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돌산 8

아이들은 잔소리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아우라로 키우는 것이다

by 박달나무

지난 13일에 단재학교를 늘 응원해주시는 유지경성님과 남편이신 카이스트 정○○ 교수님이 돌산 캠프를 다녀갔다. 평소에 단재학교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고 격려해주시는 분이기도 하지만, 학식과 인격에 깊은 신뢰를 갖고 있다.

대전이 집이라 쉽게 생각했는데 3시간 반이 걸렸다며 멀긴 멀다고 한다.

우리 팀에게 맛난 게장백반으로 점심을 사주고, 수련원을 둘러보고, 향일암 가는 등산로를 1시간 반 정도 걷고 곧장 대전으로 올라갔다.

수련원 등나무 스탠드에서 그늘을 찾아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련원을 항구적인 대안학교로 만들고 싶다는 뜻을 이야기하니까 언제나 초심을 잃지 말라는 당부를 한다. 그러다가 정교수님께 들은 일화~

공기 좋고 자연환경 빼어난 곳에서 정서적인 문제가 있는 청소년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을 치료하는 한의사가 있다.

경험과 정성이 겹쳐 좋은 결과를 보는 친구들이 많았다고 한다.

호전된 아이들의 부모는 당연히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지만 그것으로 끝. 때론 약속된 것 이외의 돈을 내놓거나 에어컨 같은 값비싼 가전제품을 기증하기도 하지만 연락을 끊는 경우가 대부분이란다. 좋은 결과를 보았노라 주변에 증언하는 일은 절대 없다는 것이다.

첨언하지 않아도 이유를 단박에 알 수 있다. 비슷한 경험이 꽤 있기 때문이다. 유지경성님은 3시간 넘는 차 안에서, 내가 여수 돌산 캠프 일지 2(4.19)에 썼던 "과연 우리 아이들 엄마는 정말로 자식을 사랑할까?"를 되뇌었다고 한다. 부부의 이어지는 대화는 우리가 어려서 부모님의 사랑을 받았나, 우리는 두 딸을 사랑하는가이었다고 하면서.

헐~ 존경하는 두 분이 쌍둥이 딸을 진정 사랑하는가를 물어 스스로를 점검한다면 당연히 나도 점검 대상이다. 나는 열정적인 캐릭터의 22살 아들과 새벽형(새벽에 잠자리에 들어서) 15살 딸이 있다. 이들을 아빠로서 사랑했던가? 물론 미워하거나 부담스러웠던 것은 아니다. 쳐다보면 즐거운 존재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사랑했노라 말하기 어렵다. 특히 아들에게 개입했던 모든 동기는 이기적인 것이었다. 나의 세계관이, 장단기 예측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동기로 아바타 다루듯 했다. 명령을 수행하지 않는 아바타는 존재 의미가 없다. 내 아들은 아빠의 명령을 잘 수행할 때만 편안할 수 있었다. 이 글을 빌어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

학원 수업보다 아빠인 내가 지도한 결과 성적이 올라가길 바랐다. 그런 마음이 커지면서 학원을 건성으로 다니길 바라는 나를 발견하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항상 마음만 있었지 지도란 것이 잔소리 수준을 넘은 적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들에 대한 잔소리가 사랑의 발로가 아니라고 고백한다. 난 나를 지나치게 사랑했나 보다. 아이에게 위급한 상황이 생긴다면 기꺼이 내 목숨을 내줄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뒤처지는 아이를 보면 '쪽팔린다'라고 느꼈다. 독서량이 부족하고 구사하는 어휘가 좁아서 속 답답할 때는 미운 감정까지 들었다. 아이가 '잘 나가야' 떳떳하고 자랑스러울 텐데. 동창 모임에서 애들 얘기 나올 때 자리가 불편하면 안 되는데……

이기적 동기로 잔소리를 했다고 해도, 내 잔소리가 아이를 위한 것임은 분명하다고 속으로 다짐해본다. 잔소리가 아이를 망가뜨렸다는 지적은 억울하고 또 억울한 얘기가 아닌가.

하지만 내 잔소리는 아들의 성장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고민하고, 경험하고, 실험하고, 공부해서 얻은 결론을 늘 주장하고 다닌다. 아이들은 가르쳐서 자라는 게 아니라는 것 말이다. 생활태도나 습관만 언급하는 게 아니다. 학습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순 연산으로서 나눗셈은 미분과 연결돼있다. 하지만 초등학생이 나눗셈을 능숙하게 하려고 반복해서 훈련하는 것이 미분을 이해하고 극한에 대한 수학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보장하지 않는다. 전혀 별개다. 공교육의 학습과 사람의 성장은 다르다는 얘기다.

벽돌을 위에서부터 쌓을 수 없는 건 당연하다. 중력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치대로 차곡차곡 아래서부터 쌓아 올려야 한다고 제도 학교는 말하면서 공부도 그렇다고 강변한다. 사람의 성장(깨달음)은 그렇지 않다. 성장은 중력이라는 물리적 현상을 전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2층을 짓고 1층을 나중에 만들 수도 있은 것이 사람의 성장과정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부모의 주장(잔소리)이 아니고 부모 삶의 모습 자체라고 하는 것이다. 아이는 부모 생애에서 필요한 요소를 시간의 흐름을 무시하고 랜덤으로 선택한다. 아빠가 결혼 전 직장 생활에서 경험하고 반응한 어떤 사건(스토리)이 12살 내 아이에게 한 장 벽돌이 된다. 아직 살아보지 못한 10년 후 엄마의 미래가 현재 내 아이에게 주춧돌로 작용한다. 나 스스로 이런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은 공부, 실험, 경험, 고민의 결과인데, 그중 경험은 아들의 덕이 크다.

내 아이가 부끄러울 수도 있다. 내 아이의 핸디캡이 나를 떳떳하지 못하게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보통의 사람들은 그렇다. 괜찮다. 비난받을 일이 아니며 아무도 비난할 수 없다.

그러나 이제는 알았으면 좋겠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고스란히 내 아이에게 간다. 과거의 생각은 어쩔 수 없지만 미래의 내 판단과 행동이 내 아이에게 영향을 미친다. 내가 만난 적지 않은 아동과 청소년들은 예외 없이 이 말을 증명해 보였다. 어떤 아이가 자존감이 낮다면 부모가 이 친구를 부끄러워한 경우였다.

"너는 이러이러한 약점이 있으니 그것만 고치면 승자가 될 것이다. 그러니 노력해보자. 이 아빠가 응원한다"

이런 말은 응원이 아니다. "반드시" 생각을 바꿔야 할 것이다.

"너는 이러이러한 남들과 다른 특징이 있는데, 그 특징이 바로 너 자신이고, 그로 인해 네 삶이 창조적일 것이고, 특히 네 삶은 남에게 용기를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