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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진홍 Nov 08. 2016

삼성과 비브랩스, 솔직히 놀랐다

"인터페이스를 말하다"

지난 4일 오전, 심드렁한 손가락을 놀리며 메일을 점검하는데 삼성전자에서 자료가 도착했습니다. 삼성전자가 인수한 인공지능 플랫폼 기업 비브랩스의 주요 경영진이 당일 설명회를 연다고 하더군요. 2시간 전에 봤습니다. 아오, 사무실로 들어가 팀원들에게 꼰대짓(?)이나 하려고 했는데...부랴부랴 짐을 챙겨 날아갔습니다.


통상적으로 설명회 등의 소식은 엠바고를 전제로 한다고 해도 늦어도 전날에는 공지가 옵니다. 그런데 비브 설명회는 말 그대로 기습적...구글의 가정용 인공지능 스피커 구글홈이 4일(현지시간) 미국 시장에서 시판을 시작한다고 하던데 그것 때문인가?라는 생각도 스쳤습니다. SKT가 로라 시연회를 열자 곧바로 KT와 LG유플러스가 사이좋게 NB-IoT 간담회를 열었던 일도 생각났어요. 여튼 별별 생각들.


서초사옥에 도착하니 설명회 자체를 급하게 잡은 느낌이 나더군요. 연단 배경의 화이트보드가 그대로 있어 사진기자들이 '빛이 튀어요'라는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으나 뭐 그냥 그렇게 가더라고요. 그렇게 설명회 시작. 아무리봐도 거대기업 부사장이라고 보여지지 않는, 뭐랄까..왠지 음악하는 뮤지션처럼 생긴 무선사업부 개발1실장 이인종 부사장이 등장했습니다. 


엠바고도 길고, 뭔가 정신도 없고. 심지어 통역 스피커가 없어서 질의응답을 영어로 대부분!!!!!! 영어로!!!! 대부분!!!!! 한국어로 기자들이 질문하면 통역하는 분이 비브 경영진에 영어로 전달하고, 경영진이 영어로 쏼라쏼라 말하면 끝나는 구조였습니다...이런 제기랄...원래 기자 간담회에 가면 기자들이 멘트 받을라고 노트북 열라 치거든요? 그런데 간담회는 조용~했습니다. 영어...그걸 보다못한 이인종 부사장이 즉석 통역을 해주기도 했다는...영어...영어...이 빌어먹을 놈을 피해 20년을 도망다녔으나 끈질기게 달라붙는...후우..(나중에 삼성전자가 한국어와 영어로 질의응답을 정리해줬습니다)


자, 본론으로 들어가서. 뭐랄까요. 기자들의 관심은 갤럭시S8의 인공지능 탑재였습니다. 뭐 그렇겠죠. 하지만 이인종 부사장과 비브의 다그 키틀로스(Dag Kittlaus), 아담 체이어(Adam Cheyer)는 갤럭시S8보다 인터페이스 혁명을 말하더군요.


볼까요. 비브의 인공지능 플랫폼은 외부 서비스 제공자들이 자유롭게 참여해 각자의 서비스를 자연어 기반의 인공지능 인터페이스에 연결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다는 뜻. 개방형이라는 것은 인공지능이 기능을 가지는 것을 넘어, 고객의 입장에서 사용자 경험의 확장을 크게 신장시킬 수 있는 개념까지 포함한다고 하네요.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인공지능 플랫폼에서 스스로의 기능적 솔루션을 고도화시키고 플랫폼을 강화하는 방법입니다.


그런 이유로 막강한 가전제품 제조 경쟁력을 확보한 삼성전자는 비브 인수를 통해 향후 인공지능 서비스를 구축할 핵심 역량을 내부 자원으로 품어낼 전망입니다. 이를 통해 모든 기기와 서비스가 하나로 연결되는 인공지능 기반의 개방형 생태계(Open Ecosystem) 조성에 집중할 것으로 보여요. 즉, 인공지능 그 자체가 아니라 이를 활용한 일종의 생태계, 플랫폼 전략을 일으켜서 인터페이스를 빠르게 장악하겠다는 뜻입니다.

음...뭐랄까. 솔직히 놀랐습니다. 갤럭시노트7 발화나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삼성전자의 대응은 정말 아쉽습니다. 하지만 비브를 통한 삼성전자의 꿈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사용자 입장에서 인공지능의 기능을 통해 소위 초연결 인프라를 배치하고, 이를 바탕으로 작동하는 모든 인터페이스를 담아내겠다는 의지. 단순한 인공지능이 아닌, 인공지능 오픈 생태계를 노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겁니다.


짧게 말하자면 '인공지능은 거들 뿐'이에요. 즉 '우와 인공지능 신기해~'가 아니라 '인공지능으로 인터페이스를 장악하겠다'는 겁니다. 서비스에서 기술 지향적으로 변신하고 있는 네이버와도 통하는 구석입니다. 초연결의 시대에서 인터넷이 공기가 되는 것처럼, 삼성전자는 비브를 통해 인공지능을 공기로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사용자의 '입력 방식'...정확히 말해 '정보를 입력하고 받는 방식'을 바꾸겠다는 겁니다.


여기에 실생활이라는 단서가 붙습니다. 이인종 부사장은 "사람들이 인공지능 이야기를 하면 모두 알파고를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실제 생활에서 정보를 모으고 인간과 같은 수준의 생각을 통해, 유저에게 가치 있는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진정한 인공지능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어요. 이어 "우리의 새로운 플랫폼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인공지능 기능을 겸비한 새로운 인터페이스일 것이다. PC에서 스마트폰으로 그리고 이제는 AI 기술이 혁신을 일으킬 것이며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고 전했지요.


사실 이번 설명회 핵심은 갤럭시S8도, 인공지능도 아니었습니다. 사용자 중심의 인터페이스 변화의 시기를 장악하겠다는 삼성전자와 비브의 의기투합이었어요. 대부분의 기사들이 갤럭시S8 인공지능 탑재에만 매몰되는 경향이 있는데 진짜 중요한 것은 '인터페이스'입니다. 환경!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환경의 변화를 주도하겠다는 것.


설명회 말미 이인종 부사장은 이를 설명하며 "다들 이해가 되셨나요?"라고 물었고, 기자들은 우렁차게 "네!"라고 했습니다. 뭔가 강의를 듣는 기분이...그런데 이인종 부사장이 거듭 말하더군요. "정말 이해가 되셨다고요?"

음..사실 100% 이해는 못했지만(빌어먹을 잉글리시) 이것 하나만은 알 수 있었습니다. 삼성전자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최소한 기술을 기반으로 사용자 경험을 확장하는 일반적인 미래 생태계 전략을 넘어 그 관문까지 잡겠다는 의지를 가진 것을요. 


많은 사람들이 4차 산업혁명을 오해하고 있는데, 사실 4차 산업혁명은 기술의 고도화에 따른 기술상향표준화, 초연결, 기존 제조업이 뭉쳐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대단한 일이지만...이 지점에서 두 가지 생태계가 있을 수 있어요. 하나는 기술 중심의 내 중심의 생태계 조성. 하나는 소프트웨어 감성으로 무장하거나 생태계에 없는 기술을 보여주며 이에 합류하거나 이종 생태계를 연결하는 방법. 삼성전자는 전자에 가깝습니다. 하긴, 생각해보면 가전제품 만들고 있고 스마트폰도 있으니 그렇게 갈 수 밖에 없겠죠.

관건은 역시 소프트웨어 마인드입니다. 지금의 삼성전자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비브 인수는 일반적인 인공지능 경쟁력을 품어내는 선에서 벗어나 인터페이스, 즉 사용자의 환경과 피드백 전반을 장악하겠다는 야심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변화야 말로, 놀라운 것 아닐까요?


최근 삼성전자는 비선실세의 딸에게 지나친 친절을 베풀었다는 의혹을 사고 있습니다. 이건 지탄받아야 합니다. 또 갤럭시노트7 정국에서는 아이구...조금 아마추어 느낌이...하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합시다. 비브 인수와 그에 따른 로드맵으로만 봐도, 삼성전자는 아직 '쏴라있네'입니다. 네? 구글과 애플 다 하고 있다고요? 그럼 질문을 바꾸겠습니다. 구글과 애플이 다 하고 있으면 삼성전자는 하면 앙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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