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ck, Violin Sonata A Major, 4th
문명이 우리에게 제공한 혜택은 셀 수 없고, 과학의 발명과 발견이 가져온 생산력으로 얻게 된 온갖 풍요로움은 비할 데 없다. 더 행복하고, 더 자유롭고, 더 완벽하고자 인간이 만든 경이로운 창작품들은 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어느 때보다 수정처럼 맑게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새로운 삶이라는 샘이 고통스럽고 비루한 노동에 시달리며 이를 좇는 사람들의 목마른 입술에는 여전히 아득히 멀다.
- 맬컴 로리
조르주 페렉이 쓴 <사물들> 첫 페이지에 적혀 있는 글이다. 가까이 가면 다시 멀어지는 것들. 그래서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무엇인가를 더 원하며 살아가게 된다. 이 책은 펼치자마자 달콤한 꿀이 넘치는 단지 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반짝였다.
1960년대의 시간을 따라가다 보았다. 그 사물들과 그 거리 위를 걷는ㅡ 만약 내가 그곳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는 1863년 에세이 <근대적 삶의 화가>에서 플라뇌르를 단순한 산책자가 아니라, 목적 없이 걷는 시간을 통해 도시의 분위기와 사람, 사물의 표정을 읽어내는 사람이라 했다.
발터 벤야민은 19세기 파리의 유리 지붕 아래 이어진 상점 거리를 걷는 사람들이 물건을 사기 위해서라기보다, 먼저 구경하고 머무르는 공간을 설명한다. 그 아케이드를 배회하며, 근대 자본주의와 익명적인 군중 문화를 관찰하고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도시 산책자'를 의미하는 것이 플라뇌르라고.
그리고 약 100년 뒤,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1965)은 그 시선을 다른 방향에서 이어간다. 이 책은 사물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도시가 만들어낸 욕망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그 물건이 속한 삶이라고 나는 읽었다.
반짝이는 사물들은 단지 대상이 아니라 어떤 세계의 입구처럼 놓여 있고, 그 앞에서 사람들은 이미 가진 것보다 아직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열망을 품는다.
잠시 내가 그 시대의 거리에 서 있었다면 어땠을지 떠올려봤다. 끝까지 멈추지 않고 흘러가는 그 음악 속에서, 나는 아마도 플라뇌르처럼 걷고 있었을 것이다. 무엇을 가지기 위해서였을까. 가진 삶을 꿈꿨을까.
<사물들>의 실비와 제롬 그리고 다른 등장인물과 약 100년의 시간을 사이에 두고도 흐름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도시를 걷고, 사물을 바라보며, 그 너머에 있는 삶을 상상한다.
이 소설은 놀랍게도 지금 시대와도 잘 맞는다.
왜냐하면 지금의 세계는 SNS와 브랜드, 그리고 라이프스타일까지 소비하는 방식이 훨씬 더 강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이 만들어내는 분위기와 삶을 함께 선택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많은 독자들이 말한다. 이 소설이 1960년대 이야기라는 것이 잘 믿기지 않는다고. 시간은 흘렀지만, 욕망의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절대 헤어지지 않았던 젊은 연인 제롬과 실비는 사회심리 조사원이었다. 여러 주제를 두고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일을 했다. 그들은 상대의 주저함과 애매한 침묵, 은근한 암시 속에서 탐색해야 할 길을 읽어낼 줄 알게 되었다. 그들이 하는 소비자 동기조사는 프랑스에서 시작되었다. 이것은 사람들이 무엇을 사는지를 묻는 조사가 아니라, 왜 그것을 사고 싶어 하는지를 알아보는 조사였다.
왜 이 바퀴 달린 진공청소기는 잘 안 팔리는 가?
중산층은 치커리를 어떻게 생각하는 가?
사람들은 가공 퓌레를 좋아하는가, 그렇다면 왜? 소화가 잘 돼서? 감칠맛이 있어서? 만들기가 간편해서?
장난감 자동차를 정말 비싸다고 생각하는 가?
부모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일까?
프랑스 여성들의 투표 성향은?
튜브형 치즈를 좋아하는가?
대중교통수단이 만족스러운가, 불만스러운가?
플레인 요구르트를 고를 때 제일 먼저 신경 쓰는 것은?
색깔, 내용물, 맛, 천연 향 중에서 고른다면?
독서를 많이 하십니까, 조금 또는 전혀 하지 않으십니까?
외식을 하십니까?
부인, 흑인에게 세를 주실 의향이 있으신지요?
사람들은 솔직히 은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젊은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가?
회사 중역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가?
나이 서른의 여성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가?
어떤 휴가 계획을 갖고 계십니까?
휴가를 어디서 보내실 겁니까?
냉동식품을 좋아하십니까?
이렇게 생긴 라이터는 얼마면 좋겠습니까?
매트리스를 살 때 따지는 것은?
파스타를 좋아하는 남자는 어떤 유형인가요?
지금 사용하는 세탁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만족하시는지요?
거품이 너무 일지는 않습니까? 세탁이 잘됩니까? 옷감이 상하지는 않습니까?
건조 기능을 갖추었습니까? 건조 기능이 있는 세탁기를 선호하십니까?
광산 갱도의 안전이 안심할 만합니까, 아니면 충분치 않다고 생각하십니까?
소설 3장에 나오는 인터뷰 질문지 부분이다. <사물들>에서 제롬과 실비가 하는 조사는 정부가 진행하는 통계 조사라기보다 시장조사와 여론조사가 섞인 형태에 가깝다. 두 사람의 일은 기본적으로 소비자 조사다. 진공청소기, 요구르트, 라이터, 세탁기, 냉동식품, 매트리스처럼 일상적인 상품들에 대해 사람들의 반응을 묻는다.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왜 어떤 제품은 잘 팔리고 어떤 제품은 외면받는지, 가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알아내기 위한 물음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질문은 상품에만 머물지 않는다. 프랑스 여성들의 투표 성향, 인종에 대한 태도, 은퇴에 대한 생각, 광산 안전 같은 사회적 문제들도 함께 등장한다. 그래서 이들의 조사는 단순한 시장조사가 아니라 사회 인식을 살피는 여론조사 성격도 동시에 지닌다. 이러한 설정은 1960년대 프랑스의 시대적 분위기와도 연결된다.
당시에는 광고 산업과 소비 연구, 여론조사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사람들의 취향과 생각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제롬과 실비는 바로 그 새로운 시대의 직업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소설 속 설문들은 결국 한 가지 사실을 드러낸다. 사람들의 삶 전체가 조사 대상이 되는 소비사회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욕망은 끝이 없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욕망은 충족되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 커진다. 사람은 절대적인 풍요보다 타인과의 비교로 만족을 판단한다. 비교가 행복을 결정하게 되었다. 문제는 비교 대상이 계속 레벨업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풍요가 증가해도 심리적 만족은 크게 늘지 않는다.
나는 다시 그 거리로 돌아간다. 유리창에 비친 빛과 사물들 사이를 걷는다. 그 거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걷는다. 나는 끝내 아무것도 가지지 못할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그 사이에 서 있다. 그 거리와 나 사이에서. 그냥 그 시대를 걷는 사람 중 하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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