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당동-조영동을 가르는 둥지로는 ‘이중국적길’이다. 낮에는 한가한 주택가에 덧씌워진 상업지대다. 길을 따라 상점이 늘어섰다. 상점 뒤편은 3층짜리 원룸들이 빽빽하다. 아스팔트 위로 차가 다니지만, 도로라기보다는 넓은 골목길이다. 차가 우선하되 사람들은 차를 무시했다. 둥지로 1km 구간에 횡단보도 13개는 있으나마나했다. 7~8년 전에서야 큰 도로에서 둥지로로 들어서는 삼거리 입구에 신호등이 생겼다. 내 생활권에 불쑥 들어와 서라 마라, 거슬렸다. 나는 대체로 무시하는 편이다. 여기 신호등 설치한 행정가는 이 동네에 살지 않는 사람이 분명했다.
둥지로의 중심은 강산애아파트다. 5층짜리 아홉 동 299세대는 원룸단지 사이에서 위풍당당하다. 공실이 범람하는 요즘에도 아파트 주변은 상가들이 그럭저럭 명맥을 유지한다. 가게 두 개를 사이에 두고 세탁소가 나란할 정도로 30여 미터 구간 2층 상가는 밀도 높다. 민방위 출석 도장 찍으러 갈 때만 해도, 언젠가 나도 이런 곳에 살 수 있으려나 싶었지만, 지금은 혼자 살기 너무 큰 데다 시끄러울 것 같아 안 산다. 신호등이 없던 시절과 지금은 풍경이 달랐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한국에서 출근해서, 외국으로 퇴근한다.
둥지로는 낮에는 한국이었다가 밤이면 외국이 된다. 낮에도 이미 한국어의 부분적 패배가 드리워져 있다. 한국어가 없거나 있더라도 각주가 된 간판이 많다. 둥지로 상가 500m 안에 중국 현지 음식점, 베트남 쌀국수집, 이슬람 식당이 즐비하다. 주요 타겟은 자국민이다. 아시아 식자재마트도 편의점과 맞먹는다. 최근에는 모나코 커피, 베트남 커피 집도 생겼다. 50m 간격을 두고 대학가 중심인 오렌지로드가 평행하지만, 이곳으로 넘어오는 한국인 학생들은 드물다. 내가 이곳 식당에서 한국인을 본 것은 손에 꼽는다. 낮에는 집과 학교를 오가는 학생들이나 인근 주민으로 다소 한갓진다.
국가를 특정하지는 못하지만, 밤의 둥지로는 냄새부터 달라진다. 마라탕을 기반으로 한 중국 현지 음식점은 마라향이 맵다. 마라탕을 먹어 본 적 없어도 화학약품 같은 냄새에 식욕이 동한다. 베트남 쌀국수집의 냄새는 비릿하면서도 짜다. 쌀국수는 종종 먹었기에 이제 내겐 한식 냄새에 준한다. 이슬람 식당에서는 갓 구운 빵을 기반으로 한 향식료 냄새가 섞여 있다. 향이 아무리 이질적이더라도 빵냄새를 두르고 있어 강하게 혹한다. 둥지로는 이국의 향이 뒤섞인 다문화 비빔밥 같은 길이다.
밤만 되면 외국인들이 이 길 위로 출근하는 듯하다. 다국적 군대도 아니고, 온통 사내들이라서 별 감흥은 없다. 식당을 중심으로 국적이 갈리고, 마트에도 외국인이 더 많다. 중국인과 베트남인을 비롯한 남아시아 쪽 사내들은 마트에서 식료품을 더 많이 산다. PC방을 들락이는 쪽도 이들이다. 아마 이 동네 PC방에는 중국어와 베트남어가 더 많이 들릴 듯하다. 거리에는 중앙 아시아 쪽 사내들이 더 많다. 이들은 야외 테이블에서 음식 먹는 걸 좋아한다. 강산애아파트 네 거리 편의점 앞 테이블도 대체로 이들 차지다. 다양한 하느님을 모시는 종교인들이 팜플렛을 전시해 두고 말 없이 포교활동하는 모습과 이슬람의 공존은 제법 나른하다. 기묘한 평화에서는 중앙아시아 사내들의 향수 냄새가 난다. 그들에게 적당한지 몰라도 고수처럼 내겐 좀 세다. 우리는 말을 섞어 공생하진 않아도 서로의 풍경 속에서 공존한다.
여성들도 조금씩 늘었다. 외국인 여성은 유학생이나 결혼이주여성으로만 생각했던 고정관념은 이곳에서 쉽게 깨진다. 나이대가 있는 여성들이 삼삼오오 모여 걷고 있거나 자국민 남성과 가정을 꾸린 모습도 종종 보인다. 외국인 전용 핸드폰 가게나 이슬람 식당 사장으로, 베트남인이 요리하는 중국집 종업원으로, 네일샵 손님으로, 두 초등학생의 엄마로, 이들도 이곳을 살아간다. 가끔 히잡을 쓴 여성도 보이지만, 아직은 밤동네의 소수다.
겉보기에 한국인과 엇비슷할 때, 중국인으로 읽으면 대체로 맞다. 가까이 가면 중국어가 들린다.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중국인은 채도가 묘하게 달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의 입성에 물든다. 무리지어 있으면 중국인이다. 나는 아직 다수자여서 관광객의 기분으로, 원주민이 되어버린 당신들이 잠깐 흥미롭다. 그래서 당근마켓 동네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외국인 혐오글에 따박따박 반박하는 편이다. 윤리감이 아니라 2x2의 현실감이다. 그들이 없으면, 동네도 없다.
이 밤동네는 아직 오렌지로드와 겹쳐지지 않는다. 오렌지로드는 밤낮으로 한국이다. 한국어를 빛내주는 영어 간판, 한국어를 흘리는 대학생들이 드글드글하다. 국밥, 회덮밥, 라멘, 짜장면, 밀면, 김치찌개, 고깃집, 호프집은 파리바게트나 올리브영과 더불어 한국이다. 스타벅스도 낮밤을 가리지 않고 한국어로 채워진다. 언제 어딜 가도 냄새가 표지되지 않는다. 부어라 마셔라 흥청망청한 밤의 주인도 한국어다. 외국인 유학생들이 떼지어 다니며 자기 나라 말을 흘리지만, 아직은 힘이 없다. 올해 초, 1년 넘게 공실이던 2층 건물에 베트남어인지 태국어인지 모를 낯선 글자로 된 당구장이 겨우 한 발짝 걸쳤다. 아, 둥지로와 오렌지로드 사이에 베트남 쌀국수 집이 오픈 중이다. 어? 둥지로 반대편 숯불고기집 산자이폼의 산자이는 사장님 성함이다. 오렌지로드는, 포위되었다. 오렌지로드는 공실을 수습하기도 벅차 포위를 벗어날 수 없지만, 나는 그 포위를 뚫고 오가는 게 어렵지 않다.
둥지로 붕어빵 사장님은 한국어에 능한 방글라데시아 사람이다. 오후 늦게 열어 밤늦게까지 영업했다. 대구보다 싸게 팔아야 하는 것을 한탄했고, 내가 2,000원어치를 사 가다가 그걸 폐지 줍는 할머니께 드리고 돌아와 다시 2,000원어치를 살 때 하나를 덤으로 줬었다. 작은 포장으로 시작했다가 인근 부동산 건물에 샵 앤 샵 형식으로 확장했다.
“뭘로 드릴까요?”
“빠른 거 세 개요.”
씩 웃던 당신의 웃음을 기억한다. 방글라데시아인이 구워주는 슈크림붕어빵 3개는 지나치게 달았다. 붕어빵 시즌이 끝나면 한 달 정도 휴지기를 가지고 샌드위치를 팔았었는데, 올해는 오래도록 문이 닫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