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들, 그리고 우울한 왈츠
긴 복도, 잿빛 카펫, 밝은색 패널, 벽, 구릿빛 꺾쇠, 판화, 나무 고리, 가죽 걸개, 노란색에 가까운 마루, 빛바랜 양탄자.
겨우 열 줄이 인쇄된 첫 페이지에 열 개의 사물이 등장한다. 각각의 사물에는 지나치게 친절한 설명이 따라붙는다. 단순히 ‘판화’라고 쓰는 대신, ‘엡섬의 우승마 선더버드, 외륜선 빌드몽트로호와 스티븐슨의 증기기관차를 찍어낸 판화 세 점’이라고, 치밀하고 빈틈없이 묘사하는 식이다.
<사물들(les choses)>의 작가 조르주 페렉은 어떤 공간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 집요하게 나열하면서도 그곳에 누가 살고 있는지 좀처럼 알려주지 않는다. 등장인물은 그저 ‘그들’이라는 인칭대명사로 존재할 뿐이다. 사물을 배경으로 인물을 부각하는 일반적인 서사와는 정반대의 방식이다. 이 소설 속에서 사물은 전면에 배치되고, 인간은 그 뒤로 밀려난다. 진하고 선명한 빛깔의 사물들이 공간을 점령한 채 색깔 없는 회색 인간을 무릎 꿇린 듯한 모양새다.
작가는 온갖 사물에 관한 이야기를 한참 늘어놓은 뒤에야, 뒤늦게 떠오른 듯 그곳에 사는 사람을 소개한다. 파리 어느 골목에 있는 방 두 개짜리 아파트. 그 공간을 채운 수많은 물건 틈바구니에서, 더 많은 물건을 욕망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이십 대 커플 제롬과 실비다.
젊은 커플의 삶은 나쁘지 않았다. 적당히 일하고, 즐겁게 놀며, 때로는 세련된 취향도 공유했다. 아무것도 물려받은 것 없이 스스로 일궈낸 삶이라는 걸 생각하면 상당히 근사한 삶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맨 처음 물건을 욕망하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순진했다. 안락의자와 카펫 정도면 충분히 행복할 거라고 믿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욕망은 언제나 발 빠르게 한 걸음 멀어졌다. 물건이 늘어났고, 공간은 채워졌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두 사람의 존재는 오히려 점점 희미해졌다.
더 많은 물건을 얻기 위해 서두르는 그들의 발걸음은 경쾌했지만 아무리 애써도 그들의 욕망은 채워지지 않았다. 제롬과 실비의 삶은 어쩐지 아슬아슬하고 불안한 왈츠를 닮았다. 왈츠 특유의 세 박자 리듬과 구슬픈 음률이 더해진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번>만큼 두 사람에게 잘 어울리는 노래는 없을 것 같다. 계속 발을 구르기만 하면 앞으로 나아갈 거라는 확신을 갖고 쿵 짝짝 쿵 짝짝 온 힘을 다해 춤을 추지만, 그들은 결국 같은 자리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채 욕망에 삶을 빼앗겼다.
이 곡이 탄생한 배경을 떠올리면 끝없이 허무한 왈츠를 추는 제롬과 실비의 모습을 좀 더 선명하게 그려볼 수 있다. 이 곡을 작곡할 당시, 쇼스타코비치는 스탈린 체제의 엄격한 감시 아래 국가와 인민을 위한 노래를 만들어야만 했다.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보다 체제가 요구하는 노래를 만들어야만 했던 쇼스타코비치는 경쾌한 왈츠의 형식에 단조의 선율을 얹어 암울한 마음을 은밀하게 표현했다.
쓸쓸하게 마무리되는 <왈츠 2번>처럼, 제롬과 실비의 욕망도 오랫동안 꿈꾸었던 영국식 대저택 앞에서 허무하게 흩어져 내렸다. 60년 전에 쓰인 책이지만, 한 쌍의 젊은 남녀가 보여준 어리석음에서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한층 더 휘황찬란한 풍요만 꿈꾸는 현대인에게 이 이야기는 어쩐지 낯설지 않다.
우리는 여전히 더 많은 것을 원한다. 쏟아지는 물건 앞에서 속수무책이 되어 지갑을 열었다가, 또 금세 후회에 빠져든다. 우리도 이 오래된 이야기 속의 등장인물들처럼 끝내 허무하게 끝나버릴 우울한 왈츠를 끝없이 추며 살아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 사물들 #조르주페렉 #쇼스타코비치 #왈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