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흩어지고 말 삶을 꿰매어 이어붙이는 것
상처 입은 채 버려진 타인을 돕는 사마리아인을 묘사한 고흐의 작품. 프랑스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가 1849년에 공개한 동명의 그림을 모사한 작품이다. 자신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동생 테오를 사마리아인에 비유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내 삶은 잔뜩 쭈그러들어 있었다. 산부인과 의사들이 안정기라고 부르는 12주 차에 첫 아이를 유산한 후 내 몸과 마음은 산산이 조각나 버렸다. 혼란스러운 일상과 위태로운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럭저럭 몸을 수습하자 마음이 덜컹거렸다. 자꾸만 삐걱거리는 마음을 고치기 위해 남편과 나는 극약처방으로 설악산 등반을 택했다. 등산은커녕 스트레칭조차 안 하고 널브러져 살았던 세월이 몇 달이었다. 하지만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해내고 나면 한없이 침잠하는 내 마음을 건져 올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새벽 공기가 내려앉은 영동 고속도로는 한적했다. 자동차는 쭉 뻗은 고속도로를 거칠 것 없이 질주했다.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어딘가 다른 것 같기도 한 풍경들이 빠른 속도로 휙휙 스쳐 지나갔다. “눈 좀 붙여.” 남편이 걱정스레 말했다. 밤을 새우다시피 한 내가 과연 대청봉까지 오를 수 있을지 걱정하는 눈치였다. 요리도 못하면서 괜히 설레발치며 쿠키를 굽겠다고 밤을 새운 건 어리석은 짓이었다. 하지만 물컹하게 늘어진 반죽이 뜨거운 오븐에 들어가 버터 향이 감도는 단단한 쿠키가 되는 모습이 왠지 위로가 됐다. 김 서린 오븐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시련을 견디고 쿠키가 된 반죽처럼 나도 고난을 견뎌내면 제법 단단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생겼다.
산밑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 흙먼지가 일었다. 호기롭게 차에서 내렸지만 주차장을 벗어나기도 전에 피곤이 밀려왔다. 땅 밑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쑥 올라와 등산화를 끌어당기는 기분이었다.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신발 무게가 1킬로그램씩 늘어나는 것만 같았다. 충분히 자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남편의 걱정을 쓸데없는 잔소리쯤으로 치부했던 게 후회됐다. 이미 일은 벌어졌고 갈 수 있는 만큼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었다. 주차장을 벗어나 산길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계단이 나타났다. 그야말로 계단 지옥이었다. 간신히 계단을 다 올라갔다 싶으면 또 다른 계단이 다시 시작됐다. 출발한 지 10분도 안 돼 헉헉거리는 내게 남편은 손을 내밀며 말했다. “가위바위보!” 산 중턱까지라도 나를 끌고 가기 위한 필살기였다.
수백 번쯤 가위바위보를 하며 이겼다 지기를 반복하니 앉을만한 자리가 나타났다. 등산로 바깥쪽에 있는 널따란 바위에 앉아 목을 축이고는 내려갈 채비를 했다. 정상을 밟겠다는 기대는 접은 지 오래였다. 슬슬 일어서려는데 중년 부부가 옆에 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떠나려다 가방 속에 들어 있던 쿠키를 건넸다. “어차피 저희는 이제 내려갈 거예요. 힘들어서 더는 못 올라갈 거 같아요. 올라가는 길에 드세요.” 고맙다며 쿠키를 덥석 받아든 부부는 눈짓을 주고받더니 “정상까지 한 시간밖에 안 걸려요”라고 입을 모았다. 힘든 계단은 다 끝났고 이제부터 등산로도 좋을 거라며 중년 부부는 힘껏 우리를 격려했다.
길에서 만난 낯선 부부의 진심 어린 거짓말이 나를 붙들었다. 뻔한 거짓말인 걸 모르지는 않았다. 산에서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선량한 얼굴로 진심 어린 거짓말을 한다. 정상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고. 그래도 그 거짓말을 믿어 보고 싶었다. 그들의 거짓말을 철석같이 믿는 척하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까지 가보고 싶었다. 그다음에 어떤 고난이 따르든 일단 산꼭대기에서 내 마음을 어지럽히는 찌꺼기들을 모두 쏟아내야 속이 시원해질 것만 같았다.
한 시간은 두 시간이 됐고, 결국 세 시간이 가까워져서야 정상이 눈에 들어왔다. 대청봉이라는 빨간 글씨가 적힌 표지석 옆에 서서 말없이 주위를 둘러봤다. 저 멀리 보이는 산줄기들은 강원도를 지키는 수호신처럼 사방으로 뻗어 있었고 한없이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은 너른 품으로 산맥을 감싸 안고 있었다. 그야말로 감개무량했다. 웅장한 자연의 품에 나를 내던지니 그동안 나를 괴롭혔던 불편한 마음들이 한없이 가벼워졌다. 해발 1,708미터 상공을 떠도는 공기가 폐부를 깊숙이 파고들었다. 고도가 높아진 만큼 산소는 줄어들었을 텐데, 그곳의 공기는 오히려 강렬했다. 내 마음을 부유하던 찌꺼기들이 날숨에 실려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아무리 들이쉬어도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한 것처럼 답답했던 마음이 나른하게 풀어졌다.
“이제 내려가야 해.” 분위기에 잔뜩 취해 자꾸만 실없는 소리를 늘어놓는 나를 남편이 재촉했다. 산에서는 해가 빨리 지니 어두워지기 전에 주차장까지 내려가려면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언제나 현실 앞에서 슬그머니 뒤로 쫓겨나는 낭만과 아쉽게 작별 인사를 하고 하산길에 들어섰다. 산을 오를 때는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고 의지를 불태우니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내려가는 길은 좀 달랐다. 그저 다리가 아프기만 한 게 아니라 정신없이 후들거려 한 칸 한 칸 계단을 제대로 딛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여느 때였다면 감사해하기는커녕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지나치고 말았을 등산로 안전선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두꺼운 안전선을 생명줄처럼 붙들고 한참을 내려가니 길이 제법 평평해졌다. 다리가 풀려 흐느적거리는 나를 간간이 등에 업고 산길을 내려간 남편도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
잠깐 여유를 부리기로 했다. 20여 분만 가면 주차장이 나올 거리였지만 마지막으로 설악의 정취에 흠뻑 젖어 들고 싶었다. 기분 좋게 다리 아래로 흘러가는 물줄기를 바라보던 남편이 짧게 비명을 질렀다. 땀방울에 미끄러진 안경이 다리 밑으로 떨어져 내린 것이었다. 진퇴양난이었다. 나는 몇 미터 아래로 떨어진 안경을 볼 수 있었지만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아 바윗길을 내려갈 수 없었다. 반대로, 남편은 그 정도의 기력은 있었지만 안경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사람이었다. 서로 내려가겠다며 실랑이를 벌이는데 구원의 손길이 찾아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몰골이 말이 아닌 두 남녀가 하염없이 다리 아래를 내려다보는 모습을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설명을 들은 남자는 망설이지 않고 다리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커다란 바위틈에 떨어진 안경을 잽싸게 낚아챈 남자는 성큼성큼 다시 올라왔다. 수도 없이 감사를 전하는 우리 부부를 남겨 두고 남자는 뛰다시피 등산로를 올랐다. 해가 질 무렵 산으로 들어가는 남자의 정체가 궁금했지만 알 길은 없었다.
힘들 걸 뻔히 알면서, 어쩌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굳이 설악산 등반을 계획했던 건 불가능한 목표를 넘어서야만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무모했던 계획을 현실로 만드는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우리의 무모함을 가능케 한 것은, 그날의 우리를 절망의 나락에서 구원한 것은 아무래도 낯선 사람들의 다정한 친절이었던 것 같다. 중년 부부의 진심 가득한 거짓말과 낯선 남자의 친절한 관심이 아니었다면 우리의 설악산 등반은 또 한 번의 실패로 새겨졌을 거다. 실패를 딛고 일어서기 위한 시도가 또 한 번의 실패가 돼 우리를 더욱더 세게 옭아매는 마음의 짐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를 구원한 낯선 이들의 친절을 기억하며, 매일 친절한 타인으로 살아갈 삶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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