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돌산 終

고립은 No, 자립은 Yes

by 박달나무

무사히, 건강하게 잘 마쳤습니다.

돌산에 오지 않았더라면 어쩔 뻔했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조금 전 6 친구들은 고속버스로 올라갔습니다.

저는 뒷정리하고 짐 싸고(상당량) 청소하고 내일(월) 승합 VAN으로 올라갑니다.

아무 사고 없이 무사하다는 것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특히 수련원 책임자이신 원감님과 사모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원감님은 신앙인으로, 교육자로 절로 존경하게 되는 덕이 높은 분이셨습니다.

아무쪼록 원감님 부부의 건승을 빕니다.

열흘 전쯤, 밥 먹는 자리에서 현승이가 "우리를 왜 여기 데리고 왔나요?"하고 묻더군요.

다른 얘기가 진행 중인지라 대답을 못하고 넘어갔습니다.

나중에 그 질문이 계속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그러게~ 왜 데리고 온 거지?

생각해보니 한국의 모든 청소년들을 돌산에 데리고 와야 할 것 같았습니다.

부디 돌산이 구원의 땅이 되길……

여섯 친구 모두 똑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공통분모가 뚜렷한데, 그것은

이 친구들의 지난 시간이 사실상 고립된 삶이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존재의 서양철학보다는 관계의 동양사상을 받아들입니다.

관계를 중심으로 우주를 파악한다면, 세상에 태어나도 "나"와 관계되는 타자가 없다면 "나"의 삶이 소멸됩니다.

나를 인식하는 타자의 존재가 내 존재를 전제합니다.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면 내가 숨 쉬는 세상이 의미 없습니다. 나랑 연결끈이 없는 세상은 아무 의미가 없고 존재 자체가 부정되며 나 또한 부정되는 것입니다.

여섯 친구들의 부모들은 우리 사회에서 매우 존경받는 전문직에 계십니다. 분명 자상한 분들이십니다. 아마 무척 바쁘셨을 테지요. 시간을 쪼개서 사랑을 전하며 애지중지 키웠습니다.

아쉬운 점은 내 아기(아이)로서 사랑했지만, 부모의 삶으로 아이를 데리고 들어가지는 못 한 것입니다.

특별한 얘기가 아닙니다. 이미 오랜 전에 농경 사회를 졸업한 한국에서 항상 제기되는 얘기입니다.

벤치마킹할 삶도, 롤모델링 삶도, 피드백받을 삶도 없었기에 우리 아이들의 짧은 삶은 외로웠습니다.

'아빠'는 날 낳아줬다고 알고 있는 남자가 아니라, ○○○에 종사하는 ★★와 ☆☆에 번민하고 힘들어하는/때론 ※※※때문에 환호하는 생활인이었더라면~

'엄마'는 늘 집에서 만나는 아줌마가 아니라, 자신 삶의 기쁨과 슬픔/방향성과 애쓰는 내용을 말해주는 이야기 아주머니이었더라면~

흠짓, 나와 내 아내의 아빠, 엄마 명찰을 들여다봅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다 거기서 거기를 삽니다.

아! 이런, 이 여섯 친구들은 타고난 천성이 예민합니다. 작은 것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품성을 타고났습니다. 정말로 그렇습니다. 못생긴 남자아이에게 장군감이라고 말하는 위로가 아니라 돌산에서 석 달 산 여섯 놈들은 (한 녀석도 예외 없이) 여리고 예민하며 세밀한 감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집 아이들과 달리 유달리 삶의 외로움으로 힘들어했던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

그래서

외롭지 말라고 세트로 묶어서 데리고 왔다는 얘기였습니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외롭지 않게 석 달을 살았습니다.

집으로 돌아가 다시 외롭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기도 말고는 없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교사로서 자괴감이나 허탈함이 아닌 해탈의 기쁨을 느낍니다.

앞으로도 단재 친구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겠습니다.

세상 청소년들이 외롭지 않아야 좋은 세상이겠지요.

이제 저도 집에 있는 아이들 만나러 갑니다~^^

(201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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