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3] 작은 땅의 야수들

무엇이 우리를 살게 하는가

by 김현정

<작은 땅의 야수들>. 왠지 끌리는 마음에 무작정 사둔 책이었다. 톨스토이 문학상을 받은 책이라는 떠들썩한 홍보 문구에 홀린 건 아니었다. 사실 유명한 상을 받았다는 타이틀에 심각할 정도로 넋을 빼앗기는 편은 아니다. 상을 받을 만큼 훌륭한 작품이라고 해서 내 취향에 딱 맞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보다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가 영어로 쓴 한국 역사 소설이 다시 한국어로 옮겨졌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몇 해 전, 또 다른 한국계 미국인 작가 이민진이 쓴 <파친코>를 흥미롭게 읽은 것도 이 책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되었다.


일제강점기였던 1917년, 조선의 어느 깊은 산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일본군 소좌 하야시는 부하들을 이끌고 재미 삼아 사냥에 나선다. 일본어를 할 줄 아는 떠돌이 비단 장수를 길잡이 삼아 겨울 산을 오르던 일행은 겨울 산에서 길을 잃고 만다. 어쩔 수 없이 산에서 하룻밤을 보낼 채비를 하던 중 우연히 조선인 사냥꾼 남경수를 만난다. 고요히 눈밭에 누워 숨이 끊어질 순간을 기다리던 그는 일본군 대위 야마다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다. 남경수는 하야시 일행을 산 아래로 안내하던 중 그들이 쏜 총에 맞고는 화가 나 덤벼드는 호랑이를 막아선다. 당장이라도 물어뜯을 기세였던 호랑이도 “안 돼!”라는 그의 단호한 말에 가만히 돌아선다.


사냥꾼 덕에 목숨도 구하고 무사히 산에서 내려온 하야시는 길잡이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한 비단 장수를 죽여 버린다. 살려줄 것처럼 “썩 꺼져라. 내가 너라면 지금 아주 빨리 뛰어갈 거야.”라고 일러놓고는 겁에 질려 뛰어가는 그의 등을 총으로 갈겨 버린다. 양팔을 쫙 펼친 채 쓰러진 그의 등에서 새어 나온 피는 비단이 들어 있는 봇짐을 벌겋게 적신다. 목숨을 구해 준 공도 없이 사냥꾼도 처리하려 들지만 야마다 대위의 만류에 그의 목숨은 살려 준다.


프롤로그는 이렇게 끝이 난다.


뒤이어 전개되는 내용은 프롤로그와 이어지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1918년부터 1964년까지, 46년의 세월을 아우르는 진짜 이야기의 주인공은 기생 옥희와 남경수의 아들 정호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기생집에 팔려간 옥희,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누이의 혼삿길을 막지 않으려고 고향을 떠난 정호. 이들이 다양한 주변 인물들과 얽히고설켜 견뎌낸 격동의 세월에 관한 이야기가 550여 쪽에 걸쳐 펼쳐진다. 북녘의 겨울 산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는 한반도를 관통해 평양과 경성을 훑고 내려간 다음 바다 건너 제주에서 막을 내린다.


글의 프롤로그는 대개 이야기나 극의 출발점이 된다. 왜 그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지,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슬쩍 맛을 보여주는 느낌이랄까. 물론 이 책의 프롤로그에도 뒤이어 나올 이야기를 암시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나, 책을 끝까지 읽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저 긴 이야기의 출발점 같았던 그 사건은 단순한 일화가 아니라 그 시대를 통째 아우르는 함축적인 서사였다.


사냥꾼은 늘 아들을 붙잡고 호랑이는 정말로 어쩔 수 없을 때만 사냥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재미나 돈을 위해 호랑이를 사냥하는 일본인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태도였다. 작가의 설명처럼, 일본이 침략해 마구잡이로 망가뜨린 이 땅이 곧 호랑이였던 셈이다.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조선인들은 호랑이를 귀하고 영험한 존재로 받아들였지만, 멀리서 온 침략자의 눈에 호랑이는 그저 기분에 따라 아무렇게나 망가뜨려도 되는 별것 아닌 미물일 뿐이었다. 산길에서 일본군에게 이유도 없이 총을 맞은 호랑이처럼, 3.1 운동을 하던 조선인들도 그들의 총에 목숨을 잃었다.


작가 소개란을 보면 작가의 외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했다는 설명이 있다. 어머니한테서 그 이야기를 줄곧 듣고 자라서 그런지, 작가는 한국에서 평생을 산 사람들도 쉽게 놓치는 역사적인 사실들을 이야기 속에 잘 녹여냈다. <작은 땅의 야수들>에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 웃음을 팔아 번 돈을 기꺼이 내놓는 기생들이 등장한다. 주인공 옥희를 가장 먼저 받아들인 평양 기생 월향은 마지막 남은 은가락지까지 독립운동을 위해 내놓았고, 평양을 떠난 옥희를 받아준 경성 기생 단이는 3.1 운동에 자금을 대고 만세 시위를 하다가 붙잡혀 옥고도 겪었다.


기생은 독립운동에 군자금을 대는 사람을 상상했을 때 쉽게 떠올리기 힘든 얼굴이다. 그런 탓에 오롯이 작가의 상상력에 기인한 이야기라고 짐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독립운동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김향화, 어재하, 오송월, 강국향 같은 여러 기생의 이름이 등장한다. 아래 기사에 소개된 것처럼 일제의 식민 지배에 항거하기 위해 기생들은 수원, 진주 등 전국 곳곳에서 시위를 벌였고, 거사에 쓰일 자금을 지원했다.


만세 운동에 참여한 수원 기생(출처: 경인일보)

https://www.kyeongin.com/article/1369661

https://www.imaeil.com/page/view/2021111811433942505


많은 인물이 살아낸 수십 년의 세월이 단 한 권의 책에 압축돼 있다 보니 각 인물의 서사가 충분히 설명되지 못한 점이 다소 아쉽긴 했다. 그래도 유대인들이 겪어온 고난의 서사는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데 우리의 역사는 세계 무대에서 쉽게 잊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던 마음을 풀어주는 고마운 책이었다.


우리의 역사를 옹골차게 담아낸 <작은 땅의 야수들>. 이 책이 남긴 숱한 생각의 갈래가 복잡하게 뒤엉켜 있던 무렵, 송소희의 <매화타령>을 듣게 됐다. 그녀는 곱게 수가 놓인 한복을 입고 구성진 목소리로 무대 위에서 사랑과 이별을 노래했다. 악단의 연주에 맞춰 두 팔을 부드럽게 너울대며 좌중을 사로잡는 그녀를 보며 주인공 옥희와 그녀의 절친한 친구 연화가 떠올랐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 모두 끝난 후 더는 서울살이를 견딜 수 없어 제주로 떠난 옥희. 기생이라는 이름을 지우고 경성의 스타가 되었다가, 돈 많은 늙은 남자의 첩이 돼 팔자를 고치는가 싶더니, 다시 아편쟁이로 전락했다가, 결국 언니가 있는 미국으로 떠난 연화. 그녀들이 가장 반짝이던 시절에 경성의 커다란 무대에 올라 공연하는 모습을 실제로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아름답게 빛나던 순간은 오래 가지 않았지만, 그들이 끝내 놓지 않았던 것은 삶 그 자체였던 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어떻게든 살아내는 삶. 어쩌면 이 소설은 독자들에게 집요하게 묻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무엇이 우리를 살게 하는 걸까요?” 벚꽃을 볼 때마다 자꾸 떠오르는 <매화타령>처럼 이 질문 또한 오랫동안 내 귓가를 맴돌 것 같다.


알아둬도 쓸모는 없지만, 그래도 재미는 있는 TMI.

흔히 ‘톨스토이 문학상’이라고 불리는 상의 정확한 이름은 ‘야스나야 폴랴나 문학상(Yasnaya Polyana Literary Award)’이다. ‘빛나는 공터’라는 뜻의 ‘야스나야 폴랴나’는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리나> 등을 쓴 레오 톨스토이의 생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현재 이곳은 톨스토이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그 이름을 따 문학상이 만들어졌다. 다만, ‘야스나야 폴랴나’라는 명칭이 다소 낯설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톨스토이 문학상’이라고 부른다.

Yasnaya Polyana: Estate of Leo Tolstoy (출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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