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에 관하여)
1. Yes : 좋은 정치인 고르는 방법
입시 원서나 취업 원서 쓸 때 우리는 살아온 이력을 기술한다. 이력서는 지원자를 압축적으로 요약해주고, 자기소개서는 이력에 서사를 붙여 지원자의 실존 형태를 가늠하게 해준다. 이 과정에 거짓이 들어갈 수 있겠지만, 거짓은 서사의 결을 거칠게 만들기 때문에 면접 과정에서 탐지된다.
사람을 선발해야 하는 거의 모든 경우, 지원자들의 과거를 비교해 우위를 결정한다. 그러나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은 과거보다 공약이 우선된다. 공약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므로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후보자가 살아온 과거를 따져야 공약의 진실성을 확인할 수 있음이 망각된다. 히틀러가 유럽 평화를 위해 상호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겠다는 공약(公約)이야말로 공약(空約)일 것이다.
나는 정치 이해를 절반쯤 포기했다. 다매체 시대에 정보의 진위는 다양하게 검증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 스모그 속으로 은폐되었다. 가짜 뉴스가 진짜로 위장되기도 했고, 맥락이 제거된 부분적 사실이 진실로 유통되기도 했다. 일반 시민은 정치인이나 관련 업계 종사자처럼 늘 정치에 집중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알고 있는 정보들 간에는 결락이 생기기 마련이다. 전문가들이 이 틈을 합리적으로 꿰매주는데, 이쪽을 보면 이쪽 말이 맞고, 저쪽을 보면 저쪽 말이 맞았다. 콩으로 메주를 쑤든, 메주로 돈가스를 만들든, 그들은 아전인수 전문가였다.
잘 모르는 채로 유권자들은 어떻게든 판단을 내려야 한다. 그래서 나는 확실한 사실 두 가지를 꼽았다. 첫째, 정치인들은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출신 학교만 봐도 그들이 엘리트임은 확인할 수 있다. 헛똑똑이라고 비하하는 사람은 그 레벨의 인재를 겪어보지 못했을 뿐이다. 둘째, 나보다 더 많은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나는 내 생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그들은 정치가 생업이니 관련 정보를 특정 맥락 안에서 정확하게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일반 대중이 모르는 정보까지 알고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더 적합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나보다 똑똑하고, 많이 알고 있다면, 그것을 올바르게 사용할 사람인지만 검증하면 된다. 그래서 살아온 이력을 봤다. 인간은 어떤 자리에 있든 자기 성향만큼의 인생을 살아갈 뿐이다. 그의 행위 동기가 권력인지, 금전인지, 정의인지, 도덕인지를 따졌다. 권력은 더 큰 권력을 원해서 국가를 지배하려 했고, 금전은 더 큰 금전을 원해서 국가를 자산 창출 수단으로 삼았다. 정의는 저 혼자 고고하고 현실과 타협할 줄 몰라서 밥 먹고 살아가야 함을 고민해야 하는 ‘현실 정치’와 맞지 않았다. 자신이 정의인 한 자신과 반대되는 것은 불의이므로 타협의 여지도 없었다.
도덕적 인간이 권력을 가졌을 때 도덕적 정치를 한다고 장담할 수 없지만, 앞의 세 경우보다 실패할 가능성은 낮다. 나보다 더 똑똑하고, 더 많이 알고, 더 도덕적인 정치인이라면, 나보다 더 정치를 잘할 것임은 자명하므로 나는 도덕적인 사람을 지지한다. 비록 그가 실패를 하더라도 기다려줄 수 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도덕적 인간의 선하고 올바른 정치다. 선함과 올바름보다 안전한 효율은 없다.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그럼, 모를 리가. 정치는 내 아파트 값을 올려줄 사람을 선발하는 슈퍼스타K가 아니다. 이익이 신념이 되는 천박한 시대라지만, 정치만큼은 도덕적이길 바란다. 유권자인 우리는 타인의 삶에서 도덕을 읽어내고 그것을 지지해줄 준비가 되었는가? 민주주의는 참 멀다.
2. No : 거짓을 믿어야 할 때
사회 초년생 시절, 지인들로부터 가장 듣기 싫은 말은 ‘돈 없다’였다. 돈 없음 앞에는 각자의 괄호가 쳐져 있었다. 괄호 안에는 ‘아파트 대출금 갚느라’, ‘유럽 다녀온 직후라’, ‘있으면 과시하기 좋지만 굳이 살 필요 없는 고가의 물건을 사서’ 등이 있었다. 나의 돈 없음 앞에는 월급이 적어서가 있었다. 나는 그들의 괄호조차 채우지 못해서 비루했다.
최근 나도 그들과 비슷한 괄호의 돈 없음을 말한 적이 있었다. 실제로 당시에는 적금을 제외한 현금을 주식 공모주 청약에 다 쏟아 부어서 생활비만 빠듯이 남겨뒀을 때였다. 내 상황을 들은 그는 알겠다고 했다. 그는 내 말을 우회적 거절로 들으며 10여 년 내가 느꼈을 비루함을 맛봤을 지도 몰랐다.
그는 내가 가르쳤던 편입 준비생이었다. 수업 첫해는 준비하다가 개인 사정으로 편입을 미뤘다. 그 다음해에 다시 수업을 진행했지만, 다른 좋은 기회가 생겨 경쾌하게 편입을 접었다. 2년 간 관계한 셈이지만 수업 횟수는 반 년 정도 되었다. 편입을 접은 시점에, 이제 우리 인연도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해를 넘겨 갑자기 내게 돈을 빌려 달라고 한 것이다.
그는 돈을 빌려야 하는 상황을 설명했다. 어떤 사정이든 믿을 만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꽤 잘 살 던 집에서 20대 초반의 자녀까지 돈을 빌리러 여기 전기 전화를 넣는 상황이 된 것도 납득할 수 없었다. 오죽 간절하면 내게까지 연락했을까 싶었다. 우리는 따로 밥을 먹거나 사적인 톡을 나눈 적도 없는 계약 관계에 불과했다.
끊겼다고 생각한 인연이 돈을 빌려 달라며 연락 온 적이 두 번 있었다. 두 번 다 거절했다. 그때도 마음이 쓰이긴 했는데, 이 학생은 거절 후에 유독 마음이 쓰였다. 나를 거쳐 간 학생 중에서 성실함과 예의 바름이 손꼽히는 학생이었다.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닌 것 같았고, 진실이라면 못 도와줄 것도 없을 것 같았다.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다.
몇 주 후 또 연락이 와서 도와 달라고 했다. 처음에 요청했던 것보다 적은 금액이었다. 마음의 짐을 더는 기분으로 빌려줬고, 약속한 날짜에 돌려받았다. 소송이 진행 중이고 중간에 반환금이 생기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그와의 인연은 마무리 되나 싶었는데 또 빌려 달라고 했다. 이왕 믿기로 한 것이니 끝까지 믿어보자 싶어 3차례에 걸쳐 돈을 빌려줬다. 빌려 줄 때마다 금액은 점점 줄어들었고, 사실 총액도 대단한 금액은 아니었다. 돌려받지 못하면 화는 날지언정 먹고 사는 데 지장은 없었다. 내가 빌려준 돈은 가장 늦게 갚아도 된다고 함으로써 추가 대출에는 선을 그었다.
빌려달라고 요청할 때 공언했던 날짜에서 두어 달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따로 연락하지 않았다. 갚지 않을 작정이었다면 어쩔 수 없고, 갚지 못할 상황이라면 미안하다는 말 밖에 하지 못할 텐데 그를 구차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다 며칠 전 또 연락이 왔다.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다음 주에 모두 변제할 수 있으니 소소한 금액을 또 빌려 달라고 했다.
그때는 이미 그가 전형적인 협상의 기술을 사용하며 내게 접근해 온다고 의심하고 있었다. 큰돈을 빌려 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하자 작은 돈을 빌려 달라고 하는 ‘문전박대 기법’과 일단 첫발을 디딘 다음에 작은 부탁을 반복 요청하는 ‘문간에 발 들여 놓기 기법’이 우리 상황을 정확하게 설명했다. 그의 진심을 의심했다.
재요청을 거절했다. 거절당한 그는 미안하다고 했다. 역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이 글을 쓰면서야 마지막에 빌려 달라던 돈은 너무 소소해서 그 간절함은 더 처절했을 거라는 생각과 그의 성실하고 예의 바른 유쾌함이 포개졌다. 호구가 될지언정 그 처절함에 응해야 인(仁)이었을 것이다. 인을 악용하는 사람이 소인일 뿐이다. 고추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곧이들어야 할 때도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이렇게, 군자가 되고 싶은 소인은 머리로만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