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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정 Mar 29. 2024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티모시 샬라메를 세계적인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은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


전체 지면의 70~80% 정도가 푸른 하늘로 채워진 포스터, 영화의 배경이 되는 아름다운 소도시 크레마, 영어와 이탈리아어, 불어가 자연스럽게 뒤엉킨 아름다운 언어의 향연, 파란색과 대비되는 샛노란 색의 감각적인 글씨체로 새겨진 제목. 그야말로 시청 욕구를 마구 부채질하는 매력 넘치는 영화였지만 넷플릭스에 접속해 단 한 번만 클릭하면 언제든 볼 수 있는 영화를 몇 년 동안 묵혀둔 것은 뜻밖의 진입장벽 때문이었다.


영화 포스터가 대놓고 알려주는 퀴어 영화라는 사실은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하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폭력이나 악행과도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말간 얼굴을 아미 해머의 기이한 행적은 클릭 자체를 주저하게 만드는 심각한 진입장벽이었다. 출연 배우나 영화를 둘러싼 웬만한 논란쯤이야 얼마든지 귓등으로 흘려보낼 있다. 개인의 일탈이 많은 사람의 피땀으로 완성된 작품을 피하거나 깎아내릴 이유가 돼서는 안 된다. 하지만, 악의 무리로부터 세상을 구원해 줄 동화 속 왕자님의 얼굴을 한 아미 해머가 오랫동안 단순 폭력을 넘어선 식인 성향을 보여왔다는 충격적인 소식은 영화를 보고 싶다는 열망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렇게 나의 관심사에서 멀어져 갔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클릭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유수의 감독들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할리우드 최고의 배우 티모시 샬라메였다. 똑같은 얼굴이지만 '돈 룩 업'과 '작은 아씨들'에서는 그저 그런 할리우드 배우처럼 보였던 티모시 샬라메가 '웡카'와 '듄 2'에서는 온몸으로 존재감을 뿜어내며 영화의 개연성을 증명하는 인물이 됐다.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이 찾은 극장에서 영화가 시작된 지 몇 분 만에 '웡카'가 개인적으로 선호하지 않는 장르인 뮤지컬 영화라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티모시 샬라메가 연기하는 웡카는 나의 호불호 따위는 가볍게 뛰어넘는 마성의 매력을 뿜어냈다. 어디 그뿐인가! '듄 1'의 내용을 전혀 알지 못한 채 러닝 타임이 거의 3시간에 가까운  '듄 2'를 관람했지만 그 어떤 혼란도 없이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티모시 샬라메의 존재 자체가 영화의 주제이자 개연성이었기 때문이다. 한없이 순수한 소년의 눈빛과 그 어떤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세상을 구원하는 강인한 메시아의 표정이 공존하는 그의 얼굴. 여리면서도 그 누구보다 강한 티모시 샬라메의 폴 아트레이드.


출처: 네이버 영화


보고 싶은 영화 목록에 올려뒀다 지워버린 영화를 다시 보게 이유도 티모시 샬라메였지만 '콜 바이 유어 네임'이 지금 같은 찬사를 받게 된 이유도 티모시 샬라메였음이 틀림없다. 이탈리아 시골 마을에서 가족과 함께 여름을 보내는 엘리오(티모시 샬라메). 엘리오의 아버지를 도와서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그곳에서 함께 머물게 된 올리버(아미 해머). 첫인사를 나누며 손을 맞잡은 두 사람의 눈빛은 이미 예사롭지 않다. 청소년 특유의 거칠 것 없는 호기심을 드러내며 웃으며 손을 내미는 엘리오와 첫눈에 반한 듯 벌써부터 애틋한 눈길을 보내는 올리버.


출처: 네이버 영화

밀라노에서 기차로 한 시간 반쯤 떨어진 크레마라는 아름다운 소도시를 배경으로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동네 식당을 찾고, 수영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달리고, 괜히 애꿎은 동네 여자들만 들었다 놓았다 하는 밀당을 벌이며 두 남자는 서로를 탐색하고, 갈망하고, 탐닉한다. 두 남자의 감정이 호기심에서 갈망으로, 갈망에서 충만한 행복으로, 행복에서 절망으로, 절망에서 그리움으로 변해가는 동안 아미 해머의 눈빛은 시종일관 애틋하기만 하다. 그저 사랑하는 마음 외에 그 어떤 미세한 감정도 담아내지 못하는 아미 해머의 일관성 있는 눈빛을 변화무쌍한 표정과 눈빛으로 감싸 안은 것 역시 티모시 샬라메였다.


아버지를 돕기 위해 찾아온 남자를 향한 호기심, 그에게 끌리는 마음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탓에 빠져든 혼란, 다른 여자와 춤을 추는 그를 바라보며 느낀 질투의 감정, 사랑의 감정을 확인한 이후의 고뇌, 기차역에 혼자 남겨진 순간의 공허함, 결혼 소식을 알리는 그의 전화에 다시 한번 절감한 서글픈 이별에서 비롯된 고뇌. 이 모든 감정을 반짝이는 두 눈에 온전히 담아낸 이가 바로 티모시 샬라메였다. 아미 해머가 걷어찬 밥상에서 떨어져 내린 밥과 국을 티모시 샬라메가 다시 주워 담아 밥상에 올려놓은 다음 생선과 전도 정성껏 굽고 갖은 반찬까지 챙겨 구첩반상을 차려 내 눈앞에 가져다 놓은 모양새랄까.


영화의 매력에 빠져 시작한 글이 어쩌다 보니 티모시 샬라메를 향한 찬가가 되어버렸지만, 아미 해머에게도 다소 무미건조했던 연기를 만회할 한 방의 대사가 있었다.


Call me by your name. Then, I'll call you by mine.


상대방의 마음을 어떻게 확신하게 된 건지 다소 의문이 들만큼 모호한 말들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향한 사랑을 확인한 두 사람. 그들이 주고받은 가장 직설적인 사랑의 대화가 바로 'Call me by your name. Then, I'll call you by mine(네 이름으로 날 불러줘. 그러면, 내 이름으로 널 부를게.)'이었다.


두 사람이 마음껏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장면(출처: 네이버 영화)


망설이고 주저하고 경계한 끝에 서로를 향한 마음을 확인한 두 사람은 왜 상대를 자신의 이름으로 부르며 한없이 기뻐했을까? 인적 없는 산길을 신이 나서 뛰어오르며 "엘리오!", "올리버!"라고 상대를 자신의 이름으로 하염없이 불러대던 두 사람에게 바꿔 부른 이름은 "네가 곧 나고, 내가 곧 너야"라는 가장 은밀한 사랑의 속삭임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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