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와 희망은 동전의 양면
당연하지만 전 국제정치학을 전공하지 않았으며, 미국 경제는 개뿔 모릅니다. 자유의 여신상이 미국에 있는건 알아요. LA와 로스앤젤레스가 다르다는 것도 알지만 미국의 역사와 정치적 문화, 경제적 흐름은 모릅니다. 그냥 ICT 업계 취재하는 쩌리 기자일 뿐입니다.
그래서 잘 모르다보니 상상을 하게 됩니다. 기사로 쓰기는 어렵지만 썰을 한 번 풀어볼까 합니다. 바로 트럼프 쇼요오오크! 전문가들이 근엄하게 말하는 그 트럼프 쇼오오오크~! (트럼프노믹스라는 표현도 나오더군요) (그냥 재미로 읽어주세요) (자꾸 브런치 보고 '기자님 기사 잘 보고 있어요' 그러시는데 이거 기사 아닙니다) (이건 내 맘대로 쓸거에여 데헷) (스트레스 해소법?)
트럼프는 재앙인가?
처음 트럼프를 본 것은 리얼리티 쇼였습니다. 거성 박명수 선생의 패치업 미국판이라고 생각했어요. '똑똑하네, 인생을 즐길줄 아는 똑똑한 양반이야'라는 생각. 나아가 '미국이니까 저럴 수 있겠지'...그러더니 막 대통령 나온다고 그러고 막말의 향연을 펼치더니 기어이 백악관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음. 솔직히 당황했습니다. 방산주를 사야 하나? 세계 초강대국이 미치광이의 손에 들어갔다! 백악관 최후의 날이 왔다! 핵전쟁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트럼프는 정말 미친 사람일까요? 여기에 대한 진지한 고찰은 많이 있으니 생략하겠습니다. 정리하자면 그는 쇼를 아는 영리한 협상가이자 선동가입니다. 그리고 역사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며 계층의 괴리감이 극에 달할 경우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마련입니다. 트럼프는 미치광이가 아니라 이를 활용할 줄 아는 간웅입니다.
자, 그렇다면 트럼프는 위험할까? 당선확정 후 '한미동맹은 100% 강화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해 많은 이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는데...글쎄요. 미국 대통령 혼자 '주한미군 철수해!'라는 말빨이 먹히는 것은 냉전시대에서 끝났습니다. 의회의 동의도 받아야 하고 뭐도 필요하고 이것도 해야하고...
여기서 확실한 것은, 저는 조심스럽게 트럼프가 위험하지 않다에 한표를 던집니다. 20세기 소년의 '친구'처럼 지구종말을 위해 폭주하는 미친놈이 아니라, 이제 목표를 이루었으니 약간 냉정한 미국 대통령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왜냐고요? 미국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그럴 수 밖에 없는 자리인데다 그렇게 해야 하는 곳이니까요. 전 트럼프가 그 선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슨 근거로? 경제적 관점부터. 트럼프는 막말로 유명하지만 그의 정책을 쭉 따라가보면 그냥 21세기판 뉴딜입니다. '우리는 미국을 살려야 해. 세계경찰? 에헤이. 미국 외는 니들이 알아서 해(주한미군 철수같은 충격적 쇼크는 차치하고) 우리는 우리부터 살고 본다'는 마인드.
즉 트럼프는 미국 그 자체에 집중할 겁니다. 보호 무역주의와 중국에 대한 보복적 관세징벌을 날리는 것도 모두 '미국'을 위한 것이에요. 이는 역으로 '미국에 피해가 간다'면 언제든지 수정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중국에 45% 관세를 때리면 중국이 보복하겠죠? 그때의 피해상황이 관건이라는 겁니다. 언제든지 트럼프는 변할 수 밖에 없어요. 러스트 벨트에서 고통받는 백인 블루컬러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니까.
그렇다면 군사적 관점. 미국이 세계경찰이라고 하는데..여기부터 짚어보자고요. 정말 미국이 슈퍼 히어로인가요? IS는 왜 탄생했을까요? 이라크 전쟁과 테러와의 전쟁..그 뒤에 숨은 방산업체의 공작입니다. 중동? 석유. 유럽? 경제적 이득. 끝. 미국은 세계경찰이 아니라 종로의 김두환같은 존재에요. 법치가 아닌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스스로의 질서를 세웠을 뿐.
하지만 시대는 변하고 그 변화의 파도는 미국의 제어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힐러리와 같은 신자유주의자들은 냉전시대를 거치며 사회주의와의 체제경쟁에서 승리해 소위 '눈에 뵈는 것'이 없습니다. 아마 힐러리는 오바마와는 또 다른 세계경찰의 흐름을 일정정도 탔을 겁니다. IS의 탄생에 나름의 공을 세운 국무장관 시절의 그라면요. 자, 그렇다면 트럼프와 비교해 볼까요. 깔끔합니다. 트럼프의 관심은 미국. 힐러리는 그 위대한 동맹국의 안전과 불온세력의 배격. 누가 더 위험할까요? "동맹국을 지켜야 해!"라며 언제든 전략적 행동에 나설 수 있는 힐러리가 더 위험해 보이는 것은, 제 망상일까요? 참고로 트럼프는 억만장자입니다. 돈이요? 열라 많아요. 로비에 있어 다소 침착할 수 있습니다.
네...물론 정신승리일 수 있어요. 그냥 봐도 상태가 안좋아보이는 트럼프가 백악관에 앉아 핵미사일 버튼을 만지작 거리는 순간만 상상해도 머리털이 곤두섭니다. 하지만 전.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우리만 알아서 잘 살게'라고 말하는 사람이 '정의는 살아있다능! 우리 돈도 살아있다능!'이라고 외치는 사람보다는 더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트럼프, ICT 업계는?
그럼 ICT 업계 이야기를 하죠. 모두 퍼렇게 질려있습니다. 애플보고 미국에 공장을 세우라고 그러지 않나. 가뜩이나 인력난에 어려운 실리콘밸리에 이민자들을 규제한다고 그러지 않나. ICT보다 제조업, 인프라에 집중한다고 그러지 않나. 미국의 일베라는 비야냥을 사는 피터틸이 트럼프를 지지했을때 실리콘밸리가 뒤집힌 것도 이해는 됩니다.
하지만 긍정요정도 필요합니다. 자, 애플보고 미국에 공장을 세우라고 한다? 애플은 대부분의 아이폰 재품을 중국에 있는 폭스콘 공장에서 공급받고 있어요.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의 인력을 이용해 수익을 창출하는 셈. 하지만 트럼프가 미국내 일자리 창출을 약속하고, 공업 및 상업지대의 부활을 약속하며 많은 표를 얻었기에 무리해서라도 공약을 이행할 가능성이 큽니다.
당장 타격이 있을겁니다. 하지만 현금 환수 정책이 변수에요. 미국 기업이 해외에서 벌어들은 돈을 미국으로 가져올 때 지불해야 하는 35%의 세율을 10%로 떨어뜨린다는 정책입니다. 애플이 이름도 어려운 조세회피마법을 부리며 유럽에서 생난리를 치는 상황에서 세율을 떨어트리는 것이 어우러진다면, 전향적인 방향성을 타진힐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거칠메 말하자면 스마트팩토리 가는 겁니다. 뭐. 아디다스는 6개월간의 테스트 이후 내년부터 독일 바이에른의 안스바흐에서 자동화를 통해 소비자 맞춤형 신발을 대규모로 생산한다고 합니다. 이제 개발 도상국 아이들 학대하며 공장 돌릴 필요 없습니다. 그게 더 비싸! 차라리 스마트팩토리 가는 겁니다.
게다가 최근 보여지는 스마트팩토리의 특성 중 하나. 생산과 판매가 하나의 지역에서 벌어진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건 스마트팩토리 자체보다 더욱 직접적인 폭발력을 가집니다. 유통망이 사라지는 시대! 승부를 벌일 가치가 있습니다.
...물론 스마트팩토리가 뉘집 개 이름이냐..라고 말하면 할 말이 없습니다만, 트럼프가 제조업에, 전통적 사업에 상당히 관심이 많다는 점도 주효합니다. 에너지 및 인프라 전통사업. 러스트 벨트에 있는 백인 블루컬러들이 그를 지지한 이유 중 하나에요. 그런데 말입니다? 4차 산업혁명은요. 어느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1990년대 인터넷 혁명과 2000년대 모바일 혁명이 쭉 이어가다가 소프트웨어와 기술적 고도화(라고 쓰고 기술상향표준화)의 방향성을 타고 공급자와 구매자 모두의 사용자 경험을 확대하는 개념입니다. 여기에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클라우드, 사물인터넷의 개념이 들어가는 거고요.
쉽게 말하면 4차 산업혁명은 제조업, 기존 제조업 혁명입니다. 왜 중국에서 '제조강국 2020'이라는 이름을 붙였을까요. 왜 산업혁명의 '4번째'일까요. 오프라인의 손에 잡히는 전통의 사업을 ICT가 비약적으로 끌어올리는 것. 마치 통신의 역사에서 3G까지 인터넷으로 가고 4G부터는 LTE라는 마케팅 용어로 속도에 천착하는 것과 비슷해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입니다.
그 관점에서 전통적 사업을 살리자는 트럼프의 21세기 뉴딜은 ICT, 특히 스마트팩토리와 나름의 접점을 가집니다. 네, 지금 실리콘밸리는 ICT 업계의 후폭풍을 걱정하지만...제조업과 ICT의 만남은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스마트팩토리. 의외의 길을 찾다! 물론 이 논리의 가장 취약점은 '고용'입니다. 스마트팩토리는 로봇이 일하니까요...그리고 트럼프 입장에서는 백인 블루컬러의 해고를 용인할 수 없을 겁니다. 이 대목은 이렇게 말하고 싶군요. "지금 100% 스마트팩토리 하는 곳이 어디있나?"...아직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서로의 간격을 메울 수 있는 시간은 있어요. 적어도 4년은요.
이민정책도 실리콘밸리의 걱정입니다. 사실 이 대목은 뭐 답이 없어 보이지만..긍정요정의 말을 빌리자면 '슬럼화된 도시의 이민자와 실리콘밸리의 고급인력을 나눠야 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명심해야 합니다. 트럼프는 오로지 미국, 그 자체에만 집중합니다. 이를 위해 보호 무역주의를 펼치고 타국과 대립각을 세우겠지만 그 대목에서 미국에 피해가 된다면...반드시 변할 겁니다(판을 깔아라! 점을 보아라!)
하지만 위험은 있다
자, 지금까지 여러분은 정신승리와 긍정요정의 속삭임을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ICT 업계는 '활짝 웃어도 된다는 말이냐'
아뇨. 그건 또 아닙니다. 심각한 리스크는 있어요. 바로, 트럼프는 'ICT 업계에 아무런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대선을 준비하며 아마존과 페이스북과 싸웠고, 이에 대한 보복의 가능성도 열었지만 ICT 그 자체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은 없습니다. 그냥 생각이 없어보여요. 애플 백도어 논란 당시 '백도어 털어야'라고 말하는 그는 마치 어버이 연합 같았어요.
네, 리스크는 있습니다. ICT에는 생각이 없다는 거...인터넷 도메인과 관련한 패권주의는 정말 노답...개노답..
다른길이다
트럼프가 당선되자 많은 이들이 슬퍼하더군요. 아베와 박근혜 대통령, 시진핑, 푸틴 등의 사진을 걸고 지구종말을 암시하는 포스터가 인기에요. 뭐, 그럴 수 있겠죠.
하지만 우리는, 특히 미국은 그냥 다른길을 걷게 되었을 뿐입니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싸움도 아니었고 거창한 이데올로기의 전투도 아니었어요. 세계적인 경제위기에서 짜증난 99%가 판을 엎어버린 겁니다.
미국인들은 인권, 민주주의, 포용정책을 강제당했어요. 처음에는 좋았죠. '우리는 다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뭐가 좋은지도 모르겠고. 나도 살기 힘든데 자꾸만 남을 배려하고 받아들이래요.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라고 합니다. 이런 제기랄. 나도 힘들어! 힘들다고! 그때 트럼프가 나온겁니다.
이럴때 너무 부정적인 생각만 하지 말자고요. 개미눈꼽 정도는 좋을 수 있으니까. 차라리 우리 걱정을 더 합시다. 당장의 우리 걱정을. 그리고 미국 문제는 우리와의 상관관계를 잘 따지면서 직접적인 타격을 피하는 쪽으로. 하나만 명심합시다. '위기는 기회의 준비'다. 긍정요정의 힘을 믿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