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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오 Jul 04. 2024

중고등 내신의 쓸모

“한양대 가려면 반에서 몇 등이나 해야 할까?”


중학생들에게 물었다. 대학 서열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서연고-서성한-중경외시-건동홍을 훑어주고 나면, 눈치 빠른 아이는 자신 없게 1등을 추측하지만 대부분은 3등 안팎이라 대답했다.


“요즘 한 반에 25명이지? 그럼 반에서 1등 해도 못 가. 반에서 5등이면 경북대도 못 가고.”


수성구 보정이 필요하겠지만 고등학교 진학 시 하위권 학생들이 빠져 나가므로 대충 퉁친다. 반에서 3등이면 ‘우수’하다고 생각했던 우물 안 하룻강아지들은 자신이 입시 바닥에서 실질 인서울 기준 루저 최저선에 걸쳐 있음을 알고 놀란다. 혹은 공부 못하는 애들이나 가는 학교라고 생각했던 대학이 자신의 모교가 될 가능성에 경악한다. - 나는 공포를 팔아 먹고 사는 사교육 강사다.


7월 첫 주면 중고등학교 기말고사가 대부분 끝난다. 학생들은 혼을 하얗게 화해 한 학기 끝판왕을 해치운 것 같지만 ‘흐흐흐, 사실은 그 녀석은 끝이 아니었지.’ 하며 수행(遂行)평가가 줄줄이 이어진다. 성적 수행(修行)을 인내로 수행(隨行)하고 나면, 3-4주짜리 여름 방학에 위기를 이헌령비헌령하며 난립한 사교육 시장의 특강과 대면한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아이의 인생이 망한다’는 공포감은 허위를 알면서도 속을 수밖에 없는 학부모의 아킬레스건이다.


모든 교육은 입시로 향한다. 대학이 사람 자격이자 등급인 풍토가 바뀌지 않는 한 사교육은 철폐될 수 없다. 제도를 어떻게 바꾸든 사교육은 바퀴벌레처럼 살아 남을 것이다. 적응하기 위한 과정에 일이 많아질 뿐이다. 공교육에서 더 뛰어난 인재를 먼저 채 가지만 인재들이 행정에 재능을 낭비하는 한, 밀리면 밥줄 끊기는 사교육을 이길 수 없다. 제도가 바뀔수록 유연한 사교육만 노난다. 변화의 불확실성은 공포의 재료로서 사교육 과소비도 부추긴다.


사교육 중추는 내신과 수능이다, 아직까지도. 내신의 쓸모는 학부모 시절과 달라졌는데, 위상은 동일한 듯하다. 중학생들도 ‘입시=내신+수능’으로 오해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입시에서 내신과 수능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주면 깜짝 놀라지만, 필터버블 효과는 힘이 세다. 학교에서도 내신-수능, 학원에서도 내신-수능 하니까 다들 내신-수능에 매몰된다.


대학 입학설명회에 가보면 대학도 수험생만큼 인재 모집에 필사적인 걸 알 수 있다. 대학은 엑스코나 인터불고 수준의 홀을 대관해서 전국을 돌며 행사를 진행했다. 만만찮은 비용과 인력을 쓰는 이유는 간절함일 것이다. 서울 상위권 A대학 입학 설명회에서 입학 처장은 ‘우리 대학은 정시로 들어온 학생을 가장 싫어합니다.’고 말했다. B대학은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데이터를 공개했다. 정시로 선발된 학생들의 성적이 다른 전형으로 선발된 학생들보다 낮았다. 취업률도 마찬가지였다. 성적을 잘 받는 학생과 공부를 잘하는 학생의 차이를 대학은 아는데, 학부모는 무시한다. 정시 40%는 정부의 의지지, 대학의 의지가 아니다.


정시는 현실적으로 고3 현역의 전장이 아니다. 일단 입시에서 비중이 절대적이지 않다. 인서울 상위 대학에서 정시 비중은 40% 안팎이다. 이 파이를 먹기 위해 필요한 1, 2등급은 의대 노리는 재수생, 반수생들이 쓸어 간다. 양치기(EBS를 양으로 쳐내는 것)로 변질된 수능에서 현역이 내신-수행에 시간 낭비하지 않고 오롯이 수능만 판 재수생을 이기기는 힘들다. 사실상 사교육으로 공부하는 상위권 학생들에게는 학교는 재수생과 대결에서 패털티인 셈이다. 수능에 초점을 맞추면 고등학교는 4년제이므로 수능을 위한 현실적인 전략은 자퇴다. 그러나 입시를 위한 현실적 전략은 학생부 종합 전형이다.


정시를 제외한 영역은 수시고, 학생부 종합 전형은 수시의 왕이다. 서울대는 내신만 보는 교과전형이 아예 없다. 어차피 전국의 내신 전교 1등이 지원하므로 숫자 놀음은 무의미할 법하다. 내신은 수능보다 더 많은 오해를 사고 있다. ‘학생부 종합 전형=내신’이 선풍기 틀고 자면 죽는다는 미신처럼 퍼져 있다. 학생부 종합 전형에서 내신은 거들 뿐이다. 전년도 입시 결과를 가장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한양대, 경희대 입시 결과를 보면 이해가 쉽다.


표1. 한양대 2024년 학생부 교과 최종등록자 내신 등급    


표2. 한양대 2024년 학생부 종합 최종등록자 내신 등급    


전형에 따라 같은 학과 간 대략 한 등급 차이가 남을 알 수 있다. 재밌는 건 학생부 종합 전형 의예과 최종 등록자 내신 1.42라는 거다. 1.42 의예과 합격자가 공대 19개 중에 학생부 교과 전형으로 합격할 수 있는 학과는 2개뿐이다. 반도체 공학과는 1.04, 아예 서울대 급이다.


경희대를 보면 보다 내신의 실용성을 보다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표3. 2024년 경희대학교 학생부 교과 합불 지원 분포    


표4. 2024년 경희대학교 학생부 종합 합불 지원 분포    


교과 전형과 종합 전형 간 평균 등급 격차가 더 극적으로 벌어져 일본어학과나 글로벌커뮤니케이션 학과의 경우 내신등급 2.1 차이가 난다. 교과 전형 안에서 다닥다닥 붙어 있던 등급들도 종합 전형에서는 넓게 분포한다. 종합 전형의 경우, 3등급 후반에서 4등급 초반에 합격자들이 다수 몰려 있고, 5, 6등급짜리 합격자들도 보인다.


이미 내신은 입시의 주요 지표가 아니다. 게다가 2024년 중3부터 대입에서 내신은 5등급 체계로 개편된다. 상위 10%가 1등급인 지표를 연고서성한이 신뢰할 리 없다. 그럼에도 내신 기간마다 수성구도 옛날 방식의 성적 쟁탈전이 벌어진다.


물론, 내신 기간에 별 달리 할 일이 없으니 내신에 몰입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나도 입시판에 있는 사람이라 ‘무용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맹목적 노력’의 가치를 귀하게 여긴다. 수능 이후 쓰레기가 된 수학도 견뎠고, 그 습관으로 지식이 쌓이는 느린 속도를 인내할 줄 알았다. 기업이 인재 선발에서 대학 간판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도 대학이 무용한 것에 자신을 아낌없이 갈아넣는 습성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중간기말 시험 기간은 노력을 연습하는 시간, 그뿐이다. 잘 치면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서 기분 좋은 거고, 못 치면 보완해 나가면 된다. 특목고나 자사고를 준비하는 학생이 아니라면 인생에 있어 중학교 내신은 그다지 중요한 숫자가 아니다. 최선을 다하는 습성은 좋지만, 가치 없는 것에 자신을 태우는 건 영혼 낭비다.


진짜 문제는 인공지능의 등장이다. 이미 대학 서열은 무너지고 있다. 아이들이 사회에 나갈 10년, 15년 후, 그때도 지금의 대학 서열이 유효할 거라고 보는지 묻고 싶다. 그 시대에 맹목적으로 노력하는 능력도 과연 미덕일지도 의심스럽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미래, 그래서 더 대학이라는 옛날 영웅에 기대는지도 모르겠다.


답은 글쓰기다. 내 밥벌이로 아전인수하는 격이라 민망하지만, 스스로에게 부끄럽진 않다. ‘머릿속에 있는데 잘 모르겠어요’는 객관식의 시대에는 괜찮았다. 머릿속 정보는 있다/없다의 이진수를 닮은 평면체계였다. 다섯 가지 보기들이 ‘머릿속에 있는 것’을 환기해준다. 그러나 더이상 세상은 평면으로 지탱되지 못한다. 글을 쓰는 것은 있는 것들을 스스로 ‘구성’하는 입체 작업이었다. 사교육 정점에 선 강사들, 정점에서 벌 만큼 벌고 은퇴한 강사들도 대학이 힘을 잃을 미래를 예상하며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모든 독서는 자기 것으로 소화되어야 하므로 독서의 끝은 글쓰기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객관식 문제만 풀 줄 아는 미숙아’였다. 해운대에서 만난 외국인의 ‘hi’에 얼어 붙어서 수학에 집중한 학창시절을 후회했다. 당시는 아직 객관식의 시대여서 실질적 무능은 ‘공부는 잘하는데 실무는 못하는’ 정도로 넘어갔다. 실무는 금방 익히는 것쯤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실무가 본질임을 안다. 그래서 내신에 서술형 논술형이 반영되는 것은 실질 쓸모를 반영하므로 바람직하다. 고등학교 때까지 살았던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야 함에 당혹스러워했던 내 스무 살이 당시는 어리광이지만, 지금은 도태 인증일 테니까.


- 표지 사진 : 논술 중간 평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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