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술 개발과 창업의 대명사인 미국 실리콘밸리는 스탠퍼드대와 버클리대의 연구개발 성과를 기반으로 우수인재, 펀드 등 창업시스템의 성공 모델과 생태계를 갖추고 있다. 이곳에 자리 잡은 회사들의 GNP는 우리나라 전체의 GNP보다 많다.
실리콘밸리를 롤모델로 하여 세워진 대덕연구단지. 하지만 여기서 창출된 기술이 중소기업이나 창업 기업에 의해 활용될 수 있는 생태계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많은 재정과 최고급 인력들을 스카우트하여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비즈니스 성공을 기약할 수 있는 롤 모델이나 검증된 시스템이 없다. 우리나라는 세계 특허 출원 5위 수준이지만 이를 비즈니스로 연결하는 효과적이고도 체계적인 연결 생태계는 없다.
비즈니스에서 신기술 개발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이나 상품 개발의 결과가 비즈니스로 연결되어 새로운 부를 창출하지 못한다면 신기술과 개발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신기술을 개발하는 데도 창의성과 협업이 필요하지만, 신기술을 새로운 비즈니스로 창출하는 데도 창의성과 협업은 필수적이다.
실리콘밸리와 대덕은 IT와 기술에 대한 최고의 창의성을 가진 인재들이 몰려 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비즈니스로 연결시키는 능력에서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 기술 개발은 엔지니어의 몫이지만, 그 기술을 비즈니스로 연결시키는 것은 비즈니스 기획력과 전략 그리고 마케팅과 세일즈다. 실리콘밸리는 비즈니스 관련 세일즈, 마케팅, 기획, 전략과 지적재산을 다루는 고급 인재가 엔지니어들의 수보다 훨씬 많다. 하지만 대덕에는 1만 명의 기술자가 있음에도, 기술 사업화를 담당하는 글로벌 비즈니스 기획, 마케팅, 세일즈 전문가는 거의 없는 상태다.
기술은 그 자체만으로는 가치가 없다. 기술이 이윤을 만들어 낼 때 비로소 가치를 가진다. 기술이 돈을 만들고, 돈이 다시 투자되어 새로운 기술을 만드는 선순환 구조 생태계가 중요하다.
하나 더 있다.
열린 소통을 통한 도전, 그리고 다듬어지지 않은 초기 아이디어를 심화‧구체화시키는 토론과 협업이 바로 그것이다. 실리콘밸리의 기업이나 연구소에는 모든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소통하고 토론한다. 때로는 격한 논쟁을 벌이며 자기 아이디어의 당위성과 차별성을 주장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의 의견에 질문을 던지며 도전하고 새로운 관점과 다양한 의견들이 서로 강하게 충돌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더 나은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생성되고, 이런 것들이 창의적인 발명이나 결과물로 나타나 돈을 버는 비즈니스 협업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대덕에는 이런 문화가 없다. 상명하달식의 연구와 개발이 지배한다. 상사나 선임 연구원의 의견이나 아이디어에 도전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잘못하다간 고과에서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기업연구소나 정부출연연구소 직원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창의성과 협업 교육을 하는데, 그럴 때마다 느끼는 것은 그들에게 ‘서로 다름’에 도전을 느끼고 다양한 관점에 호기심을 갖는 진정한 토론과 ‘딥 다이브(deep dive)’의 협업 문화가 없다는 것이다.
여러 해 전 어느 정부출연연구소 직원들을 대상으로 회의와 토론을 효과적으로 이끄는 퍼실리테이션(facilitation) 교육을 진행했다. 약 30명이 교육에 참가했는데, 모두 외국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은 최고의 인재들이었다.
처음 이 교육을 의뢰받았을 때, 그들에게 왜 이런 교육이 필요할지에 대해 두 가지 의문이 들었다. 하나는 그들이 이미 토론과 소통에 익숙한 외국에서 학위를 받았으니 아마도 충분한 토론 스킬이 있을 거라는 선입견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들의 토론 방법과 스킬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나는 퍼실리테이션 기본 스킬과 토론 방법에 대한 강의에 이어, 실습을 진행했다. 팀마다 리더와 서기를 정하고 주제에 대한 본격적인 토론을 하도록 했고, 그들이 토론하는 것을 관찰하면서 개선하거나 수정해야 할 피드백을 주었다.
그런데 박사급 인재들의 토론 모습을 보면서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먼저 리더를 정하는 과정에서 아무도 나서지 않았고, 결국은 팀에서 연장자로 보이는 사람이 비교적 젊은 부하직원을 리더로 ‘지목’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선임의 모습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선임이 강제로 떠맡긴 리더 역할을 아무런 이의 없이 (물론 그의 얼굴은 불만에 차 있었지만) 그대로 수용하는 직원의 태도도 놀라웠다. 리더가 정해지고 토론이 시작되었건만, 어느 누구도 자발적으로 의견을 내지 않고,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특히 연장자들이 그랬다. 마치 자신은 지켜볼 테니 너희들이 알아서 의견을 내고 진행하라는 듯이. 시간이 좀 지나고 이윽고 한 두 사람이 의견을 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도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고 구체적으로 말하지 못했고, 추상적으로 대충대충 설명했다. 게다가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고 그에 대한 질문이나 반론을 제기하는 일도 없었다. 그래서 의견이나 아이디어는 더 구체적이고 심도 있게 다듬어지지 못했다.
한편 발표된 의견은 플립 차트에 기록해야 할 터인데, 서기 역할을 맡은 사람은 무슨 내용을 어떻게 기록해야 할지 난감해하며 그대로 서있기만 했다. 이런 상황을 확인한 필자는 그들에게 무엇이 문제이며, 그런 상황에서 열린 토론과 다양한 관점을 받아들이고 활용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피드백을 주었다.
사실 필자가 주는 피드백은 그들이 외국에서 공부하고 토론하고 논문 연구를 할 때 이미 경험하고 체득한 것이었을 텐데, 그들로부터 효과적인 토론과 협업 스킬은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교육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나는 곰곰 생각했다.
“외국에서 학위까지 따온 그들의 이러한 태도는 도대체 뭐지?”
이것에 대한 필자의 답변과 솔루션을 여기에 공유한다.
어느 미국 기자가 인터뷰 중 아인슈타인에게 갑자기 물었다.
"음속(소리가 퍼져나가는 속도)의 값은 얼마입니까?"
기자는 즉각적 대답 아니면 당황하는 아인슈타인의 표정을 기대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무표정으로 담담히 말했다.
"저는 책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정보를 머릿속에 담아두지 않습니다."
전혀 생각지 못한 반응에 도리어 기자가 당황하자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마무리했다. "교육의 목적은 정보 습득이 아닙니다. 사고하는 법을 훈련하는 것… 그것이 교육의 본질입니다."
예컨대 페이스북 직원들은 서로의 의견과 아이디어에 대해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고정관념이나 기존 생각에 도전하고, 전혀 다른 각도로 바라보는 비판적 사고를 하며, 다양한 관점으로 접근하는 입체적 사고를 한다. 이렇게 질문하고 토론하여 다양한 가능성을 개발하고, 의견에 대한 가설을 만들고 검증하며, ‘상자 밖 사고’와 역발상을 통해 기발한 아이디어를 만든다. 특히, 이들은 토론하고 협업하면서 모두가 함께 볼 수 있도록 벽면에 기록하여 공유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는 협업이 이루어지는 것.
이에 반해서 국내 기업들은 주로 자기주장만 하고,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에는 귀를 닫거나 상대의 의견을 강하게 비난하고 공격한다. 또한 모두가 공유하는 기록이 아니라, 각자 혼자만의 메모나 노트 필기를 한다. 마무리 단계에서는 해야 할 일들을 참여자들에게 분배하고 각자 나누어서 분업을 한다.
"1% 위대한 기업은 어떻게 일하는가"[심재우 지음, 베가북스] 본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