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을 넘어 스토리두잉(story doing)으로
어젯밤에 송 선생이 내려왔다. 내가 고생할 것이 뻔해서 도와주러 왔다는 것이다. 음~ 고마우면서 미안했다. 어쨌든 숨을 돌리 수 있다. 24일(일) 점심까지는.
간밤에 종찬이 잠버릇을 알게 됐다. 그동안 같이 자지 않아서 몰랐는데 종찬, 희수랑 한 방에서 자면서 걱정할만한 수준임을 알았다. 빙글빙글 돌면서 자거나 발길질을 하는 것은 옆 사람이 지혜롭게 피하면 되겠고(희수가 얼굴을 한방 맞더니 그 후로 같이 자지 않는다. 소식을 들은 다른 친구들도 종찬이랑 안 자겠다고 해서 나와 종찬이 단 둘이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종찬이는 컴퓨터 앞에서 늦게까지 앉아있는 "준규 샘"을 무척 걱정한다. 빨리 들어와 자라고 매일 바가지를 긁는다.), 문제는 수면무호흡증이다. 매일 사정이 다르긴 한데 심한 날은 15초 이상 숨을 쉬지 않는다. 그리곤 괴로워하면서 발버둥 치며 숨을 몰아쉰다. 그 과정에서 긴 기럭지 다리에 피해자가 생길 개연성이 매우 높아지는 것이다. 본인은 비염 때문에 그런 경향이 있다고 알고 있지만 숨을 몰아 쉬는 사정은 잘 모르고 있었다. 신기한 것은 코를 골지 않는 것이다. 대개 코를 고는 과정에서 무호흡증이 나타나는데 종찬이는 다른 증상이다. 종찬이에게 얼마큼 부정적 피해를 주는 것인지, 어떻게 고쳐야 하는 것인지 나로선 모르는 문제라서 부모님께 말씀드리는 것이다.
수련원으로부터 교실로 쓸 큰 방을 배정받았다. 송 선생과 아이들 도움을 받아 책상과 의자를 세팅하고 판지상자를 이용해서 책꽂이도 만들었다. 서울에서 택배로 온 컴퓨터와 프린터, 책들을 깨끗이 정돈했다. 이제 인터넷 선만 들어오면 완성. 오후에 기사님이 방문해서 해결해준다고 하니 우리들은 돌산 무슬목에 있는 국립 해양수산과학관에 견학을 갔다. 수련원 원감님이 강력 추천한 곳이다. 볼거리가 많다고.
아이들은 송 선생에게 부탁하면서 해양수산과학관에 내려만 주고 나는 여수 시내 컴퓨터서비스센터를 찾아갔다. 내가 사용하던 컴퓨터가 배송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부팅이 전혀 되지 않는다. 파워서플라이를 교체하여 해결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과 송 선생을 픽업해서 수련원으로 돌아왔다.
비도 오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다. 날씨가 나쁘면 아이들은 예민하게 반응한다. 심리적으로 다운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내가 무척 둔한 사람이라는 걸 아이들 때문에 확인한다. 난 계절이나 날씨의 변화를 거의 느끼지 못한다. 세상은 둔한 사람이 살기 편한 것일까? 나를 잘 아는 몇몇 사람들은 이 글을 보고 반박할 것이다. "당신처럼 예민한 사람이 또 어딨다고!!"
발도르프 교육 창시자 R. 슈타이너는 "교육은 학습자의 감각을 예민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동의한다. 예민할수록 공부 잘한다. 자기에게 들어오는 정보를 흘려보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사방팔방 호기심 안테나를 세운다는 것이다. 한데 우리 아이들은 호기심 안테나가 없다. 정확히 말하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는 돌산 6>에 쓴 것처럼 과거에는 내가 관심을 가져야 할 항목이 정해져 있었지만 지금의 아이들은 자기 관심사는 자기가 생산한다. 문제는 자기가 만든 관심사는 사실 기업이 만든 관심사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에 있다. 어쨌든 "이곳은 볼 것이 많은 곳이야"라고 했을 때 거의 반응하지 않는다. 자신이 생산한 관심사가 아니므로. 학습에 있어서 이런 현상은 제일 먼저 고려할 사항이다. 듀이의 실용주의나 생활교육과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결국 해양수산과학관에 대한 아이들 반응은 미온적을 넘어 반항적이다. 이 날씨에 뭐하러 입장료를 내면서까지 데려왔냐는 항변이다.
우리 아이들의 약점 중 하나는 구사 가능한 어휘 부족이다.
그중 명사가 특히 약하다. 세상 만물의 다양한 이름을 접할 기회가 없었다. 산속에 날개 달린 놈은 모두 "새"이다. 초등 6학년 국어 교과서에 <장끼전>의 일부가 소개된다. 초등학교에 소개되기에 너무 어려운 고문(古文)이다. 아이들은 모두 같은 국어 교과서로 공부한 경우다. 7차 교육과정 세대니까. 수련원 주변에 장끼와 까투리가 자주 눈에 띈다. 장끼와 까투리의 구분은 모른다고 쳐도 꿩이라는 낱말을 모른다. 알긴 하지만 실물과 낱말을 매치시키지 못하니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다.(아~ 저게 꿩이에요?) 물속에 사는 놈은 모두 "물고기"이다. 밭에서 올라오는 놈은 모두 "풀"이고 산에 서서 잠자는 녀석들은 모두 "나무"이다. 이렇게 사물에 대한 언어적 인식이 미분화 상태면 학습이 불가능하다. 어려서부터 다양한 이름을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기하고 재밌는 건 희수의 경우 나로선 도저히 기억하지 못하는(노력해도 기억 불가능) 다양한 공룡의 이름을 다 알고 있다. 내게는 모두 "공룡"이거나 티라노사우루스의 친척 들일뿐인데. 지금도 희수는 공룡에 대해 학습하고, 공부한 내용을 컴퓨터로 갈무리해둔다. 발표하라고 했더니 쉽게 파워포인트로 프레젠테이션 파일을 만든다. 너무도 즐겁게 한다. 밤을 새기도 했다. 이걸 어떻게 봐야 하나. 학습을 잘 이끌 수 있는 핵심 포인트가 희수의 공룡 학습에 있다.
스토리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다.
좋아하니까 관심을 가지고, 관심 있으니까 공부하게 된다는 보편적 생각과 다른 것이다. 좋아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지고, 관심 있지만 공부하라고 하면 외면하는 경우가 더 많다. 바로 내 안의 이야기를 만들고 있느냐 없느냐가 관건인 게다.
이제는 스토리텔링을 넘어 스토리두잉을 말해야 한다. 적절하고 교묘하게 끼어들어 이야기를 만들고 수다를 떨며 즐겨야 한다. 일단 아이들 해양수산과학관 견학은 이야기 만들기에 실패했다. 하지만 괜찮다. 다음에 또 가면 된다. 견학이 한 번에 이야기를 만들지 못한다. 용산에 있는 중앙박물관에 몇 번 가봤나? 몇 번 가보고 아이들 박물관 나들이를 하는 좋은 부모로 착각하면 안 된다. 박물관에서 '나' 또는 '우리들' 이야기를 만들었는가를 살피자. 그렇지 않다면 수십 번 수백 번 다닐 필요가 있다.