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창고

산타와 루돌프의 불시착

by 하루오

침을 뱉는다. 입을 다물고 있어도 모래가 씹힌다. 산타의 체면은 루돌프라도 있을 때의 이야기다. 나는 산타가 아니라 목마름이다. 나는 옷을 벗어 차양을 만들고 그 아래에 속옷 차림으로 누워있다. 새벽에 물을 찾아 떠난 루돌프는 정오가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다. 루돌프를 기다린다.



사막 본부가 있는 알렉산드리아에서 배송지인 까스르로 이동 중에 모래 폭풍에 휘말렸다. 허공에서 몸과 모래가 뒤섞였다.


눈을 떠보니 살아 있었다. 사위는 동트기 직전의 어스름함으로 고요했다. 눈밭과 비슷한 풍경이었지만 콧속에 물기가 느껴지지 않아 이곳은 사막이었다.


“굉장한 사막 여행이에요.”


루돌프의 비아냥거림에 대꾸하지 않았다. 내가 고집한 사막 배송이었다. 눈밭이 지겨웠다. 선물 받는 아이가 조금씩 바뀌었을 뿐, 산타가 겪는 일상적인 비밀과 감탄에 질렸다. 은퇴 전에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었다. 본부장에게 술 한 잔 사며 마지막 배송지를 바꿨다.


“지금쯤 우리가 없어진 것을 알았을 테니까 본부에서도 움직이기 시작했을 거다.”


“선물이라도 뜯죠. 먹을 게 있을 거예요. 마실 것도.”


루돌프의 말은 내 말 끝에 바투 붙어 있었다. 내 말이 하나마나한 말임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막상 하나마나 한 대답도 없이 자기 말을 들이미니 무안했다.


“안 된다. 선물은 주기로 한 순간 물건이 아니라 마음이 돼.”


“더 이상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에요. 그냥 물건이에요.”


“저 안에 담긴 마음들은 여전히 선물이다.”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죠. 영감님도 영감님 입장이 있으시니까.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어요. 우리한테도 선물이 필요해요.”


“어차피 먹을 거나 물 따위가 있을 리 없다.”


“아니에요. ……있어요. 우린 물이 필요하잖아요. 그러니까…… 저 상자들 안에 말이죠. 사실은, 선물 바꿔치기를 했어요. 무게를 맞추려고 물병을 넣어놨고요.”


“아…… 그런……… 안 돼, 안 돼. 나는 산타고, 너는 루돌프야.”


머릿속에 모래가 차올랐다. 동이 트며 펼쳐지는 모래 능선이, 믿음의 분진이 쌓인 무덤 같았다. 사막이 점점 선명해졌다. 내가 아무 말이 없자 루돌프가 벌떡 일어났다.


“영감님도 참 답답하십니다. 어디 오아시스라도 있나 훑어보고 올 게요. 사막에는 그런 게 있다면서요?”


나는 대답하지도,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모래 밟는 소리가 사박사박 얇아져 갔다. 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나는 나의 지나온 산타와 앞으로 닥칠 갈증의 무게를 쟀다. 자꾸 갈증 쪽으로 기울어졌다.


자다 깨기를 반복하는 사이에 루돌프의 발자국이 사라졌다. 침을 뱉는다. 마른 침이라도 아쉽지만 입 안의 서걱거림을 참을 수 없다. 여기는 모래뿐이다. 보이는 것도 모래고 바람에 살갗을 쓰는 것도 모래다. 나는 모래의 흔적쯤 되는 것 같다. 온 몸이 서걱거린다. 모래는 몸속으로 틈입하는 것이 아니라 몸속에서 번져온다. 물을 마실 수 없다는 불안감이 갈증을 키운다.


수분이 부족한 만큼 몸이 가벼워져야 할 텐데 점점 무거워진다. 살갗을 기어 다니는 서걱거림도 힘들고, 목구멍에 걸려 있는 따끔함도 힘들고, 들숨에 밀려오는 퍼석거림도 힘들다. 힘이 느껴지지 않아야 할 자리에 드는 힘이, 남아 있는 체중만큼 몸을 누른다. 무게 속에 모래가 들어찬다.


한 모금이라도 좋다. 물을 머금고만 있어도 갈증과 나 사이에 벌어진 틈에 물기의 가능성이 차오를 것이다. 가능성은 입 안의 물을 근거로 실재를 닮아 가 몸을 속일 수 있을 것이다. 오직 입 안의 물만이 세계의 전부가 되므로 사막 전체도 물 한 모금이면 위로될 수 있을 것이다. 한 번에 털어 마시지 않고 질금질금 몸 안으로 흘려보낼 것이다. 물은 목구멍에서 동심원으로 퍼지며 온몸에 있어질 것이다. 그러니까 한 모금만, 딱 한 모금만이라도 마실 수 있으면 좋겠다.


겨우 물, 그 하찮음에 나는 지금 영혼이라고 팔 듯하다. 목구멍에 걸린 열기가 입안을 쥐어뜯는다. 물을 마시고 싶다. 목마름 앞에, 내가 산타여야 할 이유는 없다. 그래, 늙어빠진 나 따위는 아무래도 좋으니 제발 물 한 모금만 마실 수 있으면 좋겠다.


내 목마름은 내 잘못이 아니다. 사막에서는 모든 것이 사막 때문이다. 사막에서는 모든 것이 모래가 되는 과정이거나 결과일 뿐 다른 각주가 달릴 수 없다. 모래 능선이 쌓이고 흩어지는 것처럼 내 갈증도 내 몸에 고였다가 모래로 돌아갈 것이다. 사막이 강제하는 유죄는 부당해도 나는 항소할 수 없다. 형벌은 너무 느리지만 착실하고 확실하다. 죽는 것보다 이 갈증이 더 괴롭다.


선물에 눈이 간다. 루돌프가 옳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차양 밖으로 나간다. 햇발이 맨살을 걷어차는 것 같다. 하늘과 사막이 아래위로 빙글빙글 돈다. 선 채로 정신을 수습한다. 루돌프가 물을 찾아 나선 방향으로 네 걸음 거리에 빨간 상자가 반쯤 묻혀 있다. 상자는 3호짜리로 아이들 책가방만 하다. 선물에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뛴다. 오랜만에 느끼는 심박동이다. 마른 침이 삼켜진다.


하지만 상자 뜯는 일을 포기한다. 상자를 뜯다가 루돌프에게 들키는 것이 두렵다. 사위를 확인하고 작업해도 능선 뒤에서 갑자기 루돌프가 나타날 수도 있다. 그 정도 거리라면 내가 무엇을 하는지 볼 수 없겠지만 나는 굳이 차양 밖을 나와 땡볕 아래를 서성이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 목마름 속에서 내가 루돌프에게 한낱 노인이 아니라 산타인 것이 끔찍하다.


얼마나 버텨낼지 모르겠지만 갈증이 생각을 압도할 때 나는 나도 모르게 선물을 뜯게 될 것이다. 의식이 완전히 증발하고 본능만 남을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겨우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데, 목메고 눈물이 난다. 아니, 눈물은 코끝을 찡하게 찌를 뿐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눈가에서 퍼지는 주름을 따라 모래가 흐른다. 물을 마시고 싶은 것이 이다지도 죄스러워야 할까.


차양으로 돌아와 눕는다. 루돌프가 사라진 쪽으로 고개를 고정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루돌프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기다리지 않을 수 없으므로 이 상태를 기다림이라고 하기 민망하다. 하지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어서 이것은 기다림이기도 하고 기다림이 아니기도 한 흘러가는 정지 상태다. 나는 멈춰있는데 의식만 활성화되어 정지를 탐지한다. 정지의 부피가 의식을 누른다. 압사되지 않으려면 의식을 꺼버리면 될 텐데 잠도 오지 않는다. 정지 속에 가득한 루돌프가 갈증만큼 커진다.


침 뱉을 힘도 없다. 뱉을 침도 없다. 체리나 레몬을 생각해도 침이 고이지 않는다. 침을 삼키던 습관대로 목울대를 움직일 때마다 목이 모래에 쓸린다. 목은 공기보다 화끈거린다. 몸속으로 스며드는 모래를 걸러내기를 포기한다. 지금 내 목을 자르면 모래가 쏟아질 것 같다. 그렇게라도 모래를 빼내고 싶다. 루돌프는 오지 않는다.


루돌프가 사라진 쪽은 오래 전에 찍어 놓은 사진 같다. 저 고정된 풍경에서 루돌프가 나타나는 것은 왠지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막은 그냥 사막이다. 사막에 루돌프가 있어야 할 이유가 없으니 루돌프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몸에서 모래가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열기로 의식이 증발해간다. 눈앞이 가물가물 흐려진다. 모래가 하늘로 섞여든다. 눈이 씀벅씀벅 감긴다.


흐릿한 시야 한 가운데 점 하나가 나타난다. 점이 이쪽으로 다가온다. 색이 갖춰진다. 빨간 하의를 입은, 루돌프다. 입술이 옆으로 조금 그어진다.


루돌프가 오아시스를 발견했든 아니든, 최소한 선물이라도 뜯어볼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생물학의 끝까지 최선을 다했으므로 선물을 개봉하더라도 나의 산타는 유효하다. 사막에 찌든 루돌프를 그늘에 뉘이고 내가 손수 선물을 뜯을 것이다. 가슴이 다시 두근댄다. 신선하고 촉촉한 박동이다. 내가 선물을 뜯을 수 있도록, 차라리 루돌프가 오아시스를 발견하지 못했으면 좋겠다.


루돌프의 얼굴이 보이려는 순간, 색이 사라진다. 눈을 깜빡여 봐도 아무 것도 없다. 모래만 태연하다. 바닥이 없는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는 기분이다.


문득, 눈이 떠지는 것으로 정신을 잃었던 것을 알았다. 아니, 정신을 차렸다기보다 갈증이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나를 깨운 것 같다. 물 냄새를 맡거나 물을 만지기라도 하면 좋겠다. 갈증은 이제 목마름이 아니라 몸 마름이다. 목구멍에서 따끔거리던 열기가 몸 전체로 퍼졌다. 바람이 살갗을 스치는 자리가 따갑다.


시간이 꽤 지난 듯 해가 차양 아래로 내려와 몸의 절반을 덮었다. 그늘이 늘어난 반대편으로 몸을 굴리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손만 까딱 올라갔다가 떨어진다. 머리 아래로 힘이 제대로 닿지 않는다. 목구멍에 농축된 열기를 경계로 몸과 머리가 나뉜 것 같다. 몸은 점점 사막을 닮아갈 것이고 머리는 저 혼자 사막에 남을 것이다. 그나마 머리라도 내 것 같은 것은 갈증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일 뿐, 이 의식도 점점 흐려진다.


모래 속에서 몸을 건져내듯이 팔, 등, 허리, 허벅지, 장딴지, 발을 하나하나 의식하며 몸을 굴린다. 힘이 몸에 닿을 때 옷이나 모래에 쓸리는 살갗이 쓰라린다. 쓰라림을 따라 살갗이 부서진다. 세 바퀴를 굴러 몸을 그늘에 뉜다. 날린 모래가 가라앉을 때까지 숨을 참는다. 그늘 밖으로 삐져나간 오른 발을 천천히 끌어당긴다. 눈앞이 뱅글뱅글 돈다. 더 이상 움직일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뜨거움이 답답하다. 머리가 펑, 터져버렸으면 좋겠다.

내 죽음은 이제 확실하다. 인생, 나쁘지도 않았고, 좋지도 않았다. 겨우 몇 걸음 앞의 물의 가능성을 두고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은 후회가 남는다. 이렇게 갑자기 방전될지는 몰랐다. 지금이라도 힘을 짜내서 선물을 풀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힘이 나지 않는다. 이제는 목이 마른 건지도 모르겠다. 메마르고 뜨거운 감각은 어떤 욕구도 만들어내지 않는 그저 사실이다. 모래 한 가운데서, 사소한 일이 벌어지려고 한다. 사소하지 않은 죽음이 어디 있겠느냐만은 사막에서의 죽음은 누구에게도 포착되지 않아서 더 사소해진다. 이 사막에서 내 부피만큼의 모래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눈이 감긴다. 바람이 불어와 모래가 얇게 나를 덮는다. 솨르르, 몸에서 모래가 빠져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아니, 루돌프가 나를 부르는 소리다. 또 정신을 잃을 모양이다. 이번에 의식을 놓으면 다시 회복되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도 눈을 떠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모래가 빠져나가는 기분이 편안하다. 소리는 가까이에 있는데 멀리서 들린다.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소리가 내 몸을 흔든다. 머릿속이 뱅뱅 돈다. 감은 눈 위로 허공 같은 형체가 음영을 드리운다. 영감님이라고 하는지,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하는지 가물가물 들리지 않는다. 아니, 숨겨져 있던 물소리 같기도 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빅뱅하는 외로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