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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오 Jul 11. 2024

대입 수시 논술 독학을 위한 작은 팁

나는 사회 불평등 가속에 기여한다. 중산층 이상 계급의 자녀가 좋은 대학에 진학하도록 적극적으로 돕기 때문이다. 학생의 합격이 내 자존감이므로 최선을 다한다. 우리의 공리가 사회의 공리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 논술 독학을 위한 작은 팁이라도 남기고자 한다.



입시 논술은 현재 대입 전형 중 아마 가장 불평등한 제도일 것이다. 첨삭 때문에 사교육이 불가피하지만, 지방 대도시를 제외하면 제대로 된 사교육을 받을 데도 없다. 대구에도 수성구 중심으로 논술 학원이 밀집해 있어 다사나 칠곡 쪽 학생은 한 시간 이상 거리를 이동하기도 한다. 학원에 있을 때는 구미, 영천, 김천, 영덕, 거제 등 시외에서 온 학생도 있었고, 공부방을 운영하는 중에도 구미, 포항, 김해 학생도 겪었다. 어떤 수험생은 차라리 자는 게 나을지도 모를 한두 시간을 길에 버려가며 경쟁해야 했던 것이다.


시험 치러 서울에 오가는 것도 지방 학생들에게 불리했다. 사교육 영향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서울 학생들은 시험 전날 학원에서 수업 들을 때 지방 학생들은 기차를 타야 했다. 지방 학생들은 서울에 가서 숙소를 잡고 1박 2일간 이 학교, 저 학교 시험을 치렀다. 누군가에게는 만만찮은 비용이었고, 모두에게 확실한 시간 낭비였다. 시험 직후, 서울 학생들은 다음주에 있을 학교 시험을 준비하거나 준비를 위해 휴식을 취할 때, 지방 학생들은 또 기차를 타야 했다.


물리적 거리에서 오는 불평등은 별 수 없다고 하더라도 사교육을 받아야만 하는 시험 난이도는 대폭 하향되었다. 연세대는 2013년 수시부터 난이도에 인간미를 풍겼고, 폭주할 때는 연세대를 압도할 때도 있던 서강대는 평균적으로 시시해졌다. 이제는 학교마다 꼬박꼬박 해제와 예시 답을 제시하고 있어서 답안 작성 기준을 학생 스스로 확인할 수도 있었다. 답이 있는 걸 가르치는 걸 못해서 국어를 가르치지 못하고 논술에 매몰된 나로서는 난감했다. 나의 난감함은 수험생의 수월함이다.


‘대입 논술도 독학 가능한가?’라고 묻는다면, 이제는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 사교육의 쓸모는 국영수 강사들처럼 학습자의 효율성을 조금 높여줄 뿐이다. 혼자 시작하기 막막하다면 학원이든 과외든 한 달 정도만 수강하면 해야 할 것들을 선명하게 인지할 수 있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다. 초기에는 고인물들의 일상적 조언들이 신규에게 큰 도움이 된다. 그 이후에는 목표 대학 입학처 홈페이지에 공개된 자료를 활용하면 된다. 출제의도는 하나마나 한 말이니 생략하더라도, 해설과 예시 답안은 알뜰하게 분석하고 숙지해야 한다.


논술 기초반은 불필요하다. 논술 기초반이 필요하다면 수험생은 이미 탈락이다. 대입 논술 기초반은 학업 단계를 늘려 수강 기한을 늘리는 사교육의 판매 전략이다. 입시 논술은 ‘요약, 비교, 비판, 문제해결능력’을 측정함으로써 수학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다. 한국에서 정규 교육 과정을 이수한 5등급 이내 학생이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요약, 비교, 비판, 문제해결능력이 함양되어 있다. 이 인지 기능을 명명하고 특별한 설명을 덧붙이는 것은 기출 문제를 푸는 과정에 충분히 소화된다. 이미 함양된 기초를 연습하느니 기출 문제 하나라도 더 푸는 것이 낫다. 대입 수시 논술도 표준화 되어 양치기(양으로 쳐내기)를 닮아가는 것처럼 입시 논술도 양치기다.


논술을 처음 시작한다면, 어느 대학을 지원하든 중앙대와 한국외대 기출로 에피타이저 삼으면 ‘체험’하기 좋다. 이 대학들 기출은 논술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하다. 이럴 거면 ‘수능 문학/비문학 가산점 전형’을 만들지 굳이 논술 전형일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중앙대는 문학 중심으로 출제한 제시문만 길 뿐 답안은 기계적으로 작성하면 된다. 글이라기보다는 ‘답’을 쌓는 약간 긴 서술형이므로 논술 입문으로는 제격이다. 한국외대는 영어 제시문 제외하면 지나치게 쉽다. 중학교 3학년생에게 풀렸을 때도 답을 그럭저럭 맞췄다. 두 대학만 지원한다면, 정시에 몰입했다가 수능 이후 집중해도 충분하다. 수능 이후 열흘이 공부하기 모자라게 느껴진다면, 애초에 능력이 모자란 것이다.


이런 게 논술이구나 감이 잡히면 성균관대와 건국대 기출 문제로 본격적으로 ‘공부’한다. 요약-비교-비판-도표활용-문제해결 능력을 고루 익히기 좋고, 대입 논술의 전반적인 난이도를 반영하고 있다. 특히 학교 측에서 제시하는 자료도 학생 친화적이다. 예시 답안도 개성이 강하지 않아 평균적인 논술 답안스럽다. 반면 이화여대는 비현실적 분량을 제시한다. 그래서 수험생 입장에서는 좋은 자료다. 문제당 1,000자가 넘어가는 예시 답안들을 600자 안팎으로 요약하는 연습을 해보면, 논술 답안에서 써야 내용/표현, 버려야 할 내용/표현을 익힐 수 있을 것이다.


이 대학들은 글이라기보다는 ‘답’을 요구했다면, 답이라기보다는 ‘글’을 요구하는 대학도 있다. 한양대가 대표적이다. 제시문 정보를 문제 요구 사항에 맞게 조립하되 한 편의 글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한양대 측에서 제시하는 예시 답안들을 보면, 답이 조금씩 다른 경우도 있다. 답의 정확함보다는 주제가 구축되는 논리력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이다. 글을 쓸 줄 아는 학생이라면 이 대학도 수능 직후 바짝 연습하면 어떻게든 승부볼 수도 있겠지만, 글을 못 써도 1,200자는 애초에 긴 글이 아니라서 연습을 통해 극복 가능하다. 다만 조금 일찍, 쓰는 경험을 쌓아야 한다.


연세대는 논술의 꽃이’었’다. 다면사고를 측정하는 삼단비교와 문제 1-2번 간 정보가 톱니처럼 맞물리는 구조는 경이로웠다. 문제를 푸는 것은 설레면서도 부담스런 추리 놀이였다. 그러나 삼단비교를 포기하는 대신 영어 제시문과 수리 논술이 들어가면서 인문 논술이 평범해졌다. (그래서 나는 다면사고형 문제가 남은 편입논술을 좋아한다) 타대학보다 많은 연습이 필요하긴 하지만 예전 같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술에서 사교육 힘을 빌린다면, 강사가 학생 답안을 알고 있는 곳을 선택해야 한다. 논술은 티칭(teaching)이 아니라 코칭(coaching)이다. 논술 강사가 하는 일은 학생의 글이 아니라 생각을 다듬는 것이다. 강사는 학생 글에 나타난 생각의 길을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 첨삭은 정답이나 문법을 확인하는 것도 아니고, 표현을 예쁘게 바꿔주는 것도 아니다. 학생이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를 묻고, 어떻게 해야 정답에 닿을 수 있는지를 이끄는 것이다. 그래서 수업은 논제를 공통 소재로 한 대화를 닮는다. 정답이 공개된 시대, 논술 강사의 몫은 그 정도다. 여기에 나는 제시문을 활용해 학교 측에서 요구하는 답안보다 심층적인 영역을 제시하는 것까지 나아가 보는 것을 내 역할로 규정하고 노력 중이다.


요리사 이연복 님이 자신의 노하우를 공개하며 피디에게 한 말이 인상 깊었다. 피디는 이렇게 공개해도 되느냐고 물었고, 이연복 님은 공개해도 어차피 따라할 사람은 없다고 했다. 내가 이연복 님 수준의 달인은 아니지만, 지금 내게 가장 무서운 학생은 내가 제시한 독학 방식을 따를 학생이다. 그 학생이 지니고 있는 자기주도성은 논제를 이끌어 가는 데 가장 필요한 자질이어서 내 학생의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다.


작년, 개인 블로그에 내 해제를 보고 합격했다며 댓글을 달아준 학생이 있었다. 나는 홍보 차원에서 간략한 해제를 블로그에 공개했고, 내 해제는 독학하는 학생에는 유용할 거라고 생각했다. 내 생각을 실천한 학생에게 고마웠다. 그러나 그 해, 내게 돈 주고 배운 학생은 해당 학교에 떨어진 아이러니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아직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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