 목도하는 귀한 통찰을 얻었습니다. 줄리아는 웃지 못했지만, 어쩌면 더 많은 이들이 웃을 수 있는 길을 본 셈이지요. 거기에 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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